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4:15 (토)
(2017 김해시의회 연수 참관기) 블라디보스톡서 느낀 "역사는 함께 형성해 내는 것"
(2017 김해시의회 연수 참관기) 블라디보스톡서 느낀 "역사는 함께 형성해 내는 것"
  • 경남매일
  • 승인 2019.08.29 19: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해시의원 하성자
김해시의원 하성자

러시아 극동 함대사령부 공존하는 항구

영원의 불꽃ㆍ솔제니친 동상 등 기념물

공산국가 이미지 희석 의도로 느껴져

전쟁 나선 모든 사병 기록한 부조벽은

방문객에게 친근감ㆍ주눅 등 주는 장치

김해 사충단 위패, 충절 자부심 있지만

민초 향병 공적 기림 없는 점은 아쉬워

지금의 역사, 일부 리더들이 만든 것 아닌

우리 모두가 동력으로 이끌어 나간 것

 2017년 여름, 사할린 탄광 노동자 강제징용 역사를 탐방하는 시의원 연수에서 블라디보스톡 견학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불라디보스톡 전체가 관광인프라인 것에서 러시아가 지닌 매력, 그 색다른 면모가 놀라웠다.

 블라디보스톡 항구 바로 옆으로 러시아 해군의 상징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극동 함대사령부가 있다. 그 정면 육상에 잠수함 `C-56`을 원형 상태로 활용한 박물관이 있으며 폐선 철로 건너편에 도크가 있다. 2차 대전 이전에 건설됐다는 폐선 철로는 과거 물류 이동 경로를 추정하게 해 줬다. 태평양 전쟁 당시 우리나라에서 온 강제징용자들이 혹사당하며 캐냈던 석탄도 이 철로를 통해 배에 실렸으리라.

 항구의 규모는 대형 크루즈, 군함 등이 정박 가능한 도크 시설이라고 한다. 상선과 관광 크루즈가 드나드는 곳에 러시아 극동 함대사령부가 공존하고 잠수함을 포함한 군함도 드나든다는 점이 특별했다. 블라디보스톡 항구에 극동 함대사령부가 있다는 것은 러시아가 블라디보스톡의 지정학적 중요성을 깊이 인식하고 있다는 표징일 것이다. `영원의 불꽃`과 개선문 좌우로 전쟁 참가자의 이름이 새겨진 기념물이 배치돼 있고, 뒤편에 러시아 정교회가 있다. 극동 함대사령부 바로 앞에는 불을 켠 뒤로 단 한 번도 꺼진 적이 없다는 `영원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다.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의 동상이 눈에 들어왔다. 소비에트 연방 체제의 여러 문제점을 고발한 저항 주의 작가 솔제니친이 미국 망명 생활을 정리하고 귀국할 때 이 항구를 통해 들어왔다고 한다. 그가 귀국해 러시아 땅에 디뎠다는 그 첫발 장면을 동상으로 세워놓았다. 구소련 체제를 통렬히 비판했던 솔제니친 동상을 극동 함대사령부 앞에 설치한 것은 공산국가 구소련의 강고한 이미지를 희석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싶었다. 그러한 일련의 기념물들은 극동 함대사령부의 위압감보다 오히려 러시아 군대가 존재해야만 할 것 같은 당위성을 보여주면서도 평화 이미지로 반전시키는 듯 했고, 반체제인사 솔제니친 동상은 그 점을 상승시키는 효과를 내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군사 강국 위상을 선명히 하되 순화시키는 여러 시설물의 절묘한 배치, 극동 함대 사령부 일원을 관광과 연결한 점, 러시아의 착안이 놀라웠다.

 `영원의 불꽃` 주변으로 러시아를 위해 전쟁에 나간 사람들, 장군을 비롯해 모든 사병의 이름을 낱낱이 기록해 놓은 부조가 길게 벽을 이루며 서 있었다. 지위나 계급 상하 없이 명예로운 이름으로 기려지도록 공적을 존중해 주는 국가적 예우는 러시아가 지닌 장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한 정서를 문화적 산물로 끌어내 투영시킨 설치물들은 러시아 국민에게 전략적 선전 효과와 함께 방문객에게는 러시아가 가진 힘에 약간의 주눅을 줌과 동시에 친근감을 느끼도록 해주는 장치였다.

 국립 현충원 등 우리나라 국립묘지에 있는 무명용사비도 그러한 수평적 태도와 공정예우란 가치를 지닌다고 본다. 김해 사충단(四忠壇)에 모셔진 임란 최초의 의병 봉기로 알려진 분산성 전투를 주도하신 네 분 공신의 위패는 충절의 고장 김해의 자부심이다. 그럼에도 같이 항전했던 민초 향병들의 공적에 대한 기림이 없다는 점이 안타깝다. 공동 위패를 모시거나 공공 기념물에라도 공적을 새겨서 기려야 하지 않을까. 사충신과 함께 분산성 전투에서 몸 바쳐 싸우셨던 향병들의 공적은 숭고한 역사다. 향병들을 모시는 위패를 겸한 기념물 설치는 또 하나의 자부심이 될 것이고 이후 시민들이 국가와 사회를 위해 헌신하는 일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에 대해 새로이 인식하게 해 주는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역사는 리더만이 이루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함께 형성해 내는 것이다. 리더는 참으로 중요한 주도자지만 참여자는 더 중요한 주도자라는 인식이 시민사회에 깊숙이 자리 잡아 그것이 사회적 동력이 됨과 동시에 마침내 국력으로 기능할 것을 기대해 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