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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축의 역습
가축의 역습
  • 강보금 기자
  • 승인 2019.09.26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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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기자 강 보 금
사회부 기자 강 보 금

 먹거리의 위협이 전국을 뒤흔들고 있다. 아프리카돼지열병이 경기도 파주, 연천, 김포 등 전방위적으로 확산된 후 남하할 가능성이 제기된 것이다. 이는 바야흐로 가축의 역습이라 볼 수 있다.

 가축전염병이 출몰하면 정부는 전염병 출몰 지역을 중심으로 가축들을 한곳에 모아 생매장을 한다. 매일 수만 수천 마리의 가축이 괴성을 지르며 끔찍하게 매몰된다. 1년 365일 부지런히 가축을 돌보던 농부는 빈 축사를 보며 시린 가슴을 쓸어내린다. 생매장당한 가축들의 생은 의미 없이 마감된다.

 우리나라를 공포로 휩싸이게 한 가축전염병은 2000년 파주에서 발생한 구제역 파동, 2003년 포천, 당진 등 27개 시ㆍ군을 휩쓴 돼지콜레라, 2008년 김제, 논산에서 발병한 조류인플루엔자 등이 있다. 2000년 이후 주요 가축전염병으로 살처분된 소, 돼지, 닭, 오리 등은 최소 1천980만 6천972마리다. 이번 돼지 열병까지 합하면 2천만 마리가 훨씬 웃돌게 될 것으로 보인다. 2천만이라는 숫자는 중국의 수도 베이징의 인구와도 맞먹는 수이다.

 가축이란 인간에 의해 순화되고 개량돼 사람과 함께 공동생활을 하는 유용한 동물을 뜻한다. 현대에는 가축은 농가에서 키워져 인간의 식탁으로 올라오는 먹거리로 많이 키워지고 있다. 야생동물이 인간에 의해 순화돼 가축화된 것은 선사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신석기시대에 이르러서는 오늘날 볼 수 있는 대부분의 가축들이 가축화된 것으로 보고 있다. 고고학자들에 따르면 최초의 가축은 개로서 약 1만 2천 년 전에 사육되기 시작했고, 소, 말, 돼지, 양, 염소 등은 1만여 년 전에 가축화가 이뤄졌다고 짐작하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초기부터 목축을 권장해 내륙ㆍ섬 등에 소나 말을 사육하기 위한 국립목장이 운영됐고, 공사(公私)의 제(祭)에 암놈을 쓰는 것을 금했으며, 마정을 다스리는 사복시(司僕寺), 잡축(雜畜)을 기르는 전구서(典廐署), 제사용 희생을 맡는 장생서(掌牲署) 등의 직제가 있었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가축은 주로 역용으로 사육됐으며, 유교의 사농공상 계급 관념은 실학이나 실업을 천시해 가축의 사육과 이용이 장려되지 못했다. 이와 같이 조선 시대까지도 가축사육은 농사를 짓기 위한 노동력의 확보, 군마의 육성, 그 부산물로 얻어지는 두엄 등을 이용하는 데 불과하다가 민족항일기에 이르러, 식민정책의 영향으로 외국 가축의 도입, 관영 목장의 경영, 일본인들에 의한 유우ㆍ면양ㆍ종마 등이 산업적으로 사육되기 시작했다. 오늘날에는 기업적, 전업적인 수준에서 가축을 사육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오래된 가축에게서 왜 전염병이 발병돼 인간에 해를 가하게 되는 것일까. 이는 가축의 사육 방법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가축을 키우는 환경은 농가의 수요가 많아질수록 더욱 척박해져 갔다. 그 예로 돼지 한 마리에게 주어진 평균 농장 면적은 2001년 1.79㎡(0.54평)에서 2010년 1.42㎡(0.43평)으로 줄어들었다. 또 1천 마리 미만의 돼지를 키우는 농가는 마리당 평균 면적이 0.57평인데 비해 5천 마리 이상 농가는 0.39평에 불과했다. 닭의 경우에는 더 심각하다. 축산법이 규정하는 `가축사육시설 단위 면적당 적정 가축 사육기준`에 따르면 케이지에 사는 산란계 한 마리에게 주어지는 공간은 겨우 0.042㎡이다. 이는 A4용지에도 못 미치는 공간이다.

 우리나라는 국토 면적 대비 가축 사육 규모가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가축 사육 환경은 점점 더 악화하는 상황에서 병 없이 건강한 가축을 키우는 것은 어려운 일일 수밖엔 없다. 결국 가축전염병은 예고된 결과였으며 이 또한 인간이 만들어낸, 스스로에게 천천히 독약을 먹이고 있는 짓과 같은 것이다. 일각에서는 가축을 도축하는 과정이 매우 비인도적이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생명의 존엄성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먹이사슬의 상층부에 있는 인간이 어쩔 수 없이 육식을 해야 한다면, 그 생명이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시간 동안이라도 생명 대 생명으로서 최소한의 존중을 해 줘야 하지 않을까. 수많은 철학자를 비롯해 삶을 고뇌하는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떻게 죽을지`를 고민하는 것처럼 생명을 존중하는 마음을 담아 `어떻게 키워서, 죽여서, 먹을지`도 한 번쯤은 심각하게 고민해 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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