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 장군 2명, 충무공 9명 누가 진짜냐
이순신 장군 2명, 충무공 9명 누가 진짜냐
  • 송종복
  • 승인 2019.09.17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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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박사/사)경남향토사연구회장 송종복
사학박사/사)경남향토사연구회장 송종복

 현재 해군의 구축함에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함이 있고, 잠수함에는 무의공 이순신(李純臣)함이 있다. 흔히 `이순신 장군`하면 임진왜란 때의 장군을 말한다. 그러나 임란 때 이순신 장군이 두 명이다. 한 명은 충무공 이순신(덕수이씨) 장군이고, 또 한 명은 무의공 이순신(전주이씨) 장군이다. 다음 포탈에는 아예 충무공 이순신 장군 밖에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네이버 포탈에는 충무공과 무이공 두 명의 장군이 나온다. 충무공이란 시호도 조선 시대에 9명이다. 즉 태종 때 조영무,세조 때 남이와 이준, 선조 때 이순신(李舜臣)과 김시민, 광해군 때 김응하, 인조 때 이수일과 정충신, 효종 때 구인후가 모두 충무공(忠武公)이다. 그러니 반드시 `충무공 이순신`이라고 해야 진짜 이순신(李舜臣)이 된다.

 무의공 이순신(李純臣) 장군(1554~1611)은 전주 사람으로 23세에 특별시험인 무과별시에 급제했다. 임란 발발 3개월 전에 전라좌수영에는 두 이순신이 만났다. 같은 부대에 있던 2명의 이순신 장군을 모셔야 했다. 이때 두 명의 이순신 장군의 이름 혼돈을 피하기 위해 李純臣(이순신)을 방답첨사 이순신이라고 부르다가 그래도 혼돈이 와서 이첨사라고 불렸다. 그는 임란 때에 충무공 이순신(李舜臣)의 중위장이 돼 공을 세웠다. 이같이 흔하지도 않은 이름을 가진 동명이인이며 둘 다 동시대의 무신이며 심지어 개인적으로 아주 친했던 사이다. 같은 부대에서 상관과 부관으로 왜군을 맞아 싸운 엄청난 인연이다. 따라서 둘을 구별할 때는 반드시 `충무공` 이순신과 `무의공` 이순신으로 구별해야지 막상 이순신 장군이라 하면 혼란이 온다. 무의공 이순신 장군은 이승만 대통령의 9대조 방계 조상이다.


 지난 2017년 6월 18일 자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서 무의공 이순신 장군의 이야기를 다뤘는데 혹자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으로 오해가 많았다. 무의공 이순신 장군은 왜란 당시 방답진 수군첨절제사로, 칠천량해전 이후에는 경상우도 수군절도사로 활약했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탄에 사망하자 무의공 이순신 장군이 부대를 이끌고 바로 그 자리에서 개선해 전투를 마무리 지었다. 그 공으로 명나라 제독 진린(1597)에 의해 충무공의 후임 통제사로 천거했다. 그 후 포도대장, 오위도총관, 충청수사, 수원부사, 경상부사, 황해도병사, 함경도병사 등을 역임했다. 보통 기록에 `이순신이 무예가 뛰어났다`는 이야기는 바로 이 `무의공 이순신 장군`을 말하는 것이다. 무예도 우수하고,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보좌해 수많은 전쟁을 승리로 이끈 능력 있는 장수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동명이인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위업에 묻혀 햇빛을 보지 못하고 있는 인물이다. 한때는 충무공 이순신이 백의종군하게 되자 제일 먼저 술을 들고 찾아가 밤새 위로했다는 기록이 <난중일기>에 전한다. 무의공 이순신은 1611년(59세)에 사망했으며 묘소는 광명시 서독산에 있다.

 현재 해군의 `구축함`에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함(DDH-975)이 있고, `잠수함`에는 무의공 이순신(李純臣) 장군함(SS-068)이 있다. 이런 사실을 모르고 사람들이 흔히 이순신 잠수함이라 하면 충무공 이순신 장군함으로 보는데 이는 큰 잘못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함은 `잠수함`이 아니고 `구축함` 임을 구별해야 한다.

 무의공 이순신(李純臣) 장군은 옥포 해전에서 적선 50척, 합포 해전에서 적선 5척, 고성 해전에서 적선 13척, 사천 해전에서 적선 12척을 격파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이첨사의 이순신(李純臣) 장군이 눈부신 활약을 보여 줬고,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장군은 이름이 같은 무의공 이순신(李純臣)을 신임했다고 한다. 따라서 누가 누구인지 어느 이순신이 적선을 격파했는지 연구를 다시 해 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충무공 이순신(李舜臣, 1545.4~1598.12)은 한성(서울) 출신이며 묘소는 아산에 있다. 그는 21세에 무과에 급제해 발포진수군만호, 조산보만호, 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거쳐 삼도수군통제사에 이르렀다. 충무공 이순신은 4형제이다. 그의 부친은 아들의 이름을 중국의 3황 5제를 본받아 복희씨, 요, 순, 우 임금을 자를 따서 첫째는 이희신, 둘째는 이요신, 셋째는 이순신, 넷째는 이우신으로 지었다. 이로 보면 덕수 이씨의 가문은 국가관이 투철한 충효의 가문임을 알 수 있다.

 이같이 동시대에 동성이명 장군의 두 명 있어 후세에 이를 구별키 위해 무의공 李純臣(이순신)을 李純信(이순신)이라고 臣을 信으로 썼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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