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6:41 (금)
한국전쟁과 스웨덴 사람들
한국전쟁과 스웨덴 사람들
  • 김중걸 기자
  • 승인 2019.11.13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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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장/부산취재본부장 김중걸
부국장/부산취재본부장 김중걸

 인간은 은혜를 갚아야 한다.

 감사와 고마움, 은혜와 관련된 사자성어는 많다. `구로지은`은 자기를 낳아서 기른 어버이의 은덕을 이르는 성어이며 `여산대은`은 산 만큼이나 크고 많은 은혜를, `불망지은`은 잊지 못할 은혜를, `난망지은`은 잊을 수 없는 은혜, `각골난망`은 은혜를 입은 고마움이 뼈에 깊이 새겨져 잊히지 않는다는 것을 이르는 말이다. `백골난망`은 죽어도 잊지 못할 은혜를 입음이란 뜻으로 남에게 큰 은혜나 덕을 입었을 때 고마움을 표시하는 말이며 `망극지은`은 끝없이 베풀어 주는 혜택이나 고마움이다.

 최근 어떤 은혜로 엮이게 됐는지는 모르나 우리 사회 지도층에서는 자녀, 친인척 등 가족과 관련된 취업 등 부적절한 청탁 등으로 재판을 받는 등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다. 은혜에 보답하는 것은 인간이 해야 할 당연한 책무이다. 그러나 은혜로 둔갑한 비뚤어진 거래행위는 반드시 근절돼야 할 적폐이다.

 최근 우리는 태산보다도 큰 은혜를 잠시 잊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한 번쯤 돌아보는 계기가 있었다.

 올해는 한국과 스웨덴이 수교를 맺은 지 60주년이 되는 해이다. 스웨덴과 한국과의 인연은 1959년 수교에 앞서 10년 전인 1950년 6ㆍ25 한국전쟁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테니스`, `아바`, `자동차`로 잘 알려진 스웨덴은 우리가 은혜를 갚아야 나라이다.

 스웨덴은 한국전쟁에 제일 먼저 유엔군 일원으로 적십자 의료진을 파견한 우방이다. 스웨덴 의료진은 미국과 한국을 제외한 최초의 의료지원단으로 의료참전을 한 6개국 중에서 가장 많은 1천124명의 의료진을 파견했다. 이어 덴마크(630명), 인도(627명), 노르웨이(623명), 이탈리아(128명), 독일(117명) 순으로 의료참전을 했다. 스웨덴 의료참전은 부상병만 치료를 한 것이 아니라 피란민, 부산 등 영남권 주민들에게 의술이 아닌 인술을 베푼 결코 다 갚지 못할 은혜를 준 은인이다.

 1950년 9월부터 1957년 4월까지 부산시 부산진구(현 롯데호텔 부지)와 남구(현 부경대 부지)에 주둔했던 스웨덴 야전병원인 `서전((瑞典ㆍ스웨덴 한자 표기) 병원`은 6년 7개월 간 국군은 물론 연합군, 심지어 적군인 중공군과 북한군까지 치료를 했다. 민간인에게까지 의료 시혜를 개방한 서전 병원은 200만 명가량의 민간인을 치료해 줬다. 휴전 후에는 병원시설 등을 남겨 둬 한국민들, 특히 부산 등 영남권의 의료복지에 단단히 한몫하도록 했다.

 그동안 잊고 있었던 스웨덴 의료참전 용사들의 은혜를 되새기게 하는 기회가 70년 만에 찾아왔다. 주한 스웨덴 대사관이 지난 5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부산, 광주, 인천, 대구에서 제8회 스웨덴 영화제를 열면서 의미 있는 다큐멘터리 작품을 상영했다. `한국전쟁과 스웨덴 사람들(The Swedes in the Korean War)`이라는 제목의 다큐는 한국전쟁에 의료참전을 한 스웨덴 사람들과 유엔군, 한국민 등 의료 혜택을 입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다큐는 1950년 9월 23일 유엔사령부의 부산지역 탈환 직후 150명의 스웨덴 의료진과 의료 지원단이 부산항에 도착해 이틀 후 68명의 환자를 치료한 내용을 당시 의료참전용사와 환자들의 증언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 영화 속에서 69년이 지난 현재 노령이 된 이들의 이야기는 스웨덴과 한국이 어떻게 관계를 맺고 우정을 나누며 끈끈한 유대를 지속하게 됐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양국이 민주국가로 거듭나 국제관계를 이뤄 온 데 대한 이해를 돕는 아주 중요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담았다.

 다큐는 2014년 스웨덴 퇴역 장군 라스 프리스크(Lars Frisk) 씨가 제작을 기획해 스웨덴 아카-필름(AKA-Film)이 2017년 촬영에 들어가 올해 초 완성했다. 지난 3월 한국-스웨덴 수교 60주년 기념행사에 공개된 이후 국내에서는 이번 스웨덴 영화제를 통해 민간인에게 첫 상영 됐다.

 지난 8일 오후 부산 영화의전당 소극장에 마련된 상영장에서 주한 스웨덴 대사관 엘레노어 칸테르 부대사는 "올해 스웨덴과 한국이 수교 60주년을 맞았는데 양국의 인연을 그보다 훨씬 이전인 70년 전 부산에서 시작됐다"며 "이 다큐멘터리를 만들 수 있게 도와준 관계자와 부산시민이 한자리에 모일 수 있어 매우 기쁘다"고 밝혔다. 특히 이 자리에는 당시 스웨덴 야전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다큐멘터리에 출연해 증언한 민간인들은 영화감상을 하며 당시를 회상하고 은혜에 고마움을 다시 한번 표시했다.

 영화를 본 박재범 부산 남구청장은 "특히 부산은 스웨덴에 큰 빚을 지고 있는데 우리가 먼저 다큐를 제작해 고마운 마음을 전해야 했는데 놓치고 말았다 앞으로 잘 챙기겠다"며 반성의 말을 전했다.

 고귀한 생명을 구해 준 스웨덴 의료참전에 우리는 자만을 버리고 선린과 우호의 정신으로 은혜를 아는 동방예의지국민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스웨덴 제작사가 한국 지상파에 방영을 위해 논의 중이라는 조윤진 주한 스웨덴대사관 정치 국방담당관의 말에 따라 전 국민이 다큐를 감상을 통해 스웨덴 의료참전과 70년의 우호, 그리고 전 세계 참전용사에게 다시 한번 감사하는 마음 가질 수 있는 시간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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