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12월
맹추위와 빈곤 총성을 피해
죽세공의 고장 담양으로 행상을 갔다
수북면 방앗간에서 보낼 때
‘고진감래’의 함성을 들었다
비로소 용기를 얻었다
1957년 1월
여전히 가난한 몸으로
전남 화순에서 벌목공으로 일했다
함바에서 만난 사람들
모두가 ‘인생행로의 개척자’였다
광주에서 비누 행상도 했었다
돈이든 전대를 온몸에 감고
외투로 가린 채
시골 사랑방에서 또 배웠다
‘인생은 다양성의 총체’임을
지금도 함성이 들린다
<시인약력>
- '詩와 수필' 등단
- 신서정문학회 회원
- 활력성 연구소장 등
<평설>
6.25 전쟁 이후 한국의 성장기를 보면서 한노년기에 든 서정의 몫은 항시 상존한다.
가난의 굴레를 벗고 인간의 다양성에 손뼉을 치며 자신을 관조하는 일이 바로 시의 역할이다.<안태봉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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