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3:18 (금)
`조커`가 계단에서 추락하면서 짓는 웃음
`조커`가 계단에서 추락하면서 짓는 웃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10.25 09: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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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 특정 부류가

계단을 독점하기 때문에

원천적으로 대다수는 계단을

이용할 수가 없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 가재와 붕어만

우글거리는 개천에서

한 번씩 용이 승천해야

살맛이 날 텐데…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영화 `조커`에 나오는 계단이 새로운 관광 명소로 떴다고 한다. 주인공 아서(호아킨 피닉스)가 계단을 내려가며 춤추는 모습에 많은 관객들은 그의 광기를 느꼈다. 아서는 자신을 꽉 죄고 있던 모든 속박을 계단을 내려가면서 벗어버리고 나쁜 사람으로 재탄생한다. 미국 뉴욕 브롱크스 셰익스피어가 167번지에 있는 허름한 계단에 많은 관광객이 가서 인증샷을 찍어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올린다. 아서는 계단을 오르는 신분 상승이 어렵기 때문에 차라리 추락하면서 편안함을 누렸을지도 모른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 `기생충`에서 계단 밑 볼썽사나운 집에 사는 기택(송강호)에게서 신분 상승을 꾀하다 파국을 맞는 아픔을 1천만 가까운 관객이 봤다.

 신분 상승은 자유로운 꿈이다. 엄격한 신분제가 통하던 고려 시대에 일어난 민란에서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고 노비들은 외쳤다. 천민의 신분을 벗으려 했던 노비 만적의 난은 고려사회 가장 낮은 신분에서 상승의 욕구를 분출한 의로운 기상이다.

 가진 자들의 박해는 시대를 초월해 나타난다. 가진 자들은 특권을 누릴 때 아랫것들의 아픔을 알 수가 없다. 자신들이 밝은 세상에 있으면 어두운 세상에도 사람이 있다는 사실에 둔감하다. 그런 편한 생각을 해야 기득권자들은 괜한 죄스러운 연민을 억지로 뽑아낼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 신분 상승을 할 수 있는 건강한 계단이 있다는 착각을 깨뜨린 사건이 조국 사태다. 조국 사태를 통해 상승 계단을 특정 사람들이 더 잘 이용했다는 사실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기득권자들은 자신들만 계단을 이용해 상승하고도 공정한 사회에 폐를 끼쳤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그런 생각을 하는 기능이 마음속에서 작동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영화 `조커`의 아서가 계단에서 미친 사람처럼 추락하는 몸짓에는 상승의 계단이 끊어졌을 때 가지는 허탈함이 들어있다. "밑으로 추락하는 게 되레 즐겁다"고 눈물로 고백할 때 순간 기쁨을 느끼는 묘한 감정 상태다. 세상에 어떤 사람도 개천에서 비록 가재와 붕어로 살더라도 용이 되는 꿈을 빼앗기려 하지 않는다. 설사 개천에서 가재로 한평생을 살면서 용꿈을 날려도 내 용꿈을 남이 가로챘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광분한다. 용이 되는 꿈이 개꿈이 되더라도 가재와 붕어들은 용으로 상승하는 길을 다른 사람이 독점하고 있다면 분개하는 게 당연하다.

 우리 사회에서 신분은 대물림되는 경우가 흔하다. 어떤 부모도 자식을 내팽개치고 제멋대로 살기를 바라지 않는다. 부모의 신분과 재산도 실력이고 부모의 힘으로 특정 스펙을 쌓아도 실력으로 치부된다. 조국 사태에서 봤듯 부모의 힘으로 옳든 그르든 스펙을 쌓아 남들은 가기 힘든 의학전문대학을 가면 그뿐이다. 스펙을 쌓는데 힘을 쓸 수 없는 부모를 탓하는 가재와 붕어의 눈물이 되레 악어의 눈물처럼 비친다. `해가 졌다고 울고 있으면 그 눈물이 앞을 가려 별을 볼 수 없다`고 말한 인도의 시성 타고르의 혜안이 눈부시다. 희망의 계단이 막혀 한숨을 쉴 때 그 한숨이 저 멀리 걸린 꿈을 보지 못하게 하는 사회에 우리가 서 있다.

 사회는 구조적으로 공평할 수 없다. 부모를 선택할 수 있는 자식은 없다. 부모한테서 물려받는 신분과 재산을 누리는 자녀는 자연스럽게 특권을 가지게 된다. 천부적으로 받은 혜택을 탓할 순 없다. 부모가 누리는 혜택을 고스란히 자식에게 물려주는 행위도 자유다. 하지만 부모가 신분과 재산을 가지고 사회 공정을 해치고 계단을 독점하는 게 문제다. 잘난 부모들이 계단을 독점하고 자기 자식만 이용하도록 하는 반칙이 우리 사회에 널려 있어서 가재와 붕어가 열을 받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인류가 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 것은 신, 국가, 돈, 인권 등과 같이 오로지 상상 속에서만 존재하는 것을 믿을 수 있는 능력 때문이다"고 했다. 인류가 거대 사회를 만들어 경쟁을 펼칠 때 일부 사람은 무형의 꿈을 끊임없이 그리면서 승자의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그 꿈의 바탕이 되는 계단을 특정 부류가 독점하기 때문에 대다수는 원천적으로 계단을 이용할 수가 없다.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없는 사회는 불행하다. 가재와 붕어만 우글거리는 개천에서 한 번씩 용이 승천해야 살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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