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벌러 온 외국인 아닌 제2의 조국 구성원으로 살고 싶죠
돈 벌러 온 외국인 아닌 제2의 조국 구성원으로 살고 싶죠
  • 김정련 기자
  • 승인 2019.08.29 18:1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도내 이주민 의 삶

방글라데시 샤골 씨
이주민들의 권익향상을 위해서는 현장에 있는 이주민의 목소리에 더 많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샤골.
이주민들의 권익향상을 위해서는 현장에 있는 이주민의 목소리에 더 많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샤골.


이주민 공동체의 주체적 운동 미약

정부ㆍ시 다문화 지원 사업 추진 한계

실제 이주민 참여 발언권 기회 부족

자체 조직 결성 이주 노동자 주장 펼쳐

아직 스스로 존재감 작아 아쉬워

한국인 사회운동가ㆍ종교인 목소리 더 커

장기적 관점선 권한 강화엔 부정적

일본 경제 보복 맞서 불매운동 동참



 방글라데시에서 온 이슬람 카지 시풀은 많은 사람들에게 샤골로 불린다. 벵골어로 ‘바다’라는 뜻의 샤골은 그의 할머니가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지라고 지어준 별명이다. 다소 긴 이름을 가진 벵골인들은 어릴 적부터 별명을 하나씩 가지는데 그때부터 그는 샤골로 쭉 불려왔다. 12남매 중 넷째로 태어난 샤골은 1996년 1월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에 왔다.

 방글라데시 인민공화국에서 기술전문대학교를 졸업 후 정권이 교체되면서 그는 한국에서 돈을 벌기로 결심했다. 샤골이 한국에 온 지 1년 만에 아버지는 조국에서 숨을 거뒀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그를 한국에 계속 머물 게 한 가장 큰 이유다. 8명의 동생들이 학업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경제적인 지원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부산의 한 조선업 공장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처음 3년간, 한국에서 일하는 동안 좋은 사람들만 만난 걸 정말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비자가 만료되기 얼마 전에 사장님께서 산업연수생들을 한자리에 부르시더라고요. 그러고는 더 이상 비자 연장을 해 주지 못하겠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때 당시, 한국으로 당장 돌아갈 수 없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김해의 한 공장에서 15년간 불법체류자로 근무했어요. 그러다 노무현 정권 당시 불법 체류자 자수 기간에 자진 신고 후 방글라데시로 돌아갔어요. 그 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지금은 설비업에 종사하고 있어요.”

 샤골은 김해에 거주하는 각 나라의 대표들과 함께 민간단체인 (사)김해 이주민의 집에서 도내 외국인들의 고충해결과 이주민들의 권익 향상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송골송골, 샤골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이 그동안 쌓아놨던 감정을 토해내기라도 하듯 흘렀고 그는 소매로 흐르는 땀을 훔쳐내며 말문을 열었다.

 “한국의 경우, 이주민 스스로 펼치는 공동체 차원의 운동은 미약한 것으로 보이는데요. 정부와 시는 도내 이주민들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여러 가지 사업을 추진하며 도움을 주려고 하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현장에서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는 이주민들의 목소리가 얼만큼 반영돼 있는가요? 다문화가정과 이주민을 위한 정규 정책 토론에 실제 이주민이 참여해 발언권을 가졌던 적이 얼마나 됐던가요? 이주민 없는 이주민 인권 보장을 위한 자리? 이젠 이주민도 발언권을 가져야 되지 않을까요?”

 이주민을 위한 인권 운동은 종교단체가 주도하는 경우가 많은데, 소수자의 문화가 더 조명을 받아야 하고 권리행사 운동이 더 절실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주민 인권센터에서도 실질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은 따로 있다고 샤골은 말한다.

 “다문화 지원센터나 이주민 인권 센터를 대표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인입니다. 애초에 이주민의 인권보장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지만 이주민들이 대표로 발언권을 가질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언론에 노출되거나 시나 도청에서 주관하는 행사에서 실질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최종 발언권자는 한국인이죠. 각 센터의 대표들이 이주민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여줬으면 좋겠어요. 몇 년 전 부산에 거주했을 때 한 이주민 인권 단체에서 봉사활동을 꾸준히 해왔어요. 한국에 거주한 지 10년, 20년 된 외국인들은 자신의 목소리를 잘 낼 만큼 의사소통에 전혀 무리가 없는 분들도 많아요. 그런데도 센터의 대표들에게 이주민의 목소리로 이주민 인권 보호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받지 못했어요.”

 이주노동자 운동의 경우 1990년대까지 한국인이 만든 이주노동자 지원 단체 활동이 중심이었지만 2000년대 이후는 이주노동자 자체 조직이 결성되면서 운동의 양식이 바뀌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이주민 스스로의 목소리나 존재감은 크지 않다. 한국인 사회운동가나 종교인이 소수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러한 보호적인 활동에는 한계가 있고, 장기적으로 이주민의 권한 강화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도 있다.

