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8 10:27 (목)
노마드 열풍
노마드 열풍
  • 이광수
  • 승인 2019.12.15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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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노마드(nomad)는 `유목민, 정착하지 않고 떠돌아다니는 사람` 이란 뜻이다. IT 기술의 발달로 새롭게 등장한 21세기형 신인류를 의미한다. 여행을 즐기는 트래블러(traveler)와 보헤미안 스타일을 선호하는 사람과 비슷한 부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유목민은 가축을 기르며 초지를 따라 옮겨 다니며 사는 떠돌이 민족이다. 집시족과는 다른 부류에 속한다. 유라시아, 북아프리카, 중동지방의 사막과 초원지대나 반사막 지대에 거주하는 민족이었으나, 지금은 몽골고원과 이란고원, 북부 아프리카 사막지대, 아라비아반도 일부 지역에만 남아 있다.

 이런 유목민 같은 떠돌이 형 삶을 즐기며 사는 21세기형 신인류를 노마드족이라고 부른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휴대폰, 노트북, 디지털카메라 등의 첨단 장비를 활용해 시공간에 구애받지 않고 인터넷에 접속해 필요한 정보를 찾아 쌍방 커뮤니케이션으로 세상과 소통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일과 휴식의 구분이 애매모호한 생활을 하면서 직업과 개인 생활에 대한 경계를 허물어 버린다. 이들은 시간과 공간에 제약받지 않고 자유롭게 살기 때문에 삶의 가치와 방식에 제한받거나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자유분방한 생활방식을 추구한다.

 캐나다 미디어 학자 마셜 매클루언은 `사람들은 빠르게 이동하면서 전자제품을 이용하는 유목민이 될 것이다`고 30년 전에 예언했다. 지금 휴대폰의 활용도를 보면 그걸 증명하고도 남는다. 걸어가면서 통화하고, 식사하면서 폰으로 유튜브를 보고, 직장에서 일하면서 노트북을 열어놓고 타인과 소통하거나 정보를 찾는다. TV 전성시대가 저물고 크리에이터가 직접 제작해 실시간으로 업로드하는 유튜브 시청자 수가 지상파와 종편채널 시청자 수를 압도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도 같은 맥락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노마드(nomard)는 라틴어로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가 그의 저서 <차이와 반복:Difference and Repetition>에서 노마디즘(nomadism)이란 용어를 사용한 데서 유래된 말이다. 노마드의 키워드는 `자유롭고 창조적인 인간형의 추구`로 이동하는 자만 살아남는다고 말할 수 있다. 노마드족은 한자리에 앉아서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계속 자신을 변화시켜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지향하는 사람이다.

 1990년대 말경 독일의 미래학자 군둘라 엥리슈는 <잡노마드 사회:Job Nomaden>에서 오늘날 21세기형 신인류의 모습을 예측했다. 잡 노마드는 평생 한 직장, 한 지역, 한 가지 업종에 매여 살지 않는다. 승진 경쟁에도 집착하지 않고, 회사를 위해 목숨 바쳐 일하지도 않는다. 직업도 정규직이 아닌 투 잡, 쓰리 잡으로 자신의 주특기와 취향에 따라 프리 잡이 대세다. 요즘 젊은 20~30세대들의 직업관과 그 맥을 같이한다. 이미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보편화돼 가는 직업 트렌드이다. 그러나 아직도 정규직에 목을 매달고 있는 한국은 명목상의 GDP로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이라지만 실속을 들여다보면 중진국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다.

 노마드의 유형은 다양하다. 잡 노마드(job nomad)뿐만 아니라 하우스 노마드(house nomad)도 그 중심에 있다. 지금까지 집은 정착을 의미했으나 이제 집도 소유나 정착이 아닌 자유롭게 세계 이곳저곳으로 옮겨 다니며 사는 임시 주거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아파트 분양에 매달리는 우리나라 사람들을 보면 21세기형 노마드족과는 한참 거리가 멀어 보인다. 머잖은 미래에 아파트는 임시 주거공간으로 변할 시기가 도래할 것이다. 집은 잠시 머무는 휴식 공간 이상의 의미를 상실했다고 노마드족은 생각한다. 그 밖에 온라인과 SNS에서 공유하며 핫 딜(hot deal)을 쫓는 순례 쇼핑족도 노마드의 전형이다. 가성비를 넘어 가심비를 따라잡는 오픈마켓, 소설커머스, 모바일앱 쇼핑이 대세다. 공유경제(share economy)가 새로운 경제 트렌드로 떠오르는 것 역시 노마드 신드롬의 한 유형이다.

 이처럼 잡, 하우스, 쇼핑, 디지털, SNS, 미각, 5060 등으로 이어지는 노마드 열풍과 생활방식은 점차 대중화되는 추세다. 개성시대를 넘어 기존의 생활방식에 얽매이기를 거부하는 신세대의 자유분방한 삶의 형식과 트렌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AI 시대의 도래와 함께 질풍노도처럼 밀려오는 노마드족의 자유로운 삶의 형식은 단지 젊은 세대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100세 장수 시대를 맞아 이모작 인생을 시작하려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과 스타일을 획기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은퇴기의 장ㆍ 노년들에게도 노마드족과 같은 삶의 방식은 결코 수용 불가능한 생활방식이 아니라 적응 가능한 삶의 트렌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돌궐족의 명장이었던 톤유쿠크가 사망하자 그의 묘지 앞에 `성을 쌓는 자는 반드시 망할 것이며, 끊임없이 이동하는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다`는 비명을 새긴 비석을 세워 놓았다. 후손들에게 종족 생존의 지혜를 전하는 명구가 아닐 수 없다. 격변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노마드 콘셉트가 먹혀드는 이유를 지난 역사가 말해주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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