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19 15:45 (화)
일본에서 온 편지
일본에서 온 편지
  • 송삼범 기자
  • 승인 2019.11.05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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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부 차장 송삼범
지방자치부 차장 송삼범

얼마 전 지인들과 저녁을 먹고 근처의 선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는 자리가 있어 모임에 참석했다. 골목 귀퉁이에 붙은 작은 술집이라 그런지 그날따라 손님은 우리 일행뿐이었다.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쯤 60은 넘어 보이는 한 중년의 남성이 들어왔다. 그분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보더니 곧장 식당 주인에게 우리 음식을 가리켜 "이것, 이것"이라고만 짧게 주문한 뒤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았다. 너무 허겁지게 들어와 메뉴도 제대로 보지 않고 우리와 똑같은 음식을 주문하는 손님을 본 젊은 여주인이 우리에게 다가와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고 말했다. 우린 나이도 드실 만큼 드신 분이 뭔 일이 있겠냐며 괜찮을 거라 이야기하고 우리의 이야기를 이어갔다.

 가장 구석진 자리에 앉아 음식이 나왔을 때 허겁지겁 먹는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져 다가가 말을 걸었더니 일본에서 합천으로 여행을 온 분이었다.

 나는 예전에 선후배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갔을 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이 있었다. 혹시나 이곳에 나 혼자 여행을 왔다면 어떤 느낌일까? 그때 내가 내린 결론은 막막하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 도움을 받으면 좋겠다는 게 결론이었다. 그래서일까? 난 그분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고 싶어 나를 소개했더니 흔쾌히 자리를 내주었다.

 자신은 후쿠오카에서 온 `이시나가 신조`라고 자신을 소개하고는 `이 상`이라고 불러 달라며 1950년생이라고 말했다. 이 상은 지도 하나와 책자 하나만 갖고 대구에 도착해 합천을 거쳐 통영을 여행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합천에 와서 식당을 찾지 못하고 하루 종일 굶어서 배가 너무 고팠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분은 쌍백면에 위치한 합천박물관을 하루 종일 돌아다니면서 합천 역사를 공부한 뒤 식당을 찾아봤지만 일본식당과는 달리 식당에 음식 사진이 없어 식당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그리고는 짧은 한국어로 "식당 없어"라고 말했다. 이윽고 저녁이 돼서야 합천 읍내의 골목길을 헤매다 일본식과 비슷한 선술집에 들어오게 됐다고 말했다.

 나는 이 상에게 나의 일행을 소개하고 싶다고 말했더니 흔쾌히 승낙해 주셔서 우리 일행과 합석해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이후 자연스러운 대화가 이어졌고 우린 현재 한국과 일본과의 불편한 관계에 대해서도 이야기하며 또 합천의 관광지에 대해서도 설명하며 친구가 됐다. 이윽고 술자리가 끝날 즈음에 난 그분에게 혹시 여행 중 어려운 일이 생기면 연락하라며 내 전화번호와 주소를 줬다.

 그리고 며칠 뒤 저녁 일본에서 국제 전화가 왔다. "송상 잘 도착했어요. 고마워요" 통화 중이라 어플 기능을 사용하지 못해 짧은 인사로만 끝냈지만 고마웠다. 하지만 또 며칠 뒤 일본에서 국제우편이 날아왔다. 우편 속에는 그날 우리 일행들과 즐거웠던 모습을 기억한 사진들을 한 장씩 인화해 선물로 보내온 것이었다.

 그날 내가 이 상을 배려한 행동이 이렇게 큰 기쁨으로 돌아올지는 몰랐지만 나의 작은 배려가 오히려 내게 큰 기쁨으로 돌아오니 친절은 베풀수록 좋은 것은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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