 샤골은 파키스탄에서의 온 이주 노동자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파키스탄에서 온 친구가 한국 국적을 받았어요. 구직활동 당시 벼룩시장 신문을 보며 한국인을 채용한다는 말에 면접을 보러 갔죠. 사장님께서 대뜸 ‘한국사람 아니면서 왜 한국사람이라고 했느냐?’고 묻더래요. 그래서 ‘귀화해서 주민등록상 한국인이다’라고 설명했더니 ‘얼굴이 외국인인데 무슨 한국인이냐’고 호통을 쳤다고 하더라고요. 이후 외국인 채용을 하는 곳으로 면접을 보러 갔더니 그곳에서는 ‘얼굴이 외국인이지만 주민등록상 한국인인데 어째서 외국인이냐’며 ‘왜 외국인 채용에 지원을 했나’고 묻더래요. 그래서 파키스탄 친구가 ‘도대체 어떻게 해야 되냐’고 답답함을 호소하더군요. 잔업이 많은 공장의 근무 특성상, 주민등록상 한국인이라면 최저임금 이외에 기타 수당 등을 누락하지 않고 지급해야 되니까 고용을 꺼려하는 거죠. 김해 내 외국인 이주민이 3만 명 정도 되는데 그중에 영주권을 받거나 귀화를 한 이주민도 상당히 많아요. 한국 시민들과 마찬가지로 주민세와 같은 세금도 내며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되고 있어요. 한국인과 다를 바 없는데 왜 외국인은 차별을 받는 건지… 한 회사에서 오래 근무를 해도 최저임금이 올라야지만 임금이 오르는 구조라 사기가 떨어지는 게 사실이에요.”

 지난 6월 19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부산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부산 지역 중소 중견기업 대표들과의 조찬간담회에 참석해 ‘외국인에게 내국인과 똑같은 임금을 지급하는 건 공정하지 않다’고 발언해 국민들의 공분을 산적이 있다.

 황 대표의 주장은 외국인에게 최저임금을 차등 적용해야 한다는 것이어서 ‘외국인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주장하는 발언’이라는 비판이 정치권과 학계에서 쏟아졌다.

 외국에서 일하는 한국인 역시 그 나라에서는 외국인 신분이다. 같은 이유를 들어 차등 임금을 적용받는다면 뭐라고 항변할 수 있을까. 외국인노동자에게 차등 임금을 적용하자는 주장은 실현 불가능해 보인다. 근로기준법 제6조 ‘사용자는 근로자에 대해 남녀의 성을 이유로 차별적 대우를 하지 못하고 국적 신앙 또는 사회적 신분을 이유로 근로조건에 대한 차별적 처우를 하지 못한다’라는 국내법을 고치기 어려울뿐더러 설사 고친다 해도 한국이 가입한 국제협약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ILO(국제노동기구) 협약 제111호(고용 및 직업상의 차별에 대한 협약)는 국적을 이유로 한 임금차별을 금지한다. 또 다른 문제는 외국인에게 차등 임금을 적용하면 오히려 내국인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점이다. 내국인의 임금보다 외국인 노동자의 임금이 낮아지면 기업으로선 내국인보다 외국인을 더 채용할 수밖에 없다. 외국인 차별이 되레 내국인 차별을 부르게 된다. 더 나아가 외국인 차별이 해외 체류 거주 한국인에 대한 차별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지난 6일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경남에 거주하는 네팔, 몽골, 미얀마, 방글라데시, 베트남, 스리랑카, 우즈베키스탄, 인도네시아, 중국, 캄보디아, 타이, 파키스탄, 필리핀 등 13개국 교민회 회장단이 일본제품 불매운동 결의를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경남에 구성된 14개국 교민회중 일본을 제외한 13개국 교민회가 일본제품 불매운동 동참을 결의했다.

 “중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 아시아 많은 나라가 20세기 초 일본에 의해 한국과 비슷한 아픔을 겪었어요. 우리 모국의 법원이 일본에 책임을 묻는 판결을 한다고 해서 일본 정부가 우리 모국에 경제 보복을 한다면 우리는 참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제2의 조국인 한국에게 일본이 경제 보복을 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어요.”

 수십만 명의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한국으로 왔다. 한국을 제2의 조국으로 섬기며 이제는 김치 없이는 밥을 먹지 못하는 식성까지 많은 이주민들이 한국문화에 스며들었다.

 “외국인들을 그저 돈 벌러 온 외국인으로만 취급할 때 가장 속상해요. 지난 2~4일 사천시 남일대해수욕장에서 각국 교민회 모임인 경남이주민연대 여름 캠프를 열었어요. 캠프에 가는 도중 일본이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했다는 소식을 들었죠. 캠프에서 긴급 대표자회의를 열고 이틀에 걸친 토론회를 통해 일본제품 불매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정했어요. 출신국가는 제각각이지만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제2의 조국인 대한민국에 대해 일본이 경제 침략을 멈출 때까지 일본제품을 사지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심한 거죠. 우리는 대한민국을 우리의 제2 조국이라고 생각해요. 외국인들이 그저 돈 벌러 한국으로 왔다는 시선은 너무 차갑고 배타적이고 때론 공격적이거든요. 하나의 공동체로 소속감을 느끼고 싶을 뿐입니다.”





이주민들의 권익향상을 위해서는 현장에 있는 이주민의 목소리에 더 많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방글라데시에서 온 샤골.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