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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세계는 지금 공자 열풍인가
왜 세계는 지금 공자 열풍인가
  • 이광수
  • 승인 2019.10.13 22: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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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중국 시진핑 정부는 중화사상의 세계화와 한류(漢流)전파를 위한 전진기지로 공자학원과 공자학당을 세계 각국에 세우고 있다. 현재 500여 곳의 공자학원과 600여 곳의 공자학당을 세워 공자의 사상을 가르치며 중화사상을 전파하고 있다. 미국과 맞서는 양대 세계 패권 국가로서 중국의 국제위상 강화를 위해 공자를 적극 활용(?)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나라에도 공자학당이 설립돼 운영되고 있다. 중국은 기존의 미국과 소련 중심의 양대 패권체계가 소비에트연방의 붕괴로 무너지자 미국 일극 체제의 세계 질서에 대한 반발로 중화 중심세계를 꿈꾸고 있다. 이제 중국은 G2라는 국력을 바탕으로 저개발국을 대상으로 경제 원조를 늘리면서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시키고 있다. 그들의 야심인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 실현을 위한 이론적 정신적 바탕으로 공자 사상의 세계화에 전력투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의 정치적 의도가 순수하지는 않지만, 세계 각국 특히 한자문화권인 동남아를 교두보로 삼아 진행되고 있어 그 영향력은 크다. 이미 각국어로 번역된 공자의 `논어`가 동양철학 연구의 기본서로 자리매김한 가운데 공자학당을 통해 한류(漢流)를 확산시키고 있다. 이는 한국의 K-pop이 세계 각국에 한류 바람을 불러일으켜 세종학당 설립이 붐을 이루는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세계 4대 성인으로 추앙받는 공자(孔子)는 한국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친숙하다. 곡부공씨(曲阜孔氏)의 시조가 바로 공자다. 그러나 정작 공자에 대해 물어보면 논어 학이편(學而編)에 나오는 `학이시습지면 불역열호아(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때때로 배우고 익히면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를 들먹일 정도다. 공자의 진면목은 논어(論語)를 읽어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일생과 학문에 대한 내면세계는 사마천이 지은 `사기세가`의 `공자세가(孔子世家)`에서 대성현이자 한 인간으로서의 공자의 이면을 잘 엿볼 수 있다. 세가의 가(家)는 종묘라는 의미로 세가는 바로 제후분봉(諸侯分封)을 받아 제후국을 세운 뒤 일정 지역을 천자국과 주종동맹 협력관계를 맺고 다스리는 왕국이다. 이런 제후국의 전기를 기록한 책이 사기세가이다. 그러나 공자는 당대 제후들이 그의 경륜과 학문을 알아주지 않아 13년간이나 북중국을 떠돌며 상갓집 개 같은 신세로 보내야 했다. 그의 조상은 망한 은나라 왕족이었지만 몰락한 가세로 어린 시절을 가난하게 보냈다. 3살 때 부친을 여의고 15세에 뜻을 세우고 학문에 정진해 19세에 결혼했다. 생계를 위해 미관말직인 가축을 기르는 관직에 잠시 머물렀다. 그러나 24세 때 모친이 별세하자 그 직마저 버리고 오직 학문연구에만 몰두해 30세 전후에 제자를 두고 가르칠 만큼 학문적 성취를 이뤘다. 사실 그의 사상은 사마천의 사상과도 거리가 있었다. 그러나 무관의 제왕임에도 제후의 반열에 공자의 이름을 올린 것은 공자의 학문과 도덕성이 지성(至聖)의 경지에 이를 만큼 유가로서 존경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는 공자의 예와 인에 근거한 정치사상이 패도정치를 꿈꾸는 춘추전국시대의 제후들의 생각과는 배치됐다. 그들은 제갈량, 장량, 사마의 같은 책사 군사들을 선호했다. 예와 악을 숭상하고 군자의 도를 실천하라는 공자의 인애(仁愛)에 근거한 도덕 정치를 제후국의 왕들은 외면해 그를 발탁하지 않았다. 사마천은 거대한 정치 이상을 지닌 현실정치인을 그리면서 제자들과 소통하고 대화하는 공자를 이상적 교육자요 대 성현의 전형으로 보았기 때문에 제후와 같은 세가의 반열에 올린 것이다.

 공자는 본래 3천 편이었던 서경(書經:중국 고대사)을 100편으로 정리하고, 3천여 편의 시경(詩經)도 음란한 것을 제외한 305편으로 정리했다. 하, 상(은), 주나라 3대의 예를 거슬러 올라가 서경의 순서를 매기고 요, 순 임금 시대부터 벼리를 세워 진나라 목공 대까지 이르게 해 그 사건에 따라 순서대로 엮었다. 주역(역경)도 십익(十翼)을 지어 철학적으로 해석했으며 예기(禮記)도 편찬했다. 그는 예와 악을 중시해 예기에 악기를 포함시켜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지금 4서인 대학과 중용은 당초 예기에 포함됐으나 공자 사후 정자와 주자에 의해 예기에서 분리돼 대학, 중용, 논어, 맹자 4서로 체계화했다. 서경, 시경, 역경, 춘추, 예기, 악기 6경은 공자가 유교 경전의 전범으로 정리했다. 공자의 논어(論語)를 읽어보면 정답이 없다. 제자들의 질문이 같은 내용이라도 각자의 성향에 따라 다르게 답해 스스로 깨달아 느끼도록 했다. 참으로 위대한 성인의 가르침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좌와 우로 갈라져 사생결단의 극한대치상태로 치닫고 있다. 분열된 민심을 수습하고 통합시킬 진정한 리더가 없는 한국의 현실이 참담할 뿐이다. 공자는 `천하에 도가 없어지니 죽음뿐`이라고 한탄했다. 사마천이 왜 무관의 제왕이었던 공자를 세가(제후)의 반열에 올렸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난세를 맞아 위대한 성인 공자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탐구해 보아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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