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를 슬프게 만드는 상(賞)
우리 모두를 슬프게 만드는 상(賞)
  • 박재근 기자
  • 승인 2019.11.17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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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자 칼럼니스트 박재근
대기자 칼럼니스트 박재근

훈장ㆍ메달 등 상으로 도배된 사회
고향 집 벽면 빼곡한 상… 우리 정서
지자체-민간단체 `돈 주고 상 받기` 관행

조국 낙마에 꽤거라며 상 주는 한국당
치적용 상 막을 논공행상 중요시 해야

 헤켈은 인간의 고유한 특성을 훈장, 표창, 메달 등 상(賞) 때문에 목숨까지 바치는 유일한 존재라는 데서 찾았다지만, 이러하듯 상이란 게 참 묘하다. 금수저의 스펙 쌓기 표창장, 별 볼 일 없는 의정활동에도 수상한 상을 자랑하는 의원, 표창상신을 둘러싼 직원 간의 다툼 등은 신뢰를 좀 먹는다. 또 혈세구입으로 논란이지만 경남 도내 A 시장은 자치대상을, B 군수는 경영대상을 전하는 현수막이 청사 벽면을 차지하는 등 우리 사회가 온통 상(賞)으로 도배하듯, 난리 통이다.

 2005년 제10회 부산국제영화제 때 `나에게 표창장을 줘요`란 영화는 화제작이었다. 난징일보의 수석 민완 기자 `구`에게 촌티가 줄줄 흐르는 중년 사나이 `양`이 찾아와서 다짜고짜 자신의 선행을 기사화해달라고 간청한다. 비 내리는 야밤 난징시의 외곽에서 성폭행당할 위기에 처한 여대생을 자신이 구해 주었다면서….

 처음에는 이 황당한 요구를 일소에 부쳤으나 `양`의 집요한 태도에 떠밀려서 `구`는 사실 확인에 나선다. 어찌어찌 피해자인 여학생을 찾아냈으나 증인이 없다. 나중에 `양`이 보여주는 그 집요성의 이유가 밝혀진다. 평생 인민 노동자의 표상으로 칭송되며 받은 숱한 표창장들을 벽에 가득 붙여놓고 그것을 쳐다보는 것을 낙으로 살던 고향마을의 늙은 아버지가 죽기 전에 아들 `양`이 받은 표창장을 방 벽에 붙여 놓고 싶어 했던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와 다를 바 없다. 세월이 흐른 지금, 보기가 흔치 않지만 고향 집 대청마루 벽을 차지한 것은 표창장이었다. 하다못해 온갖 의미를 부여한 개근상이라도 벽면을 차지하고 있었다. 벽면을 차지한 게 우리들의 정서였다.

 이런 상의 가치가 바닥이다. 치적 또는 신분세탁용으로 활용하려는 일이 잦아서다. 그것도 지방자치제 이후, 부쩍 늘어났다. 때문인지 시민단체의 실태조사 결과 전국 지자체는 특정 단체 민간단체에 대한 `돈 주고 상 받기`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3년간 각종 시상식에 응모해 지자체와 단체장이 받은 상은 400여 개에 이르고 지출액만 수십억 원 가까이 되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9년 정부가 `편법지출`이라며 금지했지만 현재까지도 돈 주고 상(賞) 받기 관행이 여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서울시 산하 공기업인 서울교통공사의 정규직 전환 근로자 1천285명 중 192명(14.9%)이 기존 직원의 친인척인 사실이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났다. 전직ㆍ퇴직자까지 포함하면 19%에 이른다. `고용 세습`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수 십 대 일의 경쟁을 뚫어야 입사할 수 있는 공기업 정규직에 친인척을 뒷문으로 밀어 넣고, 불공정ㆍ불투명한 정규직 전환으로 취업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는 청년들에게 좌절감을 안겨줬다.

 감사원은 서울교통공사 사장을 해임하라고 통보하고 비정규직 제로 정책을 밀어붙여 황당한 결과를 초래한 서울시장에 대해서도 주의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서울시장은 "감사 결과를 수용할 수 없다"면서 "정규직 전환은 칭찬받고 상 받아야 하는 일"이라고 반박했다지만 국민에게 사과하지 않고 상(賞) 받을 일을 했는지가 의문이다.

 한국당의 갈라치기 표창장은 소가 들어도 웃을 일이다. 전 법무부 장관 `조국 낙마`라는 `쾌거`를 거두는 데 공을 세웠다는 것이다. 상품권 50만 원도 줬다. 이 소식에 도민은 물론이고 한국당의 당원들마저 "개탄스럽다", "암담하다"는 말이 쏟아졌다. 대통령이 위선자를 법무부 장관에 임명하고 폭주가 가능했던 것은 유명무실하고 한심한 야당의 책임도 없지 않다. 야당이 강력한 대안으로 존재하면 어떤 정권도 이렇게 함부로 폭주하지 못한다. 답답하고 분통이 터진 국민이 광화문으로 몰렸다. 이 모든 사태에 웃고 즐기는 국민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에서 웃음꽃이 피었다니….

 일벌백계(一罰百戒)보다 상일권백(賞一勸百)이 한 차원 높은 방법이라지만 표창장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한심하다 못해 이 정권의 폭주가 계속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국민이 적지 않을 것이다. 깊이 반성해야 할 일이다. 고대 병법서인 삼략(三略)에는 `향이지하 필유사어(香餌之下 必有死魚) 중상지하 필유용부(重賞之下 必有勇夫)`란 구절이 있다. 향기로운 미끼 아래는 반드시 이에 걸려 죽은 물고기가 있고 후한 상 아래에는 반드시 목숨을 걸고 싸우는 용사가 있기 마련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공과를 분명하게 조사해 그 크고 작음에 따라 엄정하게 서열을 매겨 상을 내리는 논공행상(論功行賞)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업적이나 잘한 행위를 칭찬하기 위한 것과는 달리 치적용으로 또는 스펙으로 활용하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짬짜미 상(賞)이 넘쳐나는 경우, 우리 모두를 슬프게 또는 무척 화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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