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한ㆍ일 문명권 유라시아 진출… ‘이음의 시대’ 상징 뜬다
[기획/특집]한ㆍ일 문명권 유라시아 진출… ‘이음의 시대’ 상징 뜬다
  • 김중걸 기자
  • 승인 2019.10.14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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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해저터널 추진 평화ㆍ공존의 아이콘
한국 부산ㆍ거제~대마도를 거쳐 일본 규슈 사가현 가라쓰시를 잇는 총길이 209~231㎞(해저구간 128~145㎞)의 한일해저터널 추진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 추진단
한국 부산ㆍ거제~대마도를 거쳐 일본 규슈 사가현 가라쓰시를 잇는 총길이 209~231㎞(해저구간 128~145㎞)의 한일해저터널 추진이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 추진단

한ㆍ일 관계 경색 지속 다시 주목 총연장 231㎞ 일본 측서 먼저 굴착

해저구간 128~145㎞ㆍ최대수심 220m 일본 자민당 2003년 국가과제로 선정


남북관계 개선에도 큰 디딤돌될 듯



 개통 시 한ㆍ일 문명권의 유리시아 진출 교두보가 기대되고 있는 ‘한일해저터널’ 건설.

 최근 무역마찰과 과거사 문제 등 한ㆍ일 양국관계가 경색되고 있는 가운데 평화와 공존을 위한 방안으로 단절이 아닌 이음의 역사를 이끌어 내기 위한 하나의 방책으로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 1981년 11월 서울에서 열린 제10회 국제과학통일회의(ICUS)에서 중국에서 한국을 통해 일본에 이르는 아시아권 대평화고속도로와 전 세계를 통하는 자유권 대평화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국제하이웨이ㆍ한일터널 구상’이 제기되면서 ‘한일해저터널’ 건설이 가시화됐다.

 ‘국제하이웨이’는 동북아 국가 간 사람, 물건, 자본,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시대를 열어 경제공동체 구축을 통해 평화와 안전을 이루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 일환으로 구상된 ‘한일해저터널’ 프로젝트는 1982년 4월 일본에서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 발족 이후 1983년 5월 ‘일한터널연구회’ 설립됐다.

 같은 해 7월 일본 북해도대학 사사 야스오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일한터널연구회’가 설립되고 일본 규수(九州) 사가현 가라쓰(唐津)와 이키(壹岐), 대마도의 육상부와 해역부 조사를 개시했다.

 1986년 10월 사가현 진제이초 나고야에서 1차 조사를 위한 파일럿(예비탐색) 터널공사를 시작했다.

 파일럿 공사는 사갱(斜坑ㆍ갱도를 뚫을 때 광산ㆍ탄광에서 땅속으로 비탈지게 파놓은 초입의 갱도)이다.

 가라쓰에서 한일터널 탐사를 위한 굴착공사를 진행해 현재 바다 밑으로 547m까지 굴착한 상태에서 머물고 있다.

 현재도 지질조사를 계속되고 있으며 한국에서도 1986년 ‘한일해저터널 연구회’를 설립한 뒤 1988년 10월 거제도 일대 5개 지역에서 시추조사를 벌였다.

 △총연장 231㎞ 일본이 먼저 나서

 ‘한일해저터널’은 한국의 부산ㆍ거제도에서 일본 대마도를 거쳐 규슈 사가현 가라쓰시를 잇는 터널이다.

 총 길이만 209~231㎞에 달하며 해저구간만 128~145㎞로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최대 220m에 이르는 대형 해저터널공사이다.

 터널은 하나를 통째로 뚫는 것이 아니라 경유지마다 세부 구간을 나눠서 만든 ‘작은 터널’들을 연결시켜 터널을 완성시킨다는 특징이다.

 세부 경로는 총 3개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A안은 거제도부터 대마도 하도(下島)와 가라쓰시를 잇는 총연장 209㎞(해저구간 145㎞), B안은 거제도에서 대마도 상도(上島)를 거쳐 가라쓰시를 잇는 총 연장 217㎞(해저구간 141㎞), C안은 부산에서 가라쓰시로 직선연결하는 총 연장 231㎞(해저구간 128㎞)이다.

 한일해저터널 추진은 일본이 먼저 나섰다.

 1981년 11월 국제하이웨이 제안 이후 이듬해인 1982년 4월 일본에서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이 발족되면서 파일럿 터널 공사 착공 등 해저터널 건설에 발빠른 행보를 보였다.

 일본 정부는 2000년 모리 요시로(森喜郞) 당시 일본 총리가 아시아ㆍ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방한한 자리에서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공식 제의한 바도 있다.

 2003년 일본 자민당은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100년 동안 이뤄야 할 3대 국가과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한국에서도 1986년 한일터널연구회가 설립되고 1988년 10월 거제도 일대에 5개 시추조사를 진행했다.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은 일본 국회 연설에서 한일해저터널을 제안한 이후 1999년 9월 김대중 대통령은 한일정상회담에서, 2003년 2월 노무현 대통령도 고이즈미 총리와의 회담에서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도 해저터널은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국정감사에서 해저터널 타당성 여부를 묻는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경남 김해갑)의 질문에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은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할 용의가 있고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했다.

 2008년 한일터너연구회와 부산발전연구원 합동으로 한일터널 노선(일본 아키섬, 대마도 등)을 답사했다.

 같은 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한일해저터널에 관심을 표한 데 이어 최근에는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이 2016년 11월 14일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 한일해저터널 현장에서 ‘기공 30주년’ 기념행사를 마련했다.

 평화와 공존, 이음의 역사를 새로 쓰기 위해 제안되고 한 때 활발했던 한일해저터널 건설 문제가 과거사 등에 얽매인 한일 관계로 인해 답보상태에서 머물고 있다.

 △한일 양국 사랑과 진정한 평화 기대

 2008년 1월 18일 국토해양부에 등록된 공익법인인 세계평화터널재단은 각계 인사들을 규합, 한일터널과 베링해협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한 추진체로 ‘베링해협 평화포럼’과 ‘한일터널 포럼’을 발족시키고, 학술연구와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한일해저터널은 남북관계 개선효과도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의 연계를 고려하면 북한 개방과 협력도 앞당길 것이다.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평화고속도로의 일환인 한일해저터널은 한일 간에 도로 교통망을 건설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남북통일과 동북아시대의 새로운 질서 개편이 비전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역사적인 한일관계를 극복하고 양국 간에 사랑의 가교를 잇는 평화터널이 건설되면 진정한 평화가 기대된다.

 한국과 일본이 결속하면 태평양의 도서국가제국군의 협력도 예상된다.

 문제가 되는 것은 국경ㆍ인종ㆍ민족ㆍ사상 등의 대립이다.

 그 벽을 넘어 평화적인 관계가 되도록 이끌어야 하며 도버해엽의 영불터널이 그 모델이 되고 있다.

 영불터널은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돼 4년 후에 관통됐다.

 영국과 프랑스의 터널이 관통한 직후 유럽연합(EU)이 탄생했다. EU의 탄생으로 무비자로 왕래가 가능하게 되고 통화도 유로화로 통합됐다. 마찬가지로 한일터널이 관통하게 되면 동아시아 공동체와 아시아 공동체 형성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 나아가 공통 통화도 탄생될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 만으로도 세계 제일의 경제권이 되고, 아시아 전체가 되면 더 큰 경제권이 될 것이며, 이러한 혜택은 세계로 확장해 나갈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이를 위해 한일관계가 더 이상 적대관계에서 벗어나고 신뢰를 회복해 우호적 동반자 관계가 지속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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