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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 찾아 김해 축제장을 거닐다
느림의 미학 찾아 김해 축제장을 거닐다
  • 김용구 기자
  • 승인 2019.09.18 22: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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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차장 김 용 구
사회부 차장 김 용 구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성실, 근면을 위시해 수십 년간 성장을 거듭해왔다. 자연스럽게 세계에서 수위를 다툴 정도로 일을 많이 하는 나라가 됐다. 국내 근로자의 연간 평균 근무시간은 2천24시간으로 OECD 평균보다 무려 35일 더 일한다는 통계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치열한 경쟁까지 일상이 된 지 오래다. 갈수록 각박해지는 사회에 견디지 못한 국민들은 수년 전부터 소확행, 미니멀 라이프 등 작은 것들로부터 행복을 찾는 작업에서 위안을 얻게 됐다.

 이런 시류는 지자체의 정책 기조에도 영향을 끼쳤다. 김해시의 경우 지난해 6월부터 국제 슬로시티를 전면에 내걸고 차근차근 도시 브랜드화 구축에 나서고 있다. 국제 슬로시티란 지난 1999년 이탈리아의 한 작은 도시에서 시작된 행복 공동체 운동으로 삶의 속도보다는 깊이와 넓이를 채워가자는 취지를 담고 있다. 시는 국내 14번째로 국제 슬로시티연맹 가입 인증을 받았지만 무서운 속도로 도시 곳곳에 이런 취지를 반영하고 있다. 도시재생사업으로 낙후된 구도심이 젊음의 거리로 거듭난 김해 봉황동 봉리단길이 대표적이다. 도심 속 여유를 누리는 율하천과 대청천 거리는 물론 주민 스스로가 만든 수국으로 가득 찬 대동면 수안마을도 빼놓을 수 없다.

 이런 가운데 시는 오는 20~21일 느림의 미학을 담은 축제를 잇달아 개최하면서 이런 위상을 다진다. 우선 한림면 화포천 습지 생태박물관 일대에서 열리는 `화포천 습지 작은 반딧불이 생태축제`가 시민들을 반긴다. 화포천 습지 생태공원은 지난 2017년 11월 보전 가치를 인정받아 습지보호지역으로 지정됐다. 큰기러기 등 멸종 위기 야생 동식물 13종을 비롯해 812종의 다양한 생물이 서식하거나 출현하는 생태계의 보고이다. 펼침마당, 버드나무길, 아우름마당, 창포뜰, 둑방길 등 생태하천을 거닐며 이런 동식물들을 천천히 관찰하는 것이 이번 축제의 주행사여서 슬로시티의 정신과 잘 어울린다. 또 박물관에서는 화포천에서 서식하는 다양한 생물 만들기, 습지 야생화 그리기, 반딧불이 티셔츠 만들기, 병뚜껑을 활용한 친환경 조명등 만들기 등을 습지를 콘셉트로 하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아울러 마을 주민들이 친환경 농업으로 가꾼 식자재를 이용한 생태식당이 운영되는데 슬로시티 운동의 취지인 1회용품 사용을 제한한다.

 같은 기간 수로왕릉에서는 `가야 왕도를 거닐다`를 주제로 야간형 문화 향유 프로그램인 `김해 문화재 야행 본야행(本夜行)`이 개최된다. 이번 축제에는 야경ㆍ야로ㆍ야사ㆍ야화 등 8개 분야 총 19개 프로그램이 마련돼 있으며, 수로왕비릉, 구지봉 등 가야 유적지에서 이색적인 달 풍경과 함께 유적 곳곳을 둘러보며 김해의 역사를 이해하고 체험하기 좋은 행사이다. 특히 수로왕릉 일대에는 `하늘에서 6개의 알이 내려와 수로왕이 태어났다`는 수로왕 탄생 설화를 차용해 만든 달 조형물 6개가 왕릉의 밤을 아름답게 밝힌다. 또 수로왕릉 내 숭모재 실내에서는 역사 콘서트인 가야톡을 운영하고 가야 조각 그림 찾기, 가야 의상실의 포토존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창원과 부산 사이에서 김해시는 폭발적인 성장을 거듭해왔지만, 그동안 관광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평이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2천 년 전 가락국 도읍지였던 역사 문화적 기반에 근거해 가야사 복원사업 등에 매진하면서 관광도시로서의 위상을 차근차근 구축하고 있다. 특히 슬로시티 정신인 느림의 미학을 중요시하는 도시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우면서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인 성과도 있었다. 지난 6월 이탈리아 오르비에토에서 열린 국제 슬로시티연맹 총회에서 `2019년 국제 슬로시티 비디오 콘테스트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시는 슬로시티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지난 7월 주민, 기업이 참여하는 국제 슬로시티 김해협의체를 구성했다.

 그러나 이같은 김해시의 노력에도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그 가치를 여실히 알지 못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처럼 수로왕릉이나 화포천 생태공원을 거닐며 직접 눈으로 보고 느껴야 한다. 소중한 사람과 함께 행사장을 방문해 느림의 미학이 담긴 슬로시티 정신을 직접 체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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