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복의 미각회해-일본 와규(和牛:わぎゅう) 알고 먹자
김영복의 미각회해-일본 와규(和牛:わぎゅう) 알고 먹자
  • 경남매일
  • 승인 2019.10.21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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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생활연구가 김 영 복
식생활연구가 김 영 복

 와규를 일본 토종 소라고 한다. 일설에 일본의 옛날 쇼토쿠 태자가 `화(和)를 중요시하라`고 한 이래 `和`를 일본 정신의 근간으로 삼아 왔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식 음식을 `화식`(和食), 호텔에서도 일본식 다다미방을 `화실`(和室)이라고 하며, 그 외에도 여러 부문에서 `일본=和` 동등하게 써 왔다. 그래서 일본 소도 `일우(日牛)`라고 하지 않고 화(和)자를 넣어 와규(和牛)라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한문 화우(和牛)를 `와규`로 읽는다. 이 와규(和牛:わぎゅう)는 `일본 소`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이 일본 소 `와규`는 털빛이 흑색이다. 반면 한우(韓牛)는 황우(黃牛)라고 돼 있다. 그러나 황해도 안악 용순면 유순리 고구려 안악 3호 고분에는 흑소, 황소, 칡소가 채색화로 그대로 남아 있다. 안악 3호분은 황해남도 안악군 용순면 유순리에 있는데 축조 연대는 서기 357년이다.


 한편『조선왕조실록』 영조 18권 8년(1732년) 11월에 보면 "제향흑우계시막중천헌지수(祭享黑牛係是莫重薦獻之需) 제향에 쓰이는 흑우는 더없이 중요한 제사에 바치는 물건이다"라고 기록돼 있고, 영조(英祖) 108권 43년 1월에 보면 "親耕時用黑牛(친경시용흑우) 친경에 흑우를 사용하도록 명했다"라고 기록돼 있다.

 일본 카모 키이치가 쓴『일본축산사』에 의한 소의 전래기록에 의하면 "옛날 응신천황 시대, 부정확하지만 270~310년경에 공물로 소가 들어왔었고 흠명천황 시대(서기 561년경) 백제에서 암수 각 1두씩을 일소로 수입해 서기 564년경에 젖을 이용한 기록이 있다. 황극천황의 대화원년(서기 645년)에는 밭을 갈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효덕천황 때(645-654년)에는 고려인 지총의 아들 선방(善邦)이 소젖을 짜서 헌상함과 함께 가공도 했다"고 한다.

황해도 고구려 안악 3호 고분에 있는 흑소, 황소, 칡소 채색화.
황해도 고구려 안악 3호 고분에 있는 흑소, 황소, 칡소 채색화.

 일본의 와규는 우리나라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검정 소인 미시마 소가 바탕이다. 그 첫 예가 네덜란드의 홀스타인 젖소와 이 미시마 소가 교잡돼 세계적으로 유명한 겐란규가 된 것이다. 1928년 발간된 재조선 일본인들이 발행한『조선급만주』에 보면 조선의 소를 고베규로 개량하기 위해 조선총독부가 앞장선 내용을 볼 수 있다. "일제는 우리나라에서 흑우는 기르지 못하게 하는 정책을 펴고 1924년에 흑우 암소 125마리와 흑우 수소 50마리를 일본으로 가져가고, 1925년에는 암소 25마리, 수소 1마리를 가져갔다." 일본 고대사에서 조선의 문물이 일본에 많이 전달됐고 이때 가축도 같이 유입된 것이 사실로 입증된 셈이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 우리 소가 대량으로 일본에 강제 수출된 점 등으로 미뤄 미시마 소는 물론 우리 흑우가 일본의 대표적인 일본 소 와규 4개 품종 중 하나인 흑모화종의 바탕 소가 된 것이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1938년 `한우 심사표준`을 정하면서 조선의 토종 소의 털 색깔을 황색으로 통일하면서 조선의 토종 흑소, 황소, 칡소 중 황우를 한우로 하고, 흑우는 일본의 와규로, 칙소는 점차 한반도에서 사라지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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