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국장은 삼국시대부터 이미 존재했던 음식으로 408년 백제 영토였던 전남 나주 흥덕리 고분에서 발굴된 묵서명(墨書銘)에 `염시`가 나오는데 `시`는 메주를 뜻하는 한자로 염시는 된장이나 청국장일 가능성도 매우 높다.
19세기 학자 이규경(李圭景 : 1788∼1863)이 쓴 백과사전『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는 `전국장(戰國醬)`이 네 번 등장하는데, `시`를 우리나라에서는 전국장이라고 부른다고 적고 있다. 청국장은 전시장, 전국장,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쓰다가 지금은 청국장(淸麴醬)으로 통일됐다. `시`의 의미도 1500년대까지는 청국장을 의미했고, 1600년대 이후에는 청국장이 한자로 장(醬)이 붙은 전시장, 전국장(戰國醬), 청국장(靑局醬), 청국장(靑麴醬) 등으로 굳어지니까 `시`의 의미도 메주, 된장을 국한지어 의미하게 돼 가는 경향이 있었다.
청국장(淸國醬)이 병자호란 때 청나라 병사들이 말안장에 삶은 콩을 싣고 다니다 발효 시켜 먹은 데서 유래됐다고 하고 있으며 청국장(淸國醬)은 중국 청나라 장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병자호란은 1636년부터 1년간 청나라가 우리나라를 침범했던 전쟁이다.
그러나 이런 설은 근거가 희박한 설이다. 병자호란보다 100여 년 앞서 발간된, 1527년 최세진(崔世珍 : 1473~1542)의 『훈몽자회(訓蒙字會)』를 보면 `시`를 `쳔국`으로 해석하고 있었다. 조선 후기의 문신 김간(金幹 : 1646~1732)이 1766년에 쓴 시문집 『후재집(厚齋集)』에도 `전국장(戰國醬)은 칠웅전쟁(七雄戰爭) 때 만들었다고 하는데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는 알지 못한다`라고 적혀 있다. 청국장이 전쟁용 음식이란 속설에 관한 가장 오랜 기록이다. 조선 숙종 때 김창업(金昌業:1658~1721)이 펴낸 『연행일기(燕行日記)』제4권 / 계사년(1713, 숙종 39) 1월 26일 북경에 사는 박득인의 집 주안상에 `청국장도 맛이 역시 좋은데 대개 우리나라의 방법으로 만든 것이다`라고 나온다. 이때가 청나라 때인데, 북경에서 먹은 청국장이 우리나라 방법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것으로 보더라도 병자호란 때 청나라 병사에 의해 전해졌다는 것은 신빙성이 떨어지는 그야말로 설에 불과하다.
조선왕조의 대표적인 관찬사서 『일성록(日省錄)』 정조 20년 병진(1796) 2월 11일 외정리소의 절목가운데 `청국장(靑局醬 ) - 때를 따라 절가한다`라고 나온다. 조선 초와 중기에는 `시`를 주로 며주, 메조, 며조, 메주라고 했고, 조선 후기 무렵에는 전국장, 쳔국장, 청국장이라고 했다. 즉, `시`에서 메주와 청국장이 분화돼 현재까지 발달해 온 것으로 보인다. [훈몽자회]의 `쳔국`과 [사류박해]에 나오는 `청국장`, `전국장` 등의 연관 관계이면 청국장이 `靑麴醬`이이어야 하지 `淸國醬`이 아니다. 즉 청국장은 청나라(淸國) 장(醬)이 아니라, 푸른곰팡이란 뜻의 청국장(靑麴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