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3:54 (수)
끝나지 않은 6.25 한국전쟁
끝나지 않은 6.25 한국전쟁
  • 이광수
  • 승인 2019.09.01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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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올해는 6ㆍ25 한국전쟁 발발 69주년이 되는 해이자 휴전협정 66주년이 되는 해이다. 지난해 4ㆍ27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간 싱가포르회담으로 한반도에는 잠시 평화와 협력의 시대가 도래하는 듯했다. 그러나 지금 이 정부와 열혈 사회주의자들이 꿈꾸며 기대하는 통일 유토피아의 환상은 단지 희망 사항으로 끝날 공산이 커 보인다. 70년을 이어온 북한 세습공산독재정권의 속셈과 통일 환상에 사로잡힌 북한 바라기 현 정부의 구상에는 넘기 힘든 큰 장벽이 존재함을 절감케 한다.

 6ㆍ25 한국전쟁에 관한 저서는 베트남전쟁과는 달리 의외로 적다. 이것은 한국전쟁이 미국인의 관심권 밖에 있었다는 증거다. 그러나 <이런 전쟁: This Kind of War-T.R 페렌바크(T.R Fehren Bach)>과 <드 콜디스트 윈터:The Coldest Winter-데이비드 핼버스탬(David Halberstam)>는 한국전쟁의 내밀한 이면을 참전용사들의 증언을 통해 리얼하게 기록한 명저다. 핼버스탬(드 콜디스트 윈터)은 프롤로그에서 북한군의 한국남침을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 7개 사단이 3주 안에 남한 땅 전체를 점령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군사분계선을 넘어 남침을 감행했다.' 이 기록으로 북한의 남한북침 억지 주장은 허구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들의 남침야욕을 불러온 결정적 요인으로 남침 6개월 전 미 국무장관 딘. 에치슨이 '미국의 아시아 방어선에서 남한을 제외한다'는 '에치슨 선언'의 실수가 저지른 혹독한 결과였다고 적시하고 있다. 6.25 한국전쟁은 그 당시 미국인의 시각에서는 '원치 않은 전쟁'이었다. 심지어 트루먼 대통령조차 미군의 참전을 명령했음에도 기자들의 전쟁 돌입 여부 질문에 '노'라고 동문서답했다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전쟁이 끝나고 몇 년 후 에치슨은 '세계 최고의 전략가들에게 저주받은 전쟁을 치르기에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최악의 장소를 물색해 보라고 했다면 만장일치로 한국을 선택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그만큼 산악지형인 한국에서의 전쟁 수행(탱크부대의 전략적 활용도가 떨어지는 곳)이 어려웠음을 토로한 말이다. 또한 에치슨의 동료인 에버렐 해리먼은 한국전쟁을 “불쾌한 전쟁“이라고 비하했다. 미국인에게 한국전쟁은 지구 반대편 어느 작은 나라에서 벌어진 분쟁 정도로 기억조차 하기 싫은 '잊혀진 전쟁'이었다. 그것은 한국전 참전용사에 대한 무관심과 홀대로 자신들의 헌신이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한 것에 대한 울분이 그들과의 인터뷰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심지어 중공군의 참전으로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미군들 사이에서 '버티기 위해 죽어야 하나(die for tie)'라는 시니컬한 표현이 유행했다니 당시 한국전쟁에 대한 미국인들의 시각이 어떠했는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자기 동족끼리 싸우는 전쟁에 왜 미군과 연합군이 참전해 희생당해야 하는 분노였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전쟁의 피해와 희생은 너무나 컸다. 보잘것없는 산업 시설과 인프라의 완전파괴는 물론, 한국군과 미군을 비롯한 16개국 연합군, 북한군, 중공군, 한국 민간인 등의 사망, 부상, 실종 자수는 무려 4백만 명에 이르렀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자 수와 거의 맞먹는 수치다. 비록 휴전협정으로 3년 만에 전쟁의 포성은 멈췄지만, 한국전쟁은 승자 없는 전쟁사로 기록됐다. 미국인들에게도 잊혀 진 전쟁이었지만 지금 한국인의 기억 속에서도 점차 희미해져 가는 `잊혀 진 전쟁`으로 남아 있어 안타깝다.

 6ㆍ25 한국전쟁 발발 전날 밤의 토요일에 대한 페렌바크(이런 전쟁)기록은 유비무환을 망각한 무능한 정부가 어떻게 나라를 망치게 하는가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1950년 6월 25일 일요일 전날, `서울의 토요일 밤`은 내일 새벽 4시에 터질 끔찍한 동족상잔과는 전혀 무관한 평화로운 주말의 밤이었다. 1950년 6월 8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수도 평양에서 발간되는 신문들은 조국 통일 민주주의전선 중앙위원회의 선언문을 실었다. 중앙위원회의 목표로 발표된 이 선언문은 남과 북 전체를 아우르는 선거가 치러질 것이며, 여기서 선출된 국회의원들이 해방 5주년인 8월 15일 이전까지 국회를 구성할 것임을 공표했다. 그러나 이런 정보를 우리 정부와 미군은 사전에 입수하지 못한 채 무방비상태에 있었다. 서울 주둔 미 군사고문단(2천여 명)과 시민들은 토요일 밤의 낭만을 술집과 거리에서 한껏 즐기며 태평성대를 구가하고 있었으니 통탄을 금할 수 없다.

 휴전 후 66년이 지났지만, 북한 공산독재정권의 핵미사일 도발은 계속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남북화해 무드를 깨뜨릴까 전전긍긍하며 북한 눈치 보기에 급급한 정부는 북의 도발 행위조차 쉬쉬하면서 일본의 경제보복 대응책으로 지소미아 연장마저 폐기했다. 한미일 삼각 군사정보 핫 라인 체계의 붕괴는 우리의 안보에 심각한 위험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이미 미 주요 언론의 우려 섞인 보도와 미 당국자의 불편한 심기 표현으로 불협화음이 노정되고 있다. 자주국방을 외친지 20년이 넘었지만, 주한미군의 절대적 전쟁억지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우리 국방의 현주소다.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인지, 아님 당랑거철의 무모한 오기인지 모르겠다. 예측불허인 트럼프 대통령의 오판으로 `제2의 에치슨 선언`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우려된다. 한국전쟁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잊혀 진 전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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