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8:57 (토)
앙가주망과 폴리페서
앙가주망과 폴리페서
  • 이광수
  • 승인 2019.08.11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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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청와대 실세 요직을 사직하고 서울대 법학전문대 교수로 복직한 모 씨가 SNS에 올린 앙가주망(engagement) 발언이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보수진영의 타도 1순위였던 그가 사임 후 곧바로 대학에 복직한 것을 두고 폴리페서의 전형이라고 비판한 것에 대한 자기합리화의 반박이었다. 앙가주망은 지식인의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의미한다. 아는 만큼 행동하고 사상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의무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1960년대까지 프랑스에서는 자연스러운 지성적 분위기였다. 소설 `목로주점`의 저자 에밀졸라는 모럴리스트이자, 이상적 사회주의자, 진보지식인으로서 프랑스 언론사와 지성사에 한 획을 그었던 인물이다. 그는 1898년 1월 13일, `로로르(L`Aurore: 여명, 새벽)`라는 신문에 `나는 고발한다(J`accuse)`는 격문을 발표해 프랑스 지성인들을 행동으로 나서게 했다. 그의 격문 내용의 일부다. `반복하건데, 진실은 땅속에 그대로 보존되고 그 속에서 무서운 폭발력을 간직한다. 이것이 폭발하는 날 진실은 주위의 모든 것을 휩쓸어 버릴 것이다… 누가 감히 나를 법정으로 끌고 갈 것인가`(르몽드, 지식백과). 참으로 모골이 송연해지는 담대한 직언이다.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에드워드 리턴의 명문장을 연상케 한다. 이 격문은 당시 논란의 중심에 서 있던 `드레퓌스 사건(1894년 유대인 포병 대위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대사관에서 국가기밀을 넘겼다는 간첩 혐의를 받고 비공개 군법회의에서 종신형 선고를 받은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의 항거였다. 그는 이어 대통령에게 진실규명 공개서한을 보냄으로써 프랑스 지식인들의 봉기를 촉발시켰다. 그리고 끝내 권력을 정의 앞에 굴복시킨 이 사건은 진실의 승리로 끝났다. 프랑스 앙가주망의 대표주자로는 에밀졸라와 함께 노벨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소설가이자 실존주의 사상가 장 폴 사르트르와 소설가 앙드레 말로가 있다. 사르트르는 그의 철학 논문 <존재의 무>에서 `눈길을 돌리는 주관으로서의 나의 구체적 존재 방식을 나타내는 말을 앙가주망`이라고 했다. 근원적으로 자유인 인간은 그가 처해 있는 상황 속에서 온갖 어려움에 부딪히고 주위로부터 저항을 받는다. 이러한 저항에 의해 자유로운 존재로서의 출현이 가능하기 때문에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강조한 것이다(르몽드지, 지식백과).

 그는 프랑스의 알제리 전쟁과 미국의 베트남 전쟁에 대해서도 반전운동을 펼쳤다. 그러나 앙가주망은 1960년대를 지나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고 지식인의 사회참여는 저항이 아닌 학문연구 본연의 자세로 돌아갔지만 `폴리페서`라는 괴물을 낳았다. 이번 모 교수의 앙가주망 발언 파문도 본래의 의미를 왜곡한 자기합리화의 변명으로 들렸기 때문에 비난을 산 것이다. 서울대 교수로 관계에 입문한 분들 중 교수직을 사임한 분들이 휴직한 분들보다 많은 것은 학자적 양심에 반한 행동으로 폴리페서라는 오명을 남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앙가주망이 정치 권력 지향적 폴리페시즘으로 변질된 것은 한국의 386세대가 주축이 된 진보성향교수와 사회주의 노동운동가들의 정치참여로 현실화 됐다. 그들은 1970~90년대로 이어지는 개발독재에 강하게 저항하면서 대학가를 독재 체재 전복을 위한 아지트로 삼았다. 그리고 민주화의 거센 파도를 타고 권력 상층부 진입에 성공했다. 그러나 프랑스적 톨레랑스(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이견에 대해 상대방을 먼저 인정함으로써 차이를 존중하는 것)가 정착되지 않은 한국 사회에서 앙가주망에 대한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구제도)의 반발은 그들만의 리그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강한 거부감으로 나타났다. 촛불시위가 시민적 앙가주망이었다면, 태극기 시위는 앙시앙 레짐의 저항이다. 남북이 분단된 상황에서 지정학적으로 미ㆍ중ㆍ소ㆍ일 강대국의 틈새에 낀 한국은 이데올로기 논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참여 학자들이 주장하는 앙가주망은 앙시앙 레짐 수호자들에겐 폴리페시즘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한국이 처한 현 상황으로 볼 때, 반세기 전 프랑스 지성들이 주창했던 앙가주망 논리로 자기 처신을 강변하는 것은 시대착오적 나르시시즘(자기애)에 불과할 따름이다. 그것은 현 정부의 대내외정책을 두고 내로남불의 극치라고 공격하는 보수진영의 인식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나르시시즘적 앙가주망을 학제적 연구 작업의 실천으로 강변하는 자기합리화는 앙가주망의 시대정신을 왜곡하는 아전인수식 변명일 뿐이다. 이런 와중에 소문대로 법무부 장관에 내정됐지만, 서울대생들이 한 달간 실시하는 서울대 동문 최악 순위투표에서 압도적 1위(82%)로 올라 있다. 이번엔 사표를 내고 진정한 앙가주망 실천자가 될 것인지, 저번처럼 휴직 처리로 자기변명에 급급할 것인지 두고 볼 일이다.

 지금 우리나라가 처한 상황은 매우 엄중하다.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설정에 균형감각을 상실하면 한순간에 나라의 운명은 단애 끝으로 곤두박질칠 것이다. 포플리즘과 프로파간다를 앞세운 근시안적 역사관으로 권력 유지에만 급급한다면 감당하기 힘든 국가적 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낡은 국수주의적 민족주의 남발과 선전ㆍ선동으로 민심을 호도하다가는 천신만고 끝에 이룩한 경제발전과 민주주의는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사라진다는 것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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