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10:16 (목)
학살의 추억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 세계
학살의 추억과 갈등으로 점철된 현 세계
  • 김중걸 기자
  • 승인 2019.10.09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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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국장/부산취재본부장 김 중 걸
부국장/부산취재본부장 김 중 걸

 대량 학살이 자행된 캄보디아에서 살아남은 어머니의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 `말할 수 없는(The Taste of Secrets, 2019년)`은 전쟁의 참혹함을 보여주고 있다.

 학살의 대명사로 일컫는 `킬링필드(The Killing Fields)`는 1975년에서 1979년 사이 민주 캄푸치아 시기에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 루즈가 자행한 학살로 죽은 시체들을 한꺼번에 묻은 집단 매장지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캄보디아계 프랑스인인 감독 `기욤 수은(Guillaume SUON)`은 어린 시절 그 참혹한 학살 현장 목격 등 경험을 말하기를 한사코 거부하는 어머니를 설득해 학살의 기억을 끄집어 내고 영상증언을 담아낸다. 현재까지 2만 개 이상의 킬링필드가 발견되고 발굴됐다고 한다.

 어머니는 소녀 시절, 시체를 나르는 일을 했다고 한다. DC 캠 매핑 프로그램과 예일대학 조사 결과 138만 6천734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으로 발표했다. 병사하거나 굶어 죽은 사람을 포함해 크메르 루즈에 의한 사망자의 수는 800만 명 중 170만 명에서 250만 명 가량 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학살이 자행됐던 이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은 세상이 지옥 같았을 것이다. 엄청난 희생이 강요되고 강요했던 민주 캄푸치아는 1979년 베트남이 침공하면서 종말을 고했다.

 다큐 영화 `말할 수 없는`과 같은 학살 증언 영화의 대명사는 1984년에 나온 영화 `킬링필드`이다. `킬링필드`는 학살의 참혹함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영화이다. 딧 프란과 또 다른 생존자 하잉 응고르가 겪은 일을 담았다.

 캄보디아 크메르공화국의 정치인이자 군인인 론 놀은 미국의 지원을 받아 쿠데타로 집권해 크메르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세력이 약해진 론 놀이 해외로 망명한 사이 베트남 전쟁이 종결되고 수도 프롬펜에 크메르 루즈가 입성했다. 크메르 루즈는 폴 포트가 이끌고 있었다. 나라 이름을 민주 캄푸치아로 개칭한 크메르 루즈는 혼란한 국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화폐제도 폐지, 도시 주민의 강제농촌 이주 등의 극단적인 공산주의를 내세워 기존의 산업시설을 모두 파괴했다. 기업인ㆍ유학생ㆍ부유층 구정권의 관계자, 심지어 크메르 루즈 내의 친 월남파까지도 반동분자로 몰아 학살했다. 120만 명이 살해됐다는 확인 안 된 보도가 있었으나 1980년 통계로는 20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1986년에는 610만 명이 희생됐다는 보고서가 나오는 등 정확한 것이 없다.

 그러나 엄청난 상상 할 수 없는 학살이 자행됐다는 역사적 사실은 분명한 사실이다. 크메르 루즈의 학살 희생자 수가 과대평가됐다는 등 얘기가 있지만, 최대 200만 명 정도 희생이 됐다는 것이 정평이다.

 영화 `말할 수 없는`에서 어린 시절 보고 느꼈던 학살의 경험을 끄집어 내기를 한사코 거부하고 침묵하던 어머니에게 좌절한 감독은 아르메니아 대량 학살 생존자의 자손이자 사진작가인 앙투안의 방법을 따른다. 앙투안 작가는 학살 현장을 찾아가 선조의 유령을 촬영하며 학살의 현장에서 죽은 자의 뼈 등을 찾아내고 카메라에 담아 전시를 하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캄보디아를 벗어나 프랑스에 정착한 어머니는 카메라를 잡은 영화감독인 큰아들과 오디오를 맡은 작은 아들의 요청에 따라 캄보디아를 방문한다. 찾아간 고향은 하루종일 물고기를 잡는 등 좋은 추억보다는 생계 걱정, 대량 학살로 죽임을 당한 시체를 치워야 했던 끔찍한 기억만 넘쳐났다. 어린 두 여동생은 굶겨서 죽이기까지 하는 고아원에 끌려간 사실을 알고 단숨에 달려가 동생들을 구했던 맏언니인 어머니는 그 옛날 고아원 담장 앞에서 머뭇거렸다. 무작정 달려간 고아원에서 같은 동네에 살던 남자를 만나는 행운으로 두 여동생을 무사히 구했다. 그녀는 "어떻게 왔냐"고 묻는 남자에게 "동생들을 찾으러 왔다"는 말만 건넸는데 남자는 동생들을 불러주고 길을 가르쳐 줬다고 증언했다. 어머니는 "남자도 두려워서 아무 말을 하지 않은 것 같다"며 "동생들을 찾으러 갔을 때 아는 사람이 있는 지도 몰랐고 거리를 두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막내가 뒤처져 다시 잡혀갔는데 두 언니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막내를 찾아내 함께 탈출했다"고 증언하며 당시를 회상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전쟁, 그리고 이어지는 죽임은 어쩌지 못하는 나약한 존재이다.작금에 세계 곳곳에서 빚고 있는 국가 간 갈등, 분쟁 등은 그 나라와 다른 나라 국민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 같다. 정치권 간의 헤게모니 싸움으로 불거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답답하다. 과거의 되풀이, 악순환의 우려 등 `학살의 추억` 같은 기시감에 몸서리쳐진다. 제발 기우이기를 바란다. 세계인들은 국민과 국민 간 반목이 아니라 정부와 정부 간 반목과 갈등인 것 같은 게 참으로 유감스럽다.정치인들의 아집으로 결론이 참혹한 쪽으로 치닫고 있는 것 같아 불안하다. 그저 정치, 정부, 위정자들이 애민ㆍ위민정신으로의 회귀만을 기도하는 소시민의 무능력 무기력이 답답하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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