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12:07 (수)
처세술의 달인 사마의의 생존 철학
처세술의 달인 사마의의 생존 철학
  • 이광수
  • 승인 2019.10.20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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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세상이 어수선하니 사람들이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허둥대는 것 같다. 기성세대는 잃어버린 시간을 한탄하고, 청년 세대들은 미래에 대한 꿈을 상실한 채 자포자기 상태다. 이 사회를 이끌어가는 중장년층은 양분된 국론의 틈바구니에서 중심을 잃고 좌고우면한다. 무엇이 참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애매모호한 회색지대에서 생존의 지혜를 찾지 못해 방황하고 있다. 어느 신문의 표제어처럼 `분노와 분열을 남긴 66일의 비상식`은 또 하나의 촛불 바람에 의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그러나 국민을 좌우로 갈랐던 분열과 갈등의 파장은 이것으로 끝난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오죽했으면 개혁의 아이콘을 자처했던 진보 국회의원이 내년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겠는가. 여야정당이 벌리는 막장 정치판에서 자신이 구현코자 했던 정치 이상의 실천이 불가능했기 때문일 것이다. 자기성찰 없는 면피성 변명만 늘어놓는 지도자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마음 또한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자가당착에 빠진 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 왜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비판하는지 모른다. 아니 애써 모른척한다. 후안무치가 그들의 장기이고 처세술이니까. 자기 맹신이 골수에 박힌 자들의 의식 속에 각인된 백일몽은 타력에 의해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지 않는 한 깨어나지 못한다. 그러나 식자라면 상식의 틀에서 벗어난 파렴치한 언행이 빚어낸 결과가 감당하기 힘든 자기파멸로 귀착된다는 것을 알기에 자기성찰의 기회는 열려있다고 믿는다.

 사서삼경의 최고 경전인 주역(周易: 易經)을 공부하다 보면 중국 고대사에 깊이 천착하게 된다. 나는 요즘 젊은 시절 주마간산 격으로 읽은 사서육경과 사기, 한서, 정관정요, 무경8서 등등 한서(漢書) 고전들을 두루 섭렵하는 재미에 푹 빠져있다. 방마다 쌓여가는 책 더미를 보고 자식들이 걱정하지만 서림(書林) 속에 파묻혀 사는 나는 정작 의미 있는 은퇴 후의 나날을 보내고 있어 즐겁기만 하다. 마음을 비우고 허허로운 심정으로 세상사를 바라보노라면 세인들이 목청껏 외쳐대는 구호들이 한갓 부질없는 허욕인 것을 절감한다.

 최근 자료를 섭렵하다 처세술의 달인이었던 사마의(司馬懿)에 관한 책을 뒤늦게 읽게 됐다. 중국의 현역 베스트 셀러 작가인 친타오가 소설형식을 빌려 쓴 `결국 이기는 사마의`라는 역사평론이다. 주역 중천건괘(重天乾卦)의 효사(爻辭)를 인용해 서술한 내용이라 낯설지 않았다. 사마의는 춘추전국시대 중국 최고의 모사가 이자 정치가였다. 조조 휘하의 책략가였지만 조조(曹操) 못지않은 인물로 서진의 실질적인 창시자였지만 조조와 더불어 후세 역사가들에 의해 비열한 인간형으로 저 평가된 모사가 이다. 그러나 난세지국을 맞아 사마의를 비롯한 조조 등 삼국의 권신 모사 책략가들에 대한 재평가가 이뤄지고 있어 흥미롭다. 혼란의 와중에 조정에 들어가 자신을 도모하고 세상을 바로 세우며 심리전으로 승부를 겨뤄 이기는 필승의 생존 철학이 중장년층 독자들에게 어필한 것 같다. 우리는 처세술의 달인이라는 사마의의 삶을 통해서 난세를 헤쳐나갈 수 있는 생존전략과 최후의 승자가 되는 처세술을 터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마의의 자는 중달이며 하내군 효경리(현 하남성 온현 소현진) 출신이다. 경조윤(京兆尹)을 지낸 사마방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삼국시대 위나라의 조조, 조비, 조예, 조방 4대왕을 보필했다. 가문의 8형제가 모두 총명하고 현달해서 사마팔달(司馬八達)이라고 불렸다. 사마의는 외유내강의 인물로 세상 돌아가는 형세를 관망하면서 때를 기다려 자기를 지키고 실리를 챙기는 책략가였다. 제갈량이 도덕 정치를 이상으로 군자의 풍모로 세상을 바꾸려 했다면, 사마의는 권력의 흐름을 살펴 은인자중하면서 자기 생존의 묘수를 찾는 철저히 실리적인 삶을 살았다. 그는 주역 중천건괘의 변화 운세처럼 잠룡물용(潛龍勿用)하고 종일건건(終日乾乾 )하며 혹약재연(惑躍在淵)하는 가운데, 비룡재천(飛龍在天)하는 최고의 지위에 오른 삶을 살다가 항룡유회(亢龍有悔)하는 낙조의 생을 마감했다.

 요즘 그의 처세술에 대한 재평가를 다룬 평전, 드라마, 소설 등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지금까지 제갈량에 가려져 저평가된 그의 삶이 재조명되고 있는 것은 우리가 처한 시대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사마의를 새삼 재평가하는 이유는 곤경에 처했을 때 끝까지 날아 남는 삶의 지혜를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마의는 제갈량, 방통, 주유, 등 삼국지에 등장하는 여러 책사들 중 유독 존재감이 덜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그는 위기에 빠진 위나라를 구하고 70이 넘은 나이에 최고 권력자의 자리에 올랐으며 제갈량과의 싸움에서도 승리한 인물이다. 우리가 흔히 한 수 아래로 취급하는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쫓다`라는 말은 지금 이 시대에는 폐기해야 할 고사인 것 같다. 은인자중의 책략가 사마의의 재평가를 통해 난세를 헤쳐나가는 지혜를 배워야겠다. 우리는 끝까지 살아남아 이겨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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