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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호남 독립운동가 22명 정부서훈 추서
영호남 독립운동가 22명 정부서훈 추서
  • 이문석 기자
  • 승인 2019.08.12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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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근 선생 대통령 표창 하동군ㆍ독립연구소 포상 신청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발굴해 포상을 신청한 우용현 선생의 생전 모습.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발굴해 포상을 신청한 우용현 선생의 생전 모습.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발굴ㆍ포상 신청한 하동 출신 우용현(적량면 동산리)ㆍ정희근(금남면 대치리), 광주 출신 김정수(광산구), 전남 김필호(곡성군)ㆍ황오봉(완도군) 선생 등 영ㆍ호남 출신 독립운동가 22명이 제74주년 광복절을 맞아 정부서훈이 추서된다.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는 이번 광복절에 하동 출신 3명, 전남 출신 10명, 광주 출신 9명 등 22명이 건국훈장(2명)과 건국포장(8명), 대통령표창(12명) 등 정부포상을 받는다고 12일 밝혔다.

 정재상 경남독립운동연구소장은 지난 2009년 국가기록원에서 발굴한 광주3ㆍ1만세운동 참여자 19명과 지난해 3월 하동군과 경남독립운동연구소가 3ㆍ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군내 지역 미발굴ㆍ미포상 독립운동가 찾기 전수조사를 추진, 지난해 4월 읍ㆍ면사무소 문서고 등에서 발굴한 하동 출신 독립운동가 3명이 정부포상자에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는 하동 출신 우용현(禹鎔鉉ㆍ1901∼1942) 선생은 1931년 부산ㆍ대구 등지에서 항일 비밀결사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면서 민족해방운동을 이끌었다.

 그리고 같은 해 11월 2일 부산 목도에서 신만중(하동ㆍ건국훈장), 김유태 등과 모임을 갖고 조선독립과 항일을 내용으로 한 전단지 600매를 만들어 부산시내에 살포했다.

 이로 인해 일본경찰에 체포돼 1년 넘게 미결로 있으면서 가혹한 고문을 당하다가 1933년 소위 치안유지법 및 출판법 위반으로 진주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대통령표창을 받는 정희근(鄭禧根ㆍ1888∼?ㆍ하동군 금남면 대치리) 선생은 1919년 3월 18일 하동에서 박치화(건국훈장) 등과 대한독립선언서 일명 하동독립선언서를 제작ㆍ서명한 12인 중 한명이다.

 선생은 3월 20일 정락영(건국훈장), 이범호(건국훈장) 등과 남해장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했다. 이 같은 일로 일본경찰에 체포돼 모진 고문을 받고 평생을 고생하다 생을 마쳤다.

 대통령표창을 받는 정경식(鄭景湜ㆍ1909∼?ㆍ하동군 북천면 사평리) 선생은 1937년 일본군에 징용돼 운전병으로 중국과의 전쟁에 참전했다. 이때 일본군은 상황이 불리해지자 참혹한 만행을 저질렀고 신문 등을 이용, 여론을 조작하는 행위를 했다.

 그러자 선생은 일본 후쿠오카로 돌아와 이러한 사실을 국내ㆍ외에 전파하는 활동을 했다. 이후 일본군에 적발돼 군법에 의해 금고 6월 형을 받았다.

 윤상기 군수는 "하동지역 우용현, 정희근, 정경식 독립지사를 비롯해 이웃 전남 출신 등 22명의 독립운동가가 함께 세상에 드러나고, 100년 만에 그 공적을 인정받아 뜻깊은 광복절이다"고 말했다.

 정재상 소장은 "광주3ㆍ1독립운동가를 발굴한지 10년 만에 국가유공자로 인정받았다"며 "그동안 서훈을 위해 청와대와 국민고충처리위원회에 청원을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분들의 위국헌신이 늦게라도 인정받아 마음의 짐을 덜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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