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도시 화려함 버리고 귀향해 여유ㆍ희망 얻었죠”
[기획/특집]“도시 화려함 버리고 귀향해 여유ㆍ희망 얻었죠”
  • 박성렬 기자
  • 승인 2019.10.20 22: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청춘스토리' 남해 이송이 씨(원예예술촌 홍보영업)

고현면 출신 열혈 30대 고교 마치고 서울 생활 대학서 디자인 전공

입사 2년만에 사표 호주의 워킹홀리데이 서울서 고향으로 옮겨
“앞으로 뭘 할지” 고민 원예예술촌에 들어가 남해서 마음 안정 찾아
향후 삶의 얘기 착착 써 가

 보물섬 남해군 독일마을 옆 원예예술촌 문화관 사무실에 들어서면 청년 여직원이 있다.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이용해 블로그, 인스타 등을 두루 누비며 원예예술촌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는 홍보영업 담당 이송이 씨이다.

 갓 서른이 안 돼 보이는 앳된 얼굴, 보통의 남해청년이라면 대도시에서 화려하게 살고 싶을 나이에 남해에서 일하고 있는 송이 씨.

 기자는 남해의 보물 ‘남해청년’을 찾아다니는(찾기도 어렵고 인터뷰 하기는 더더욱 쉽지 않지만) 일에 줄곧 관심을 가져왔고 몇몇 청년들을 만나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러나 그간 발굴한 남해청년들은 대부분 자유롭게 일하는 작가이거나 자영업자였고 직장생활을 하는 이는 드물었다.(물론 남해 출신 청년공무원들도 꽤 있지만 그들은 예외로 하자) 보물섬 남해는 청년들에게 매력적인 일터가 아니다.

 남해군이 ‘관광’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나 그렇다고 관광산업이 활발하게 진행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관련 일자리도 많지 않다.

 이는 남해에서 가장 핫한 관광지라는 독일마을 옆 원예예술촌과 독일마을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런 가운데 남해 원예예술촌에서 근무 중인 송이 씨에게 기자로서의 궁금증이 높게 일었다.

이송이 씨는 디자인업체와 카페, 호주 워킹홀리데이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자산으로 보물섬 남해군에서 꿈을 펼쳐볼 생각을 갖고 있다. 사진은 호주 워킹홀리데이 당시 촬영한 모습. 젊은이의 활기와 기상이 느껴진다.
이송이 씨는 디자인업체와 카페, 호주 워킹홀리데이 등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그녀는 자신의 경험을 자산으로 보물섬 남해군에서 꿈을 펼쳐볼 생각을 갖고 있다. 사진은 호주 워킹홀리데이 당시 촬영한 모습. 젊은이의 활기와 기상이 느껴진다.

 △고현면 출신, 다양한 경험 쌓고 고향 컴백

 지난 1987년 고현면 천동마을 이영균ㆍ백민자 씨 댁에 딸 송이가 태어났다.

 ‘제일 예쁜데 아버지가 호랑이여서 먹쇠도, 밤쇠도 얼굴 한번 못 봤다’는 셋째 딸이었다.

 물론 노래 가사는 딸만 셋 있는 집이고 송이 씨는 오빠가 있어서 경우가 다르지만 우리 민족이 풍성한 수확의 계절 ‘가을’을 봄ㆍ여름에 이은 ‘셋째 딸’에 비유해 왔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만큼 셋째 딸은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을 것이고 그래서 셋째 딸이 제일 예뻐지는 것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래서 그런지 서른이 안 됐을 것으로 생각했던 이송이 씨 나이가 무려(?) 서른셋이란다.

 송이 씨는 남해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수도권 소재 대학에 진학했다.

 대학에서 패션디자인을 전공한 그녀는 디자인 회사에 입사했다.

 그녀의 졸업성적은 학과 수석이었고 취업도 동기들 중에 제일 먼저 성공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림을 잘 그리지는 못했는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패션디자인과에 들어갔죠. 서울깍쟁이들 사이에서 사람과 어울리기가 쉽지 않았고 그만큼 공부에 더 매달렸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느니 장학금을 받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디자인은 단순한 것을 좋아했어요.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화려한 것을 선호하는데 저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런 것들이 교수님들 취향에 잘 맞았는지 실기 점수도 썩 좋았어요.”

 디자인 회사 일은 적성에 맞았다. 그러나 밤낮이 없는 회사생활이 그녀를 힘들게 했고 입사 2년 만에 송이 씨는 회사를 그만둔다.

