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열의 서향만리 - 지방 오페라단의 `광란의 아리아`
류한열의 서향만리 - 지방 오페라단의 `광란의 아리아`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11.14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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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지방 오페라단이 오페라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 데는
큰 힘이 든다. 공연 문화

가운데 가장 큰 무대를
마련하려면 여러 단체의
힘이 필요하다. 지역 주민들이
큰 공연을 향유하는 특권을
누리는데 오페라단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

 지난 5일 오후 7시를 살짝 넘어선 김해문화의전당 마루홀 앞 로비. 수많은 사람들이 오페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를 관람하기 위해 로비에서 웅성거렸다. 가야오페라단이 무대에 올리는 오페라는 지방에서 감상하기 힘든(?) 대작들이라 기대감은 홀 밖에서도 넘실댔다. 안면이 익은 관객들은 마루홀에 들어가기 전에 서로 인사를 나눴다. 김해문화의전당에서 뜻밖의 만남이 내심 더 반가운 듯 얼굴에는 밝은 빛을 드러냈다. 마음먹고 공연을 즐기려고 전당을 찾은 사람들은 가을 밤 두 시간을 제대로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 삶에서 이탈한 정신을 제자리로 옮겨놓는 여유는 진한 공연의 장에서 찾을 수 있다. 지방 공연 인프라를 서울과 비교하는 자체가 모순이지만 지방의 무대를 만드는 가야오페라단은 김해 문화를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고 말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그날 무대가 증명을 했기 때문이다.

 친절한 해설과 함께 즐긴 렉처오페라는 3막 2장 루치아의 광란의 아리아에서 모든 관객의 호흡을 멎게 만들었다. 루치아가 피 묻은 잠옷을 입고 머리를 헤쳐 풀고 유명한 아리아인 `님의 목소리 내 마음속에 스며서 감도네(Il dolce suono micolpi)`를 토해낼 때 관객은 숨을 죽였다. 루치아의 절규가 관객의 가슴에 깊이 새겨졌을 터. 다음 날 한 지인한테서 들은 말. "루치아가 피를 토한 아리아의 여운이 아직도 마음에 있다." 그 지인은 "늦은 가을밤에 힐링 샤워를 했다"고 덧붙였다. 공연 문화의 힘이다. 지역 공연 문화 바탕에서 지역 오페라단이 버티는 힘은 관객에서 나온다. 하지만 지방 관객은 약하다. 문화 공연을 자발적으로 찾는 착한 관객은 드물다. 지방 오페라단은 훗날 이삭을 거두기 위해 지금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형국이다.

 도내에서 활동하는 오페라단을 꼽으려면 한 손안에 들어온다. 공연 문화의 최고봉에 선 오페라단을 유지하기가 힘들다는 이야기다. 재정적인 압박은 당연히 감수하지만 지방 오페라 가수를 낮게 치는 선입관도 한몫한다. 창원에서 활동하는 한 오페라단의 커튼을 들춰 보면 오페라 가수 대부분은 지방 출신이 아니고 중앙에서 내려왔다. 겉모습은 지방 오페라단 옷 입고 있지만 속은 중앙 오페라 단원으로 채워져 있다. 오페라 무대에 설 기회가 많지 않은 지방 출신 오페라 가수는 무대에서 열창을 해야 하는데 무대 밖에서 열을 받아야 한다. 무대에 서는 기회를 잡는 오페라 가수가 중앙에서 많이 배출되는 건 당연한 일. 지방대학 성악과는 많지 않다. 이런 구도 속에서 인제대 성악과 출신이 여러 무대에서 실력을 발휘하는 기세는 예사롭지 않다. 인제대 성악과 학생들이 배우는 과정에서 제대로 훈련을 받아 잘 다듬어졌다는 증거가 무대 목소리에서 그대로 나온다. 훌륭한 교수들이 훌륭한 제자를 길러내는 청출어람의 현장이 인제대 성악과에서 빚어지고 있다.

 지방 오페라단이 오페라 한 편을 무대에 올리는 데는 큰 힘이 든다. 공연 문화 가운데 가장 큰 무대를 마련하려면 여러 단체의 힘이 필요하다. 지역 주민들이 큰 공연을 향유하는 특권을 누리는데 오페라단에게만 책임을 지우는 것은 가혹하다. 지방 문화의 힘은 진정한 지방자치를 만드는 밑거름이 된다. 지방분권이 여전히 걸음마 단계에서 지방재정도 앵벌이 수준이다. 지방자치가 중앙정부의 지원이 없으면 제대로 실현되기 힘들다. 지방재정이 흔들리는 상황에서 지방 공연문화가 제대로 자리 잡기는 힘들다. 하지만 지방 공연문화는 지역 주민의 삶을 받드는 힘이다. 역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지방 공연문화가 먼저 살아야 지방자치가 힘을 발휘할 수 있다.

 강동민 가야오페라단 단장은 지역 공연문화의 불꽃을 키우는 전사와 같다. 지역 단체로부터 제대로 도움이 없는 환경에서 해마다 오페라 작품을 무대에 올린다. 가야오페라단은 김해시민에게는 공연문화의 목마름을 채우는 오아시스다.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무대에서 루치아(소프라노 성정아)가 광란의 아리아를 뿜어낼 때 아름다운 선율과 장중한 비극은 김해시민에게 카타르시스가 됐다. 제2의 광란의 아리아가 무대에서 올려지기 위해서는 지방문화의 영역을 확대하려는 단체와 개인의 `아름다운 광기`가 필요하다. 처절한 삶의 비극에서 인간이 희극을 찾을 수 있는 이유를 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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