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2:39 (목)
세상에 `완벽범죄`는 없었다
세상에 `완벽범죄`는 없었다
  • 어태희 기자
  • 승인 2019.09.19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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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부 기자 어 태 희
지방자치부 기자 어 태 희

화성군 일대서 일어난 연쇄살인사건

재수사 과정 중 DNA 의뢰했더니

무기징역 복역 중인 이춘재 특정돼

미제사건 실마리 풀 희망 되찾아

 "밥은 먹고 다니냐?"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의 긴 러닝타임의 끝자락에서 극 중 박두만 역을 맡은 배우 송강호가 스크린 너머 우리의 시선을 마주하며 갈라지는 목소리로 이 물음을 던졌다. 이 장면은 한국 영화에서 손꼽히는 결말과 애드리브다. 시나리오에서는 없었으나 송강호가 해당 장면을 찍을 때 봉준호 감독에게 즉석에서 제안을 했다고 한다. 이 장면에 관한 해석은 팬들 사이에서 분분하지만 가장 유력한 것은 `이런 짓을 하고도 밥이 넘어가냐`는 질문이다. 실제로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 시사회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은 과시적인 성격을 가진 사람이다. 꼭 보러 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송강호 배우가 정면을 바라보게 했다"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범인은 밥을 먹고 다녔다. 정확히 말하자면 `콩밥`을 먹고 있었다. 지난 18일 저녁, 우리는 대한민국 3대 미제사건 중 하나인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밝혀졌다는 충격적인 속보를 접했다. 그것도 교도소 안에서.

 화성연쇄살인사건은 1986년서 1991년에 걸쳐 경기도 화성군 일대에서 일어난 성폭행 결합 연쇄살인 사건이다. 강간과 살인이 짧은 시간 간격을 두고 이뤄졌고, 속옷을 안면에 씌우거나 두 손을 뒤로 묶는 등 당시로써는 잔인하고 비인간적인 범행 수법으로 화제가 됐다. 당시 경찰이 많은 용의자들을 특정했으나 결국 미제로 끝나게 됐던 사건이 이제야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최근 화성연쇄살인사건을 재수사하는 과정에서 교도소에 수감된 이춘재를 진범으로 특정할 만한 주요 단서를 확보했다. 당시 사건 증거물들 중 피해자 속옷 등에 남은 DNA를 확보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DNA 의뢰한 결과, DNA와 일치한 용의자를 찾아낸 것이다. 이춘재는 1994년 청주에서 자신의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인해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이춘재의 처제 살해 수법은 화성 연쇄살인 사건과 여러모로 닮은 점이 있었다. 이춘재가 살해한 처제의 시신은 여성용 스타킹으로 묶여 싸여져 있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현장에도 스타킹이나 속옷 등 피해자의 옷가지가 여럿 발견됐다. 성폭행한 뒤 시신을 유기하는 범행 방식도 비슷했다. 이춘재는 처제를 살해한 후 시신을 집에서 약 800m 떨어진 창고에 은폐했다. 화성 연쇄살인 사건 때도 범행 현장 인근인 농수로나 축대, 야산 등 인근에 숨겨져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춘재가 복역하던 2006년,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에 대한 죗값은 따로 물을 수 없으나 평생의 한을 안고 살던 유가족들과 그의 그림자를 쫓았던 경찰 관계자 등은 앞으로 일궈진 진실 규명을 통해 커다란 응어리를 조금이라도 덜어놓을 수 있게 됐다.

 1990년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수사가 일어나던 당시 화성경찰서에서 근무했던 표창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화성 사건 당시에는 유전자 증폭기술과 장비 등이 갖춰져 있지 않았다. 대신에 현장 수거 증거물들을 잘 보관하고 있었고 그것이 가장 중요한 근거가 됐다. 강력 사건에 대한 증거물은 영구 보존해야 된다"며 과학수사와 강력범죄 시 증거물 보존에 관한 중요성을 얘기했다.

 `완전범죄는 없다.` 이번 화성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 특정은 이 메시지를 사회로 내보내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 아직 조사의 단계는 더 남아 있지만 안개 속에 머물러 있는 남은 미제사건 들 또한 `언젠가는` 밝혀지리라, 우리는 그 희망 또한 가져갈 수 있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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