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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치열한 작가정신은 고독을 깨고 세상을 담는 힘이지요”
[기획/특집]“치열한 작가정신은 고독을 깨고 세상을 담는 힘이지요”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12.29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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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 사람! 최선미 작가 (김해 장유 출신 구상작가)
소파에 앉아 있는 여자 100x65㎝, Acrylic on canvas. 2019
소파에 앉아 있는 여자 100x65㎝, Acrylic on canvas. 2019

김해서부문화센터 5회 개인전 열어
“서울서 통했다” 자신감 “다시 시작”
전시회ㆍ아트페어서 마니아층 형성
서울 전시회 발길 이어져 ‘작품 인정’
기본 없고 도용하는 작가정신 질타
작품값 고집은 작품 정체성에서 나와
2년 후 ‘다른 수채화’로 전시회 개최

 올해 ‘나를 찾아 떠난 여행’이 많은 사람을 설레게 했다. 독서 트렌드에 ‘오롯이 나를 향한, 나에 의한, 나를 위한 삶’이 펼쳐졌다. 나를 잃고 사는 현대인에게 자신을 찾아 깊숙이 떠나라는 일침은 꽤나 울림이 컸다. 회화에서도 이런 바람은 여러 작가에게서 그려졌다.

 “발가벗고 꾸밈없이 보여줄 것”… 금기 깨기

 예술은 고독에서, 깊고 긴 침묵에서 옷을 입고 대중 앞에 선다. 자기를 가두고 치열한 그림 그리기에 몰두하다 1년 반 만에 지역 애호가들 앞에 자신을 드러낸 화가가 있다. 김해 장유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는 최선미 작가. 2017년 8월 더운 날, 장유 마벨(MABEL) 갤러리서 제3회 개인전을 열어 ‘나를 위한 삶’이라며 잔치를 마련했다. 개인전 타이틀이 ‘Begin Again’이었다. 다시 시작하는 나의 삶은 지난 8월 서울 인사동 이즈갤러리에서 제4회 개인전을 거쳐, 김해서부문화센터에서 삶의 고독에서 나온 작품을 내걸고 지역 애호가를 만난다, 김해서부문화센터 스페이스가율에서 만난 작품들. “이번 전시를 통해 나 또한 발가벗고 꾸밈없이 보여주려 한다”는 작가노트에서 밝혔듯, 지난 전시회 때보다 작품은 확연히 깊이를 달리 한다. 작품의 깊이는 자신감에서 흘러나온다. 세계적인 피아니스트가 하루를 연습하지 않으면 자신의 소리 변화를 아는 것처럼 작가가 하루라도 붓놀림을 멈추면 손끝에 울리는 감각의 변화를 감지한다고 했는데…. 최선미 작가는 고독의 방에서 치른 치열한 그림 그리기를 화폭에 빛으로 옮겨놓았다.

11월의 주남 162.2x74.5㎝, Acrylic on canvas. 2019
11월의 주남 162.2x74.5㎝, Acrylic on canvas. 2019

 누드화에 서면 압도당한다. 속에서 용트림하던 금기를 깨는 힘을 던져준다. 작가가 자기를 옭아매던, 고독에서 아우성치던 금기를 붓끝에서 스르르 흘러내린 터치를 볼 수 있다. 여인의 아름다움을 공개적으로 떠들어도 아무런 눈치도 받지 않는 매력을 발산한다.

 최선미 작가는 “누드화 앞에 서면 만지고 싶은 유혹이 일 것”이라고 했다. “야들야들 실제 살 같아서”라고 했는데, ‘금기’, ‘공간’ 등 작품을 대하면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여전히 나를 찾지 못한 나를 발견하는 자화상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누드화에서 의미 찾기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이유는 화폭을 채우는 구도가 짜임새가 있고 뒷배경이 나신을 잘 감싸기 때문이다. 관람객이 누드화 앞에 서서 발길을 뗄 수 없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매력’을 한 움큼씩 쥐고 아쉽게 시선을 돌리는 행동은 모든 관람객이 보여준다.

 최선미는 “2017년 ‘Begin Again’ 이후 2년 동안 성장을 위한 몸부림을 쳤다”고 했다. 성장을 위해선 성장통이 따르기 마련. 성장통을 내면 성숙과 기교로 채웠다. 인물화에서 성숙의 이미지를 떠올리기는 쉽다. 기교의 현란함은 최선미가 지역의 울타리를 넘어 전국에 미친다는 자신감이다.

 “현대 작가들은 위태로운 선에 서 있어요. 기본기가 안 돼 있고 부끄러움도 없이 모작을 하거나 도용하기를 예사로 하거든요. 작가 정신은 바닥을 치고 있어요”라는 최선미 작가는 그래서 ‘공부’를 더 열심히 한다. 독한 마음을 품고 작품에 매진하기 때문에 “준비하며 기다린다”는 최선미 작가에게 전국에서 러브콜이 울린다. 자신의 작품에 자신감을 최선미 작가는 타인의 시선에서 얻었다.

her1 65x65㎝, Acrylic on canvas. 2019
her1 65x65㎝, Acrylic on canvas. 2019

 작품할 때 구상과정 90%… ‘치열한 작가정신’

 지난 8월 서울 전시회가 열릴 때 노광 작가는 일주일 내내 최선미의 작품을 보러왔다. 인물화 대가의 눈에 그의 작품이 꼽혔다. 여러 미술 비평가의 극찬은 “다음 작품이 기대된다”는 말에 방점을 찍었다. 갤러리를 찾은 한 관람객은 최선미 작품에 발이 안 떨어져 작품을 사서 들고 갔다. 미술 콜렉터에게도 통했다. 최선미 작품은 구매 목록에 촘촘하게 올라가고 있다. 최 작가가 작품 가격을 흔들림 없이 고집하는 이유는 작품의 자신감에서 나온다.

