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비추는 등대 사기열전
역사를 비추는 등대 사기열전
  • 이광수
  • 승인 2019.10.06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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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 광 수
소설가 이 광 수

 동양 역사학의 전범이라 불리는 `사기(史記)`는 사성(史聖) 사마천(司馬遷)이 지은 통사체 역사서로서 중국 24사(二十四史) 중 단연 최고로 꼽는 기전체(紀傳體) 사서이다. `사기` 중 70편으로 구성된 `사기열전(史記列傳)`은 주(周)나라 붕괴 후 등장한 50여 제후국 중 살아남은 전국칠웅(戰國七雄)-진, 한, 위, 제, 초, 연, 조나라-의 흥망성쇠 속에 군웅할거 했던 영웅호걸들의 이야기를 소설처럼 실감 나게 서술한 명작이다. 우리는 중국 고전하면 제일 먼저 `삼국지`를 떠올린다. 학생부터 성인까지 읽지 않은 사람이 드물 정도로 좋아하는 역사테마다. 소설과 만화는 물론 영화와 드라마로 계속 리바이벌되고 있지만 언제 봐도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어찌 된 영문인지 삼국지에 못지않은 `사기열전`은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역사 시간에 암기용으로 잠시 배워서 그런지 모르지만 근본 원인은 우리말로 잘 번역된 `사기열전`이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사기`는 몇 년 전 단국대 김원중 문학박사팀이 20년간 각고의 노력 끝에 우리말로 완역출간 돼 대학생과 일반인들이 즐겨 읽어서 중판을 거듭하고 있다. `사기`는 사마천이 한나라 무제 때 사관인 아버지 사마담(司馬談)의 유언에 따라 평생을 바쳐 피로써 저술한 역사서로서, 중국 전설의 황제 시대부터 한 무제까지 2천 년의 통사를 아우르고 있다. 특히 `사기열전`은 유려한 필체로 한 편의 소설을 쓰듯 박진감 있게 사실적으로 서술해 서양의 `플루다크 영웅전`이나 중국의 `삼국지`를 능가할 만큼 재미있다. 완전 한글로만 번역된 정본도 좋지만, 한문에 어느 정도 조예가 있는 분은 원전을 현토 번역한 책을 권한다. 한문 공부도 저절로 되고 글 쓸 때나 스피치 할 때 인용하기 좋은 명언 명구가 지천으로 깔려 있다.

 `사기`는 본기(本紀) 12편, 표(表) 10편, 서(書) 8편, 세가(世家) 30편, 열전(列傳) 70편 등 총 130편에 약 52만 6천5백 자로 구성돼 있다. 이 다섯 부분 130편은 서로 긴밀하게 연계돼 있으며 얽히고설킨 인물관계 설정으로 비슷하거나 같은 내용이 중첩 돼 실려 있기도 하다. `본기`는 고대 전설상의 오제(五帝)로부터 한나라 무제(武帝)까지의 사적을 기록한 것이다. `서`는 사회제도에 주목해 이상과 현실, 변혁과 민생문제 등을 보여주는 전문적 논술로 문화사나 제도사 같은 성격을 갖는다. `세가`는 제왕보다 낮은 위치인 봉건 제후들의 나라별 역사를 다루고 있다. 제후들 외에 황제 때 친인척과 공훈을 세운 신하 등이 포함돼 있으며, 무관의 제왕인 공자(孔子)와 진섭(陳涉)이 포함된 점이 이채롭다. `열전`은 주로 제왕과 제후를 위해 봉직한 책사 군사들의 전기를 수록하고 있으며 때로는 계층을 초월해 기상천외한 인물들이 포진돼 있다. 다양한 인물들의 삶과 그들과 관련된 사건들을 평가함으로써 사마천의 역사의식이 가장 잘 드러나고 있는 부분이다.(김원중, 사기 역자 해제 참조)


 이런 대 역사서를 저술한 사마천(司馬遷:기원전 145~90년?)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그의 자는 자장(子長)이며 지금의 섬서성인 한성시 용문 출신이다. 아버지 사마담은 한 무제 때 태사령(사관)을 지냈다. 천문학과 주역 및 음양 원리를 배워 한 무제를 보필하며 온 나라를 주유 중에도 고적을 탐방하고 역사적 자료가 될 만한 것들을 빠짐없이 수집했다. 생전 사마천에게 역사서를 집필하라고 유언하고 세상을 떠난 것이 사기 집필을 결심하게 된 동기가 됐다. 부친 사후 사마천은 4년간의 집필 준비를 거친 끝에 기원전 104년에 `사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한 시절 흉노와의 전쟁에 출정한 장수(이릉)가 패전해 투항한 것을 변호하다 죄인으로 몰려 투옥됐다. 1년 후 재판에서 그 당시 세 가지 형벌인 구형대로 주살 당하는 것, 50만 전으로 형을 면제받는 것, 남성성을 거세당하는 궁형 중 중인으로서 형 면제의 금전적 여유가 없었던 그는 치욕의 궁형(宮刑)을 선택해 죽음만은 면하게 된다. 그리고 한 무제로부터 사기 집필의 직책을 받은 그는 20년의 긴 작업 끝에 집필을 완수한 후 세상을 떠났다. 참으로 한 인간으로서 당한 치욕적 형벌을 감수하고도 거대한 역사기록 앞에 살신성인한 그의 역사의식은 필설로 이루 다 표현할 수 없을 것 같다. 철저한 역사고증을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현지답사까지 하면서 52만 6천5백 자의 글로, 그것도 종이가 아닌 죽간의 좁은 면에다 기록했으니 그 형해의 인고가 오죽했겠는가. `사기`가 그냥 역사서가 아니라 세계 최고반 열의 명저로 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사기` 중 `사기열전`의 인물 선택과 서술방식은 역사는 결코 지배자와 승자만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기록으로 보여 줌으로써 사마천의 균형 잡힌 역사관을 엿볼 수 있다. `사기열전` 70편을 섭렵해보면 우리들에게 익숙한 `백이숙제`, `관포지교`, `오월동주`, `명의 편작` 얘기도 나온다. 그리고 `조선열전` 편에는 고조선의 탄생과정과 조선 침공, 한사군 설치에 대한 기록도 있어 우리 고대사의 중국기록을 상고해 볼 수 있다. 삼국지만큼 흥미진진한 `사기열전`은 혼란의 극치를 이루던 춘추전국시대에 군웅할거 했던 영웅호걸들의 치열한 권력다툼과 생존전략이 담겨있다. 승자와 패자가 한순간에 뒤바뀌는 반역의 역사, 시대에 맞선 자, 시대를 거스른 자, 시대를 비껴 간 자들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사기열전`을 생명력 넘치는 산 역사로 인식하게 만든 것은 현재를 살아가는 인간 본위의 역사를 피로써 기록한 사성 사마천의 각고의 노력 덕분이다. 국론분열과 정쟁으로 만신창이가 돼 난파 위기에 처한 한국호의 구조방도를 `사기열전`에서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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