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머니와 함께 한 제주의 가을
시어머니와 함께 한 제주의 가을
  • 김성곤
  • 승인 2019.10.10 2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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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심리학 박사/독서치료전문가 김 성 곤
교육심리학 박사/독서치료전문가 김 성 곤

 나의 시어머니는 올해 81세시고 황해도에서 태어나셨다. 9세에 월남하셨고 18세에 평안남도에서 태어나신 시아버님과 결혼하셔서 20세에 남편을 낳으시고 남편 아래로 자녀 4명을 더 두셔서 모두 5남매를 출산하셨다. 그동안 시아버님이 위암으로 돌아가시고 어머니 혼자되신 지 20여 년 됐다. 지난해 어머니 팔순 잔치를 했고 올해 생신 때는 어머니를 모시고 제주도 여행을 했다. 며느리인 나와 막내 시누이, 시어머니 3명이 함께.

 금요일 오후 김해공항에서 어머니를 만나 비행기에 탑승, 어머니는 10년 전쯤 무릎 수술을 하셔서 걷기가 조금 불편하신데도 즐겁게 비행기에 타셨다. 어머니는 비행기 창으로 보이는 구름을 보시고 예쁘다 하셨고, 다행히 비행기 멀미도 안 하셨다. 도착한 첫날 제주에는 호우경보가 내려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택시를 타고 호텔에 도착했고, 호텔 방에서 셋이서 인증 사진을 찍어서 가족들에게 발송하고 호텔 주변 카페에서 차를 마셨다. 바닷냄새와 비 냄새와 커피 냄새, 사람들이 도란도란 주고받는 얘기들이 사람 사는 따뜻함을 느끼게 했다. 여행이란 나의 일상의 아름다움과 고마움을 재발견하는 것이 큰 목적이 되기도 하는데 나는 시어머니와 삶의 따뜻함이 묻어나는 차 한 잔을 마셨다.


 결혼하고 신혼 때도 아이들 키울 때도 시어머니와 함께 잤던 나는 시어머니와 함께 자는 것이 불편하지 않았고 이른 아침 안개에 싸인 한라산을 바라보며 하루를 시작했다. 맨 먼저 호텔에서 조식을 함께 먹었는데 어머니는 한식 양식 가리지 않고 잘 드셔서 다행이었다. 어머니 다리가 불편하셔서 나는 택시 투어를 미리 예약했고 9시쯤 호텔을 출발해 애월이라는 곳을 산책했다. 애월의 물이 어찌나 맑은지! 제주는 언제 찾아도 아름다운 섬이었다. 외국을 몇 차례 다녀온 경험이 있는 나지만 이번 여행을 다녀오며 새삼 우리나라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고 다시 생각하게 됐고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 더욱더 단단해 졌다. 제주의 시원한 바닷가를 걸은 후 유리성으로 가서 형형색색의 유리 공예품들을 감상했다. 그리고 마장마술을 관람했고 해물탕으로 점심식사를 하고 해상관광을 했다. 마라도가 보이는 바다 위를 1시간 정도 배를 탔는데 어머니는 아주 재미있다고 하셨다. 늦은 오후 동백숲 공원으로 갔다. 아직 동백이 피지는 않았지만 이른 나무들은 봉우리를 맺고 있었다. 이러다 보니 벌써 저녁이 돼 우리는 호텔로 돌아왔다. 어머니는 하루 종일 움직이셨는데도 피곤해하시지도 않고 즐거워하셨다. 참 다행이다 싶었다.

 여행 전 어머니가 선글라스가 없다 하셔서 준비해 갔는데 어머니가 선글라스를 무척 마음에 들어 하셨다. 눈이 편하다 하시고 실내에서도 벗지 않으시고 끼고 계셨다. 돌아오는 날에 나에게 돌려주시는데 어머니께 선물로 드렸다. 그런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남편도 예전 어렸을 때 장난감 같은 선글라스를 사주면 벗지 않으려고 했을 것 같다는 상상이 들어 혼자 웃었다. 호텔에서 전복죽을 가볍게 먹고 창밖을 내려다보니 어제는 비가 와서 개장하지 않았던 놀이 공원이 개장했다. 시누이에게 내려가서 놀이기구 탈 거냐고 물었더니 피곤해서 못 가겠다 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놀이공원에 가자고 했다. 셋이 놀이공원에 갔는데 시어머니께서 마땅히 타실 기구가 없었다. 그래서 시어머니, 시누이와 다른 사람들 기구 타는 모습을 구경하고 있었는데 시어머니께서 바이킹을 "한번 타보자"하셨다. 시누이는 어머니 심장에 무리가 된다며 안된다 했는데 시어머니께서는 타고 싶으신 모양이다. 시누이에게 시어머니와 함께 바이킹 타기를 권유했는데 시누이는 바이킹은 자신이 타 본 놀이기구 가운데 제일 무서웠다고 하며 안 타려고 했다. 나도 바이킹은 무서워서 한 번도 탄 경험이 없고 지금도 바이킹 타면 돈 준다고 해도 못 타겠다. 어머니가 원하는 바이킹을 못 태워드려 아쉬웠다. 눈 질끈 감고 무서워도 참을걸! 어머니 죄송해요!

 호우경보가 내렸던 제주는 첫날만 비가 오고 토요일 하루는 온종일 날씨가 좋아서 즐거운 여행을 했다. 마지막 날 우리는 아침 일찍 레일 바이크를 타러 갔다. 우리 김해에도 레일바이크가 있는데 김해는 낙동강변을 따라 레일바이크를 타는데 제주는 목장 주변을 레일바이크를 타고 돌았다. 그리고 어릴 때 추억을 소환하는 선녀와 나무꾼이라는 곳을 돌아봤고 메밀칼국숫집에 들러서 채소전과 메밀 칼국수를 먹었다. 안내하시는 기사님 얘기로는 제주에서 생산되는 메밀이 강원도 보다 더 많다 하셨다. 국수를 먹고 나오니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졌다. 이제 에코랜드 들러서 공항에 가기만 하면 되는데 비가 내린다. 그래도 비가 많이 참아주기도 했다. 여행하는 이틀 동안 날씨가 멀쩡했으니 감사해야지!

 아이처럼 좋아하시는 시어머니 모습을 보며 다음에 또 함께 여행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행하는 동안 나와 시누이는 시어머니가 넘어지실까 봐 시어머니를 자꾸 붙잡고 걷기도 했는데 남편이 어렸을 때도 시누이가 어렸을 때도 시어머니는 남편이 넘어질까 봐 시누이가 넘어질까 봐 자꾸 손을 잡고 걸었으리라! 바쁠 때는 업고 뛰었으리라 하는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먹먹했다. 그리고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도 났다. 살아계셨으면 함께 제주 여행했으면 좋았을 텐데….

 여러 번 가본 제주이지만 시어머니와 시누이와는 처음 함께 여행을 갔다. 비자나무 숲길을 함께 걷는 것도 좋았지만 시어머니와 시누이와 함께 마음을 나누는 여행이라서 더 좋았다. 이번 일을 계기로 나는 시어머니의 "괜찮다. 안 먹고 싶다. 여행 가기 싫다"라는 선한 거짓말을 안 믿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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