 “작품을 할 때 구상작업이 90%를 차지해요. 오랫동안 작품을 구상하면서 속앓이를 하고, 임신부가 아이를 출산하듯 화폭에 옮기는 작업이 작품 하는 행위지요. 작품을 제값에 사 가지 않은 사람은 작가의 창작행위를 도둑질하려는 심보를 가졌다고 볼 수 있어요.” 최 작가는 콜렉터들이 싸게 자신의 작품을 사 가려는 것을 거부한다. 그는 “비싸서 못 사겠다”는 말을 듣기를 바란다. 자신이 잉태해 내는 작품은 인고가 담겨있다. 구상 과정에서 숱한 시간을 지난한 몸부림으로 하얗게 만든 보상을 받겠다는 발칙한 생각도 깔려있지만, 최선미 작가의 자부심이 용납하지 않는다. 최선미 작가는 자부심이 아니라 ‘정체성’이라고 했다. 작가로서 예리한 칼을 휘두를 수 있는 힘이다.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어떻게 전시하는 가”를 아는 게 최 작가에게는 정체성이다. 정체성이 없으면 상처를 받는다는 것도 최 작가는 잘 안다. 지난 8월 서울 전시회에서 관람객이 줄을 서서 작품을 감상하고 “작품 참 좋다”는 말을 들을 때 그의 정체성에 몇 줄기 힘이 더해졌다.

her2 100x80.5㎝, Acrylic on canvas. 2019
her2 100x80.5㎝, Acrylic on canvas. 2019

 하지만 자신을 진솔하게 보는 마니아를 대하면 생각이 달라진다. 작품을 보면서 애를 태우는 마니아를 보고 작품 값을 나눠 주겠다고 해도 작품을 선뜻 벽에서 떼어 내 그의 가슴에 안긴다. 작품의 진정성을 아는 사람을 만나는 행복을 요즘 최 작가는 자주 느낀다. 최 작가가 ‘인사동에서 통했다’고 자신하는 이유는 우연히 갤러리에 들러 작품을 본 사람이 마니아가 되기 때문이다. 그들과 작품의 세계를 공유하는 최선미 작가는 행복하다. 서울 전시회와 여러 아트페어에서 콜렉터의 눈길을 잡은 최 작가는 지방에서 작품 활동을 하면서도 ‘서울 문턱은 높지 않다’는 자신감이 더욱 치열한 작품활동 세계로 내몬다. 물론 즐거운 작품여행이다.

 대략 2년 만에 자신의 굳건한 작품세계를 뿜어냈던 최 작가는 다음 2년을 또 마음에 이미 그렸다. 또 다른 변신 2년은 수채화로 채워가려는 계획에 설렘이 묻어있다. 기존 수채화의 스타일을 벗고 ‘다른 수채화’를 선보일거라는 작가의 선언은 벌써 많은 마니아의 마음을 당기고 있다.

空間 100x80.5㎝, Acrylic on canvas. 2019
空間 100x80.5㎝, Acrylic on canvas. 2019

 고독은 ‘무’에서 다시 ‘유’를 찾는 몸짓

 최 작가가 이번 ‘고독 전시회’에서 누드화로 속에 내재됐던 금기를 깨고 자유선언을 한 것은 자신감의 표출이다.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드러내 자신을 비워 무(無)를 만들고 다시 채워 유(有)가 되는 선순환의 과정이다. 꾸밈없이 보여주는 자신감은 다시 채울 수 있다는 선언이다. 고독은 스스로 무너져 내리는 무가 아닌 유를 향한 몸짓이다.

 최선미 작가가 인물화에서 매력을 발산했다면 풍경화에서는 자유를 뿜어낸다. 화려한 기교를 비틀어 절제된 붓칠로 세상을 담아 화폭에서 세상이 활짝 연다. 작품을 그리다 한쪽에 밀쳐놓고 다른 작품을 그리고 마음속에 끌림이 오면 밀쳤던 작품을 당겨 다시 그린다. 시간에 구애를 받지 않지만 ‘필’이 오면 다시 붓을 잡는 장인정신이 그림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치열한 생각과 여유가 동시에 담기는 작품에서 꽉 짜였지만 무한한 자유를 감지한다. 작품 ‘11월의 주남’을 보면서 저수지의 무질서한 수면에서 생명을 꿈꿀 수 있는 힘은 최 작가의 배려다. 아크릴 물감에서 나온 색의 조화는 다른 작가가 흉내 내기 힘들다. 옅은 어두운 화면을 보고 있으면 밝은 빛이 돋아나는 환희를 맛보는 최 작가의 풍경화에서 깊은 자유의 맛은 살아난다.

김해 스페이스가율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최선미 작가.
김해 스페이스가율 전시장에서 포즈를 취한 최선미 작가.

 더 많은 사람들이 눈길 보내는 작품 잉태

 최선미 작가가 50을 넘기며 “다시 시작”을 외쳤는데 지금 와서 “이제 시작”이라고 슬쩍 말을 건넨다. 자신을 덮었던 모든 금기를 깨고 창공을 나는 최선미 작가의 다음 목적지는 삶 자체를 그리는 화가다. 흔들리지 않고 붓끝에 힘이 있을 때까지 삶을 관통하는 그림을 선보일 최선미 작가에게 더 많은 사람들이 눈길을 두는 이유는 간단하다. 최선미 작가의 그림엔 깊은 사유를 담은 인생이 있고 뛰어난 장인의 숙고해서 길어낸 작품성이 있기 때문이다.

 아쉽게도 최선미 작가의 김해서부문화센터 스페이스가율에서 열리는 제5회 개인전 ‘고독’은 오늘(30일) 문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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