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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기생충`에 담긴 일자리의 모순
영화 `기생충`에 담긴 일자리의 모순
  • 김용구 기자
  • 승인 2019.08.20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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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부 차장 김용구
사회부 차장 김용구

 인간의 삶에서 일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막대하다. 국가적으로 경제성장ㆍ복지증진의 근간이 될뿐더러 개인적으로는 자아실현 등을 이루는 매개체가 된다.

 초ㆍ중ㆍ고교 등 의무 교육을 거쳐 학사 과정까지 20여 년을 배움에 정진하는 것도 표면적으로는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한 과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체로 직장에서 얻는 소득이 의식주의 질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암묵적인 사회 `계급`을 나누는 지표가 되기도 한다. 단순하게 보더라도 하루 중 가장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곳이 직장이다.

 세계 3대 영화제로 꼽히는 칸에서 최고 권위인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영화 기생충은 이런 `일자리`를 소재로 한다. 안정된 직장을 통해 상류층에 진입하고 싶은 한 가족의 삶을 다루면서 일자리의 치열한 의미를 다시금 되새기게 한다.

 배우 송강호 씨가 연기한 기택의 가족은 동네 길거리가 보이는 반지하에 살고 있다. 무선 공유기조차 없는 이곳에서 와이파이를 훔쳐 쓰는 일은 일상이다. 천장에 걸린 양말은 햇빛마저 맘껏 누리지 못하는 가족의 애환을 상징한다.

 이 가족에게 미래는 없어 보인다. 네 가족 모두 제대로 된 일자리 없이 반백수 생활을 하기 때문이다. 간혹 피자 상자를 접는 단기 아르바이트에 온 가족이 매달리면서 간신히 연명하는 게 고작이다. 궁핍한 생활에서 양심과 도덕은 1순위에서 밀려난 지 오래다. 실직하거나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는 가족의 삶을 에둘러 표현한다.

 그런 가족에게도 번듯한 직장을 가질 기회가 찾아온다. 장남 기우는 명문대생 친구에게 고액 과외 자리를 소개받는다. 그러나 대학 증명서를 위조해 만든 학력은 위태롭게만 보인다. 그는 과외를 위해 글로벌 IT기업 CEO인 박 사장의 저택을 드나들면서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던 미술 과외 선생님, 운전사, 가정부 자리를 차례로 가족들에게 물려준다.

 이후에도 영화는 거짓으로 취업한 이들 가족이 상류층의 삶을 지속하기 위한 사건들을 다룬다. 기택은 거짓으로 치장해도 숨길 수 없는 하류층의 냄새에 분노해 박 사장을 죽이게 된다. 도주하던 기택이 숨은 곳은 아이러니하게도 그 집 지하실이었다. 아들 기우는 훗날 그 집을 매입해 아버지를 지하실에서 나오게 하겠다고 다짐한다.

 하지만 대학에도 진학하지 못한 기우가 좋은 일자리를 얻어 다짐을 이루기를 기대하는 관객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빈부 격차가 만들어 낸 교육의 차이가 계층 간 이동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영화에서는 가정부 자리를 놓고 하위층끼리 목숨을 걸고 싸우는 모순마저 그린다. 그러나 문광의 가족과 기택의 가족의 다툼은 불편하거나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이 없다. 일자리 경쟁이 생존이 돼 버린 현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기택의 가족이 무능력하고 쉽게 돈 벌기를 좋아하는 것처럼 묘사될 뿐 그들도 열심히 삶을 일궈왔다는 사실은 철저히 외면된다. 좋은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이 만연한 우리 사회 속에서 직장이 없는 기택의 가족은 평등하지 않은 사회 구조의 피해자이기보다 노력하지 않고 능력이 없는 가족으로 비칠 뿐이다.

 이런 관점에서 정부나 지자체의 일자리 정책은 중요하다. 양질의 일자리가 많아야 계층 간 이동이 쉬워지기 때문이다. 공정한 경쟁이 펼쳐지는 평평한 운동장도 필요하다. 또 사회적 약자가 일어설 수 있도록 평등보다 형평에 집중해야 한다. 이런 장치가 제대로 작동해 재력도, 학벌도, 권력도 없는 기우가 노력 끝에 아버지를 구할 날이 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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