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5:38 (화)
“청주 송씨 시조는 송유충이었다” 확인
“청주 송씨 시조는 송유충이었다” 확인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10.20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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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송씨 시조를 송유충으로 기록한 고전 문헌들.
청주 송씨 시조를 송유충으로 기록한 고전 문헌들.

창원지방법원, 문중 다툼 조정 “대전 뿌리공원 비문도 수정을”
송종복 청주송씨 대종중 회장 “문중 역사 바로잡아서 다행”

 속보= “청주 송씨의 시조는 송유충임을 확인한다.” 청주 송씨 문중 간에 시조를 두고 벌어졌던 공방이 법정에서 판가름났다.

 창원지방법원 제5민사부는 지난 7월 조정 판결문에서 “송유충을 청주 송씨의 시조인 것을 확인”하고 “대전 중구 뿌리공원로 79 뿌리공원 내에 설치된 청주 송씨 비석(27호)의 비문에 청주 송씨 시조를 송유충이라는 내용으로 수정한다”고 적시했다. 또한 “일제 강점기 부산지방법원 소화 3년 민 제62호 판결문의 이유에서 송빈이 송밀의 형이라는 사실이 적시 돼 있음을 인정한다”고 조정했다.

 이어 “원고와 피고 청주 송씨 주부공파 종회, 송우진, 송영한 및 조정 참가인은 오는 31일까지 청주송씨대동보편찬위원회를 공동 구성하고, 최소한 빠른 시일 내에 청주송씨대동보를 발행한다”고 적시했다.

 이 외에도 법원의 조정에 따라 청주송씨 간에 향후 제사, 벌초, 유계, 종중행사 들의 종사를 공동으로 행하고 청추 송씨 대종회(대종중)을 통합해야 한다.

 법원의 조정이 있기 전까지 청주 송씨 두 문중은 ‘문중 역사를 왜곡했다’는 송유충(宋有忠)을 시조를 둔 측과 ‘족보 기록은 진실하다’고 주장하는 송춘(宋椿)을 시조로 둔 측이 맞섰다. 송유충 후손 측은 조선 선조 때 지은 고전문헌인 ‘씨족원류’에 기반을 두고 송유충을 시조로 삼고, 송춘 측은 1982년 지은 ‘한국인의 족보’ 등을 내세워 송춘을 시조로 삼았다.

 두 청주 송씨 문중은 법원의 조정이 있기 전까지 시조 문제를 서로 만나서 해결하려는 바람도 있지만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청주 송씨 대종중 송종복 회장은 “동성동본에 시조가 2명이어서 지금까지 청주 송씨 문중이 하나가 되지 못해 부끄러운 점이 한두 개 아니었다”며 “이유야 어떻든 법원의 조정으로 문중의 역사를 바로잡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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