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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우정치의 극치 한국 국회의 민낯
중우정치의 극치 한국 국회의 민낯
  • 이광수
  • 승인 2019.09.22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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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중우정치(衆愚政治, ochlocracy)란 다수의 어리석은 민중이 이끄는 정치를 말한다. 플라톤은 다수의 난폭한 사람들이 이끄는 `폭민정치`라고 했으며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다수의 빈민들이 이끄는 `빈민정치`라고 했다. 중우정치는 올바른 민주제가 시행되지 못하고 몇몇 사회집단이나 정치 세력이 그들의 힘을 앞세운 `떼법(mob rule, mob justice)정치`로 민주주의의 치명적인 단점이 심화되면서 생기는 정치형태이다. 플라톤은 아테네의 몰락은 중우정치 때문이라고 했다. 그 대응책으로 플라톤은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가 주장한 스파르타식 정치를, 아리스토텔레스는 중산층이 주도하는 민주정치의 회복을 역설했다. 그는 대중적 인기에 영합(포플리즘)해 그들 집단의 요구에 부응하는 정치 사회적 병리 현상(아노미)을 비판했다. 개인의 능력과 자질, 사회적 기여도를 고려하지 않는 잘못된 평등주의, 개인과 시민의 절제와 덕목을 경시하고 책임지지 않는 무절제와 방종으로 치닫는 병리 현상, 엘리트주의를 부정하고 다중의 정치로 흘러가는 현상을 중우정치의 병폐로 적시했다(Wikipedia 백과사전). 중우정치의 행태는 2천4백여 년(BC4~3세기) 전의 그리스나 지금 세계 여러 나라와 한국의 경우 그때보다 심했으면 심했지 덜하지 않다. 이는 인류발전의 관점에서 볼 때 시대착오적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우리 국회를 둘러보자. 난장판 국회를 자체 정화한다고 국회선진화법이 통과됐다. 서부활극을 무시로 연출했던 국회가 어느 정도 자정 현상을 보이는 듯하더니 선거법 개정을 둘러싼 패스트트랙 사태로 또 난장판이 재연됐다. 상대 당 의원들을 서로 맞고발하는 추태가 발생해 검찰의 집단수사를 받게 됐다. 이제 우리 국민들은 한국 국회는 치유 불능의 중병에 걸린 구제 불능 정치집단으로 치부하고 있다. 너 죽고 나 살기식의 극한대립은 이번 조국 법무부 장관의 임명강행으로 타협 불능의 정쟁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기선제압으로 장기 집권 마스터 플랜을 강행하려는 민주당과 이를 저지하고 정권재탈환을 위해 사생결단인 야당(한국당, 바른 미래당 등 보수 야당)의 대결은 점입가경이다. 야당 당수가 청와대 앞에서 정부규탄 항의 삭발을 감행하고, 마이웨이를 외치며 일방통행 중인 불통의 현 정부와 여당은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산인 것 같다. 이 와중에 고래 싸움에 등 터진다고 죽는 것은 중소상공인과 서민들뿐이다. 바닥을 헤매는 경제 상황과 고립무원의 외교 난맥상, 기대난망의 남북화해 정책 등 되는 일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통령과 정부 책임자들은 경제연구단체와 학자들이 실패한 것으로 평가절하한 소득 주도정책을 계속 밀어붙이면서 장밋빛 환상에 도취해 있다.

 내가 사는 창원은 한국 최대 최초의 기계공단이자 한국원전산업의 메카이다. 인구 108만의 광역시급으로 2000년 7월 출범한 통합창원시는 STX조선의 몰락과 수명이 다한 기계공업의 낙후로 근로자들이 일터를 잃고 인근 도시로 이주하는 바람에 해마다 3~4천 명씩 인구가 감소하고 있다. 광역시 대안으로 특례시 승격을 앞두고 있는 창원시는 100만 인구 유지에 빨간불이 켜진 상태다. 오죽했으면 여당 출신 창원시장이 정부의 탈 원전정책의 속도 조절 필요성을 역설하면서 위기에 처한 창원경제 살리기에 동분서주하겠는가. 지금 지방의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은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위기감으로 전전긍긍하고 있다. 일본의 부품생산기지가 많은 창원의 경우 정부의 대일관계 악화로 인한 무역 보복으로 곤경에 처해있다. 한일합섬과 한국철강의 폐쇄 이전, 수출자유지역에 투자한 일본기업의 철수로 공동화된 구 마산시의 경기 현황을 둘러보면 일터가 사라진 도시의 쇠락 상을 실감케 한다. 이런 정국에 지방의회는 제 역할을 못 한 채 파탄 난 국회의 권력 향배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내년 총선으로 가는 지름길 찾기에 분주하다. 국내외 정치경제 외교 상황과 전망을 살펴보면 하나도 녹녹하지 않다. 이런 때일수록 우리는 지난 역사를 반추해보고 자존의 길을 찾아야 한다. 사서육경의 하나인 주역(易經)에서 택화혁(澤火革)괘의 괘사(卦辭)를 보면 하늘이 정도(正道)를 4시(時:계절)로 바꾸듯이 천리에 순하고 인사에 응하는 것을 혁(革)이라고 한다. 지금까지 잘 되지 않았거나 부조리했던 것을 버리고 새 마음 새 뜻으로 바꾸는 것이니 치밀한 계획과 주변 사람들(국민)의 협조를 얻어 추진해 나가면 발전한다고 했다. 순리를 따르라는 말이다. 지금 여당과 정부에서는 사법개혁(검찰개혁)이라는 미명하에 여론을 무시한 무리한 인사를 단행함으로써 협치는 사라지고 여야가 극한 대치상태에 있다. 중우정치의 충돌로 나라의 앞날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시계제로 상황이다. 사마천이 지은 사기열전(史記烈傳)의 <상군열전>에서 `사람의 마음을 잃는 자는 망한다.` `그 자리가 아닌데 그곳에 머무는 것은 그 자리를 탐한다고 하고, 그 이름이 아닌데 그 이름을 누리는 것은 이름을 탐한다.`고 했다. 시경(詩經)에서 `사람을 얻는 자는 흥하고 사람을 잃는 자는 망한다.` `덕을 믿는 자는 창성하고 힘을 믿는 자는 멸망한다.`고 했다. 우리는 지난 역사의 실패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 거시적 안목으로 세상을 살아야 한다. 중우정치의 민낯을 까발리고 있는 여야 정치인들은 자기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 국민에게 희망을 심어 줘야 한다. 불통과 아집은 결국 공멸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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