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물들어도 가을이 오지 않은 이유
단풍이 물들어도 가을이 오지 않은 이유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10.31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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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우리 사회의 진실은 촛불의 숫자와 군중의 외침의 강도가 결정한다.
대검찰청 앞에서 촛불을 들고 검찰 개혁을 외치는 모순은
우리 사회가 겪는 아픔이다.

광화문 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밤 새며 정권 퇴진을 외치는 현실을
순수한 진실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정치판에서 진실을 찾기가 하도 어려워 아예 `정치는 포장술`이란 말이 그럴싸하게 나돈다. 포장 상자 안에 든 제품이 무언지 상관없이 포장이 멋지면 대개 내용물이 괜찮을 거라고 지레짐작한다. 정치인은 말로 자신을 포장해서 대중에게 접근한다. 말의 신뢰성은 놔두고라도 화려한 언변에 대중은 신뢰를 보내고 정치인에게 표를 던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유체이탈 화법을 잘하는 정치인이 대개 유능한 정치인 반열에 오른다. 온갖 미사여구를 꾸며 대중 앞에 내놓은 말들은 잘 차려진 진수성찬 같지만 먹으면 아무런 맛도 없을뿐더러 영양가도 바닥이다. 정치인이 던지는 말을 일단 거르는 필터가 마음에서 작동해야 생각을 지킬 수 있다. 요즘 대중은 너무 헷갈린다.

 유튜브가 대중을 휘어잡으면서 몇십만 명 구독자를 확보한 유튜버의 말은 거침이 없다. 온 국민을 대상으로 뻔뻔스럽게 사기를 치려는지 목을 꼿꼿하게 세우고 진짜 같은 거짓말을 해댄다. 선동이 통하는 우리 사회의 얕은 민도가 아쉬운 대목이지만 좌우 진영이 곤고한 판에서는 이런 억지가 통하는 게 문제다. 한쪽은 비판 없이 수용하고 다른 한쪽은 핏대를 세우더라도 밑져봐야 본전이다. 다른 한쪽에 흠집이 난다면 일단 성공으로 치부되기 때문이다. `정치의 품격`을 말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한물간 정치인이 정치의 꼼수를 이야기해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이다.

 조지 오웰이 그린 `1984`에 나오는 빅 브라더 시대는 정보를 독점한 사회를 통제하는 거대 권력자가 판치는 세상이다. 빅 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을 거리와 가정에 설치해 수집한 정보로 사회를 통제하고 개인의 생활을 침해한다. 거짓이 진실을 이길 수 있는 사회다. 거짓은 잘 가공하면 진실이 되고 진실은 지킬 힘이 없으면 거짓이 된다. 우리 사회에서 빅 브라더는 터질듯한 긴장감을 구축한 보수ㆍ진보 대립이다.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보수ㆍ진보 논리에 빠지면 흑백만 볼 수 있다. 자칭 한국 최고의 사상가라는 사람은 종북논리에 빠져 우리나라의 정체성을 부인한다. 북한의 6ㆍ25 남침을 애매한 소리로 남침인지 북침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대한민국 사회를 받치는 거대한 (생각, 사상 등) 구도가 진도 8의 지진에 허물어진 느낌이 든다. 어느 것 하나 선반 위에 제대로 자리를 잡고 있는 `물건`이 없다. 철학적 기반이 약한 우리나라는 남북 분단이라는 원죄를 깔고 있기 때문에 출발점이 다른 생각이 맞부딪쳐 공통분모를 만들지 못한다. 모든 사안을 두고 치킨게임을 하는 형국이다. 한쪽만 이기는 게임을 하다 보니 다른 쪽이 뒤로 물러나면 바로 패배로 인식된다. 고약한 게임이다.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벌어지는 촌극은 아이들이 봐도 유치하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하는데 야당 의원들이 X자를 그리며 항의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X맨이 지구로 귀환한 줄 알았다. 여당 의원도 별수 없다. 야당 원내대표가 연설을 하는데 야유를 퍼부어 원고를 읽을 수 없을 정도다. 뒤집어 보면 대통령과 원내대표의 연설은 귀에 담을 가치가 없는 거짓이라는 항의이라 해도 틀리지 않다.

 조국 사태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는 더 뚜렷한 색깔이 드러났다. 철 지난 `색깔론`이 아닌 두 색깔이 맞닿으면서 본래 색이 더 선명해졌다. 색깔이 진실을 구분하는 단편적인 세상이 됐다. 공정을 외친 정부가 공정을 철저하게 깨면서 공정사회를 만들겠다는 정권 초의 약속이 2년 반이 지나 색이 바랬다. 지금 패스트 트랙(신속처리안건)을 탄 정찰개혁 법안 등은 합의로 해결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오직 민주당과 한국당과 일부 야당이 만드는 색깔의 조화로 결판날 공산이 크다. 우리 사회의 진실은 촛불의 숫자와 군중의 외침의 강도가 결정한다. 대검찰청 앞에서 촛불을 들고 검찰 개혁을 외치는 모순은 우리 사회가 겪는 아픔이다. 광화문 광장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밤 새며 정권 퇴진을 외치는 현실을 순수한 진실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색깔이 진하면 동색은 볼 수 있어도, 이웃 색은 볼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색깔을 내세우다 진실은 우리 곁을 떠나보내고 있다. 단풍이 아무리 고와도 가을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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