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09:36 (금)
나아가고 멈추고 되돌아봐야 할 때
나아가고 멈추고 되돌아봐야 할 때
  • 이광수
  • 승인 2019.11.03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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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미국의 심리학자이자 철학자인 에이브러햄 매슬로우는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체계화한 인본주의 심리학자로 유명하다. 그는 인간의 욕구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에서 안전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 욕구로 상승한다고 했다. 최종단계인 자아실현 욕구를 최고의 만족적, 창조적 욕구실현의 완성이라고 했다. 앞의 4단계 욕구가 실현됐다 하더라도 마지막 욕구인 자아실현을 이루지 못하면 결국 실패한 인생이나 마찬가지다. 주역에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나는 용이 하늘에 있으니 대인을 봄이 이로우니라) 해 최고의 경지나 지위에 오르더라도 자아실현을 완성하지 못하면 황룡유회(亢龍有悔: 지나치게 높은 용이니 뉘우침이 있으리라) 하는 삶으로 인생을 마감하게 된다고 해석한다. 매슬로우는 이런 욕구가 실현되는 과정에서 마음이 바뀌면 습관이 달라지고, 습관이 바뀌면 성격이 달라지고, 성격이 바뀌면 인생이 달라진다고 했다. 그러나 인간은 자신이 처한 선천적 후천적 환경에 따라 매슬로우가 말한 욕구의 단계적 상승 실현이 좌절되거나 불가능하게 되는 것이 현실적인 삶이다. 이에 따라 인간의 태도와 습관, 성격이 다르게 형성돼 각자 삶의 형태가 다르게 된다. 부자와 빈자, 권력자와 비 권력자, 식자와 무식자, 선한 자와 악한 자, 성자와 필부필부로 각자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우리는 흔히 자신이 희구한 삶을 살지 못하면 운명이니 팔자니, 푸념하면서 자괴감에 빠져든다.

 그러나 인생은 운명적이든 숙명적이든 어차피 이 세상에 태어난 이상 생존을 유지해야 하니까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왜(WHY)와 어떻게(HOW)를 반복하며 산다. 산다는 것은 내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나와 관련된 모든 인간관계와 세상사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물론 어떤 상황에 처해 스스로 문재 해결을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쉽게 포기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앞서 매슬로우의 말처럼 가장 높은 단계의 욕구는 아니더라도 중간 정도의 욕구마저 실현 불가능 할 때 자포자기 상태에 빠진다. 세상을 살다 보면 나아가야 할 때가 있고 멈춰야 할 때가 있으며 자신을 되돌아봐야 할 때가 있다. 공자는 15세 때 학문에 뜻을 두고 학문연구에 정진한 후 19세 때 결혼에 따른 생계 수단으로 미관말직에 적을 뒀으나 그것이 자신이 가야 할 길이 아님을 알고 24세에 관직을 그만뒀다. 그리고 학문연구의 길로 계속 나아가 30세에 제자를 가르칠 수 있는 학득(學得)의 경지에 이르렀다. 그의 학문적 명성이 높아지자 제후들의 공자알현이 이어져 북부지방을 17년간 유세하면서 자기를 써줄 제후를 찾았다. 그러나 책사나 모사를 기대한 제후들은 도덕 정치와 인애에 근거한 군자 정치를 설파한 그를 외면하고 발탁하지 않았다. 이에 공자는 관직에의 미련을 버리고 오직 학문 연구와 제자양성에 힘써 당대 최고 지성(至聖)의 경지에 이르렀다. 이처럼 공자는 나아갈 때와 멈출 때,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할 때를 알았기 때문에 후세에 추앙받는 세계 4대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나아가고, 멈추고, 되돌아볼 때를 교훈적으로 적시한 말은 수없이 많다. 주역 중천괘(重天卦)의 괘사(卦辭)와 효사(爻辭)에서 그 해답을 찾아보자. 중천괘를 한마디로 나타낸 말인 계사는 원형이정(元亨利貞)이다. 크게 형통하고 이로우며 곧다는 뜻이다. 이 괘의 변화 운세를 초구(1효)부터 상구(6효)까지 해설한 효사를 보면 초구효는 잠룡물용(潛龍勿用)이다. 물에 잠겨 있는 용은 쓸 수 없다는 뜻으로 아직 세상에 나가거나 뜻을 펼치기에는 때가 이르니 실력을 쌓고 힘을 기르라는 것이다. 구2효는 현룡재전 이견대인(見龍在田 利見大人)으로 나타난 용이 밭에 노니 세상에 나아가 큰 사람을 만날 기회를 잡으라는 뜻이다. 구3효는 종일건건 석척약 려 무구(終日乾乾 夕□若 □ 无咎)로 종일토록 굳건히 하다가 저녁이 돼서는 두려운 마음으로 반성하면 위태로우나 허물은 없다는 뜻이다. 큰일을 도모하거나 세상에 나아가서는 시종일관 열성을 다해 노력하되 분수에 넘치지 않도록 자신을 되돌아보면 일을 그르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사효는 혹약재연 무구(或躍在淵 无咎)로 어떤 지위나 일의 도전이 악재를 만나거나 힘에 부대끼면 잠시 숨 고르기를 하면서 자신을 낮추고 은인자중하면 무탈하다는 뜻이다. 구5효는 비룡재천 이견대인(飛龍在天 利見大人)으로 나는 용이 하늘에 있어 대인을 만났으니 인생 최고의 위치에 오른 경지를 말하며 겸용지덕을 견지해야 할 때이다. 상구(6효)는 항룡유회(亢龍유悔)로 지나치게 높은 용(권세나 부)이니 후회가 뒤따른다는 뜻이다. 이는 최고의 경지에 이르면 경쟁자들과 쟁투가 생기고 자기 과신으로 오만방자해져 실패하니 겸손과 멈춤의 지혜를 발휘하라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내세우기보다 후원자나 조력자로서 성찰하는 자세를 가져야 성공적인 인생 마무리가 된다는 말이다.

 이처럼 세상 사는 근본 이치는 3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나아가고 멈추고 되돌아보는 때와 이유를 알고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바른 삶인지 선현들의 지혜를 빌어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하면 그런대로 무난한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이 세 가지를 망각한 후안무치한 정치지도자가 너무 많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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