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21:33 (금)
변화하는 추석 명절 풍속도
변화하는 추석 명절 풍속도
  • 이광수
  • 승인 2019.09.08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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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추석 한가위가 코앞에 다가왔다. 곧 국민 대이동이 일어날 것이다. 기껏 하루 머물 고향 나들이지만 부모형제들이 함께 모여 그간 못다 나눈 얘기와 소식도 듣고 돌아가신 조상과 부모님 산소도 들릴 수 있어서 기다려질 것이다. 더욱이 고향에 부모님이 살아계신다면 자식들을 기다리는 부모의 마음은 더욱 간절할 것이다. 집 안팎 청소로 분주하면서도 동구 밖을 새벽부터 내다보며 손자들 오기만 학수고대한다. 고달픈 일상의 삶 속에서도 무시로 생각나는 고향산천. 어릴 적 추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 자신도 모르게 코끝이 찡해온다. 조부모 앞에서 재롱도 부리고 집 앞 개울에서 물장구치고 놀 생각에 들떠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내 몸과 마음이 쉴 안식처인 고향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그러나 부모도 형제도 다 떠나버려 실향 아닌 실향민 신세가 돼버린 것이 오늘을 사는 대부분의 도회인들이다. 그들은 성묘할 산소마저 관리하기(벌초)가 힘들다고 파헤쳐 화장해 강물에 흘려보내거나 나무 아래 뿌려버린다. 그래도 아직 뼈대깨나 있는 집안에선 가족묘지(가족납골당 등)를 만들거나 문중 단위 자연장 묘지를 설치해 조상들을 잘 모시고 있다. 먹고 살기가 힘들고 묘지관리가 귀찮다고 화장한 뼛가루를 강물이나 산에 뿌려버려 조상과 부모의 흔적조차 아예 없애버리는 근본 없는 세상이 돼가고 있다. 자신을 있게 한 조상과 부모의 흔적이 사라지면 내 존재의 근원이 없어지는 거나 마찬가지다. 아무리 세상이 변했다고 하지만 자신의 근본을 망각하는 것은 내 존재를 부정하는 것과 같다. 이제 성묘조차 하지 않아 선대 직계 조상의 묘지가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르는 세대가 점점 늘어가고 있어 안타깝다. 사람이 짐승 같은 동물과 다른 것은 만물의 영장이기 때문이다. 얼마 전 선조들과 부모묘지를 성묘하고 나니 힘들기는 해도 후손 된 도리를 한 것 같아 마음이 한결 가볍다. 부모와 먼저 간 아내의 묘지 벌초에 바쁜 시간을 틈내 애써 따라나선 자식들이 고맙기만 하다. 부모가 먼저 본을 보여야 자식들이 따라 한다. 남의 집 사위나 며느리가 돼 본 데 없다고 욕 듣게 하는 것은 부모 탓이지 자식 탓이 아니다. 추석 얘기가 잠시 엉뚱한 곳으로 흘렀다.

 서양의 추석은 추수감사절(Thanks Giving Day)로 미국, 캐나다 등 북미는 11월 네 번째 목요일로 주말까지 쉬는 명절이다. 일본을 제외한 한국, 중국, 동남아 등 아시아권은 음력 8월 15일 추석 명절을 음력설과 함께 최대 명절로 꼽는다. 서양의 추수감사절은 개신교에서는 크리스마스, 부활절과 함께 3대 명절로 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유대인들은 민족해방에 대한 감사절인 유월절, 첫 열매의 수확에 대한 감사절인 초실절, 가을에 추수해 곡식을 저장하고 나뭇가지로 집을 지으며 그 안에 7일 동안 지내는 수장절이 3대 명절이었다(위키피디아). 미국의 추수감사절에는 우리가 설에는 떡국, 추석에는 송편을 먹듯이 칠면조를 요리해 먹는다. 한때 동물보호단체에서 백악관에 근무하는 모든 공무원에게 칠면조 요리를 1인분씩 주는 추수감사절 행사를 금지하라는 청원을 내기도 했다니 추수감사절이 칠면조 수난(?)의 날이라는 말이 나올 법도 하다. 아무튼 동양의 추석이나 서양의 추수감사절은 농경시대의 문화유산이다. 오곡을 여물게 하고, 온갖 과일을 숙성케 해 인간에게 풍성한 먹거리를 제공해준 자연과 신과 조상에게 감사하는 명절이다.

 그러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농업은 1차 산업에서 3~4차 산업으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다. 농업종사자도 5~10%로 급감했다. 급속한 도시화로 추석과 추수감사절의 의미가 점차 퇴색돼 가고 있다. 시장과 마트엔 계절에 상관없이 사시사철 수입과일들이 풍성하고 농산물도 공장에서 생산하는 공장농업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장차 바이오산업의 발달로 자연생태계에 구애받지 않는 농산물의 인공합성시대를 맞게 될 것이다. 바이오테크놀로지(Bio Technology)를 바탕으로 기존 산업과는 다르게 생물공학 기술에 의해 농업, 식품 등 여러 산업부문에서 새로운 개념의 농ㆍ식품 개발을 눈앞에 두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추석에 관한 의미가 많이 퇴색돼가고 있는 것을 피부로 절감한다.

 이제 추석도 농경시대의 명절과는 다른 방식으로 보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식들이 이미 그런 의향을 보인다. 성묘 때 산소를 찾아가서 벌초한 후 간단히 예를 올리고 추석 명절은 가사로부터 해방되자는 생각들이다. 나도 생각해 보니 좋을 것 같아 올 추석 때 대가족이 모인 자리에서 의논키로 했다. 나 역시 번거롭게 설과 추석을 모두 지내는 것이 달갑지 않다. 설만 대가족들이 모여 함께 지내고 추석은 소가족 단위로 여행을 가는 휴가 명절로 보낼 생각이다. 이때 나도 호젓하게 혼자 여행하는 재미를 누리고 싶다. 시대 흐름에 따라 요즘 대세인 옛것과 새것이 조화를 이루는 뉴트로적 추석 명절 보내기도 괜찮을 것 같아 자식들 생각에 대찬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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