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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복의 미각회해 -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는
김영복의 미각회해 -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는
  • 김영복
  • 승인 2019.11.04 2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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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식생활문화연구가 김영복

 요즘 설렁탕이나 곰탕이 별반 차이가 없다. 설렁탕집에서 설렁탕을 팔고 곰탕집에서 곰탕을 파니 그러려니 하고 먹는다. 어쩌면 설렁탕집이나 곰탕집 주인들도 설렁탕과 곰탕의 차이를 제대로 아는 집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조선 숙종 때 실학자 홍만선(洪萬選 1643~1715)이 엮은 『산림경제』에 쇠고깃국[牛羹]과 쇠고기곰[煮牛肉]으로 구분해서 나오는데, 쇠고깃국은 `국 끓이는 법이 사슴고깃국과 같되, 다만 염통ㆍ간ㆍ양 복피 안의 고기는 반드시 중탕할 필요는 없고, 솥에 고아 흐늘흐늘하게 익은 뒤에 먹는다. 다만 콩팥은 따서 안팎의 피막을 긁어 버리고, 소금과 술은 좀 낫게, 초는 조금 부어 잠시 담갔다가 참기름ㆍ후추 양념을 넣어 고루 섞어 끓는 물을 넣고 볶아 먹는다`고 돼 있고, `쇠고기곰은, `팔팔 끓는 물에 넣고 뚜껑을 덮지 말고 뭉근한 불로 오래 익힌다`라 했다. 조리학적으로 보면 중탕할 필요까지 없는 쇠고깃국이 오늘날 `설렁탕`과 유사하고 뭉근한 불로 오래 익힌 `쇠고기곰`이 오늘날 곰탕이라 할 것이다.

 조선 순조 9년(1809) 여성 실학자 빙허각(憑虛閣) 이씨(李氏 1759~1824)가 쓴 『규합총서』 중 `충주 검부 앞 셜넝탕`이 최초로 나온다. 당시 셜넝탕, 셜렁탕, 설넝탕, 설녕탕, 설농탕 등 1950년대까지 설렁탕 표기가 통일되지 않고 사용된다. `탕반 하면 대구가 따라붙는 것처럼 설넝탕 하면 서울(경성)이 따라붙는다. 이만큼 설넝탕은 서울의 명물이다. 설넝탕 팔지 않는 음식점은 껄넝껄넝한 음식점이다`라고 할 정도이다. 1920년 경성 내외에 25군데 정도였던 설렁탕집은 1924년에 100군데로 급격하게 늘어난다. 1920년대 중반이 되자 `민중의 요구가 답지하고 조선사람의 식성에 적합한 설렁탕은 실로 조선 음식계의 패왕`으로 불렸다.

 곰국은 전통적으로 뼈나 고기 등을 오래 끓여서 진액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끓이는 국을 곰국이나 곰탕이라고 한다. 곰탕은 1489년(성종 20)에 윤호(尹壕 1424~1496) 임원준(任元濬 1423~1500), 허종 (許琮 1434∼1494)이 편찬 간행한 의학서 『구급간이방언해』에 나온 것처럼 `고은 국`, `곰국`에서 유래된 것이다. 1768년에 몽학훈장 이억성(李億成)이 엮어서 간행한 조선 시대 어학서 『몽어유해』에 `몽골에서는 맹물에 고기를 넣고 끓인 것을 공탕(空湯)이라 해, 여기서 공탕이 곰탕으로 변화된 것으로 본다`라고 썼다. 그러나 아무리 음운변화라고 해도 조리학적으로 보거나 우리나라 육류 변천사로 볼 때 근거 없는 이억성의 주장에 불과할 뿐이다.

 1800년대 말엽에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저자 미상의 조리서 『시의전서』에는 `고음은 소의 다리뼈, 사태, 도가니, 홀떼기, 꼬리, 양, 곤지소니, 전복, 해삼을 큰 그릇에 물을 많이 붓고 약한 불로 푹 고아 맛이 진하고 국물이 뽀얗다`라고 오늘날의 곰탕을 설명하고 있다.

설렁탕과 곰국의 차이는 조리학적으로 쇠고기를 끓인 것과 은근한 불로 오래 고은 것에 대한 차이로 구별된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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