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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의 미각회해 - 개고기 뇌물로 얻은 벼슬
김영복의 미각회해 - 개고기 뇌물로 얻은 벼슬
  • 김영복
  • 승인 2019.11.25 2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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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이열치열ㆍ이냉치냉이라는 말이 있다. 열은 열로 다스리고 냉은 냉으로 다스린다는 말이다. 사람의 정상체온은 36.5~37℃를 유지하게 된다. 여름에 뜨거운 음식을 먹게 되면 당연히 몸속 온도가 높아진다. 몸속 온도가 급속히 상승하면 정상체온을 유지하기 위해 피부의 온도가 낮아진다. 속은 뜨겁지만 겉은 차가워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뜨거운 음식을 먹으며 시원하다고 표현하게 된다. 우리 조상의 이런 지혜가 겨울에 냉면을 먹고 여름에는 육개장을 먹었다.

 장마가 지나면 다시 폭염이 계속돼 불쾌지수가 상승하게 되면 시원한 계곡 등을 찾기도 하겠지만 쇠고기, 파, 고사리 등을 넣고 끓인 육개장을 먹으며 땀을 뻘뻘 흘리던 조상의 지혜를 따라 해 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그런데 이 육개장의 유래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개장국`이 나온다.그리고 개장국의 본류는 개장(狗醬)으로부터 시작된다. 1800년 전후 정조 때 활약했던 실학자인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이 쓴 `경도잡지`를 보면 개장은 원래 개고기를 찐 것이었고, 지금의 국을 말아 먹는 스타일과는 달랐던 것으로 보인다. `개고기를 푹 찐다`는 부분의 원문은 `훈증(燻蒸)`이다. 찐다는 의미의 `증` 자를 쓰고 있다. 그리고 "다시 국을 만든다"라고 돼 있다. 그러니 개장은 찌는 요리다. 이 개장을 국으로 했을 때 개장국이 되는 것이다. 유득공은 `경도잡지`에서 "개고기를 총백(파의 밑동)과 섞어 푹 찐다. 닭고기나 죽순을 넣으면 맛이 더욱 좋다. 이것을 개장이라 부른다. 혹 국을 끓여 고춧가루를 뿌려 흰 쌀밥을 말아서 먹기도 한다. 이것을 먹고 땀을 내면 더위를 물리치고 허한 기운을 보충할 수 있다"라고 쓰고 있다.

 개장국을 혐오식품으로 기피하는 현상은 이미 조선 시대부터 있었다. 조선말의 문신인 이유원(李裕元, 1814~1888)이 쓴 `임하필기`의 `정승이 개장국을 즐겨 먹은 일`이란 글에 북경에 가서까지 개고기를 삶아 대령하라고 해서 먹은 심상규와 남의 집 잔치에 나온 개장국을 보고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이 아니라며 먹지 않았던 이종성의 일화가 소개돼 있다. 조선왕조실록 정조실록 1년(1777) 사도세자의 서자 은언군 이인(1754~1801)을 추대하려는 역모를 꾀하던 일당을 심문하는 과정에서 개장국 이야기가 나온다. 정흥문의 자술서에 "7월 28일에 대궐 밖의 개 잡는 집에서 강용휘와 제가 개장국을 사 먹은 뒤 같이 대궐로 들어갔습니다"라는 기록이 있다. 이 시대 이미 한양에 개장국을 상시적으로 파는 식당이 있었던 것이다.특히 조선왕조실록 중종실록 31년(1536) 이팽수라는 자는 좌의정 김안로가 개고기를 몹시 즐기는 것을 알아차리고 봉상시참봉에 오르자 개적(狗炙: 개고기구이)을 가져다 바쳤고 이팽수와 한 고향마을 태생이었던 김안로는 이팽수를 승정원 주서 제수하도록 했다. 승정원 주서는 정7품 벼슬로 사초를 쓰는 일을 맡아보았다. 이팽수가 구적으로 주서가 됐으므로 세간에서는 이팽수를 가장주서(家獐注書)라 불렀는데, 가장이란 집에서 기르는 `집노루`란 뜻인데, 개고기를 가장으로 불렀던 것이다. 19세기 초반인 조선시대 문신 윤기가 성균관에서 보낸 20여 년을 220편의 시로 쓴 `반중잡영`에 "서재 네 번째 방에선 개고기를 먹다 체해서 죽은 유생의 귀신이 나오기도 했다"고 하는 내용과 복날 참외 등과 함께 개고기가 나온다는 내용이 실려 있다. 이토록 일반 백성이나 심지어 유생과 사대부까지 개장, 개구이, 개장국을 즐겨 먹었으나 여름철 보양 음식으로 궁중에서 임금께 개장국을 올릴 수 없어 쇠고기와 여러 채소, 고사리나 숙주나물 등 나물을 푹 삶아 끓인 육개장을 올렸던 것이다. 흔히 육개장을 `육계장`으로 표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잘못 표기한 것이며, 육개장의 쇠고기 대신 닭고기를 썼을 경우는 `닭개장`이라 표기해야 옳은 표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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