 이후 이송이 씨는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카페에서 근무하기도 했고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어서 호주로 수년간 ‘워킹 홀리데이’를 다녀오기도 했다.

 이래저래 바빴다. 바쁘지 않으면 버티기도 어려울 정도로 대도시의 생활은 늘 숨 가빴다.

 송이 씨는 귀향을 생각했다.

 “금의환향은 아니더라도 이룬 것 없이 내려가고 싶지는 않았는데 서울에서 힘들게 사느니 사랑하는 내 고향 남해로 돌아가고 싶었어요. ‘남해에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하며 내려왔죠.”

 지난 2017년 10월, 서울살이 10년 만에 송이 씨는 고향인 남해로 돌아왔다.

고현면 천동마을 출신 이송이 씨는 패션디자이너 출신으로 서울살이 10년 만인 지난 2017년 귀향해 남해 독일마을 옆 원예예술촌에 근무하고 있다.
고현면 천동마을 출신 이송이 씨는 패션디자이너 출신으로 서울살이 10년 만인 지난 2017년 귀향해 남해 독일마을 옆 원예예술촌에 근무하고 있다.

 △평범한 청년, 남해에서는 꿈꿀 수 있다

 만나서 대화를 나눠 본 이송이 씨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비범한 사업계획이나 원대한 포부는 갖고 있지 않았다. 그럼에도 기자의 눈에 그녀는 남해에서 살며 무엇이든 생각을 갖고 있다는 것 자체로 평범하지 않은 ‘남해의 보물’로 보였다.

 “남해에서 살면서 가장 달라진 점은 내가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늘 생각한다는 거예요. 서울에서 살 때는 회사 일이 바빠 다른 생각을 할 여유라고는 없이 살았거든요.”

 송이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기자의 가슴에 가장 와 닿았던 말이다. 남해에서 살면서 생각할 ‘여유’가 생겼고 뭔가 내 일을 해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가졌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녀가 회사 책상에 앉아 자신의 미래만 스케치한다는 것은 아니다. 남해 원예예술촌 직원 이송이 씨는 당연히 회사 일도 열심히 하는 보물 중의 보물이다.

 “원예예술촌에는 귀향 몇 달 후인 지난해 2월에 입사했어요. 예술촌에서 지난 몇 년간 안 하고 살았던 포토샵을 다시 시작했고요. 예술촌 사진을 찍고 보정하고 행사 배너 디자인도 하고 그래요. 최근에는 원예예술촌에 도움이 될까 싶어 휴일을 이용해 관광종사자 역량강화 교육에 참여하기도 했어요.”

 남해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지 1년 8개월. 송이 씨는 남해에 오기를 참 잘했다고 생각한다.

 출ㆍ퇴근길에 반짝이는 남해군 삼동면 둔촌리 바다와 나무 사이로 지는 해가 참으로 예뻐 보일 정도로 남해에서 정서적 안정을 찾고 여유를 갖게 됐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녀는 “최근에 서울 친구를 만났는데 자기가 봤던 중에 가장 편안해 보이더래요. 서울에서 내 자리 빼앗길까 봐 전전긍긍하면서 살다가 남해에 와서 심신의 안정을 찾은 거죠. 다 좋아요. 부모님이 가까이 계시고, 직장도 있잖아요”라고 귀향에 대해 만족감을 표했다.

 이제 남해살이도 안정기에 접어들었겠다, 송이 씨는 원예예술촌에서 일하는 한편, 차차 자신이 할 일에 대해 구상해 볼 생각이다.

 “원예예술촌에 오래 근무하는 것도 좋겠지만 언젠가는 독립할 수도 있잖아요. 제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볼 생각이에요. 패션디자인을 공부했고 카페에서 일한 경험도 있으니 카페에 패션디자인을 접목한 매장을 열어보는 것도 괜찮을 것 같고…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볼 거예요. 앞으로 제가 할 일에 대해서 제 인생의 계획서를 써봐야겠네요.”

 도시의 화려함을 뒤로하고 남해로 귀향, 화려함 대신 여유와 희망을 얻은 이송이 씨. 언젠가 그녀가 운영하는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송이 씨가 디자인한 옷을 입고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바라보게 될 날을 기대하며 남해청년 이송이 씨의 청춘스토리에 응원의 마음을 전하는 바이다.

 아! 그리고 이송이 씨는 지난 5월 듬직하고 우직한 남해 남자와 결혼했다. 혹시 사진을 보고 며느리 삼고 싶으셨던 어머님들이 계신다면 다른 처자를 찾으셔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