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속에 갖힌 정치인의 기억법
프레임 속에 갖힌 정치인의 기억법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08.08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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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 프레임이 아직 힘을 쓰는 시점에서 여야는

자신들의 정치 기억법을 떠올려봐야 한다.


'기억을 지키려 하면 할수록 기억은 더 달아난다'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상대에게

복수의 칼을 들고 싶어도 알츠하이머를 앓는 병수의 기억은 옅어졌다.

김영하의 `살인자의 기억법`이 소설에 이어 2017년 영화로 나와 많은 사람이 긴장과 반전을 즐겼다. 영화 줄거리를 보면 과거 연쇄 살인자였던 병수는 알츠하이머에 걸려 기억을 잃어간다. 살인의 도사가 접촉 사고로 태주를 만나게 된다. 선수끼리는 대번에 알아보는 법. 병수는 딸 은희를 지키려고 태주를 죽이려는 계획을 짠다. 병수는 딸을 보호하려고 기억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쓴다. 후반부에 여러 반전이 있다. 병수는 혼자 태주를 잡기 위해 노력을 하지만 과거의 습관이 되살아나 실제와 망상 사이에서 혼란을 겪는다. 살인자의 기억은 끝에는 자신마저도 의심하게 만든다. 기억을 지키려 하면 할수록 기억은 더 달아난다.

 정권이 바뀌면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의 장이 항상 열린다. 여당은 전 정권의 적폐를 들춰내 바른 정치를 세우는 명분을 삼고, 야당은 과거를 들춰 애꿎은 사람을 잡는 보복 정치라고 날을 세운다. 적폐와 보복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고도의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기 때문에 칼을 쥔 쪽이나 방패를 든 쪽이나 피할 수 없는 한판이다. 문재인 정부가 적폐 청산을 내세워 칼을 휘두르는 장면은 어떤 정권에서도 봤던 재판일 수도 있는데, 이번 적폐 영화는 너무 길다. 아무리 내용이 알차도 끝 모르고 진행되는 영화는 관객에게 하품만 준다. 여당은 이명박 정부를 사찰 공화국, 댓글 공화국이라고 몰아붙였다. 여당과 정부는 벌써 비슷한 공세를 받고 있다. 어쩌면 예외 없이 모든 정권이 비슷한 정치 행위를 한다. 앞으로 정권이 바뀌면 다시 한풀이 칼이 춤추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없다.

 청산과 보복이라는 프레임 싸움을 하다 보면 본질은 날아가고 이슈 선점에 집중하는 경우가 잦다. 양측은 프레임 싸움을 주도하기 위해 온갖 논리를 갖다 붙여 상대를 꺾으려 한다. 프레임 싸움은 옳고 그름을 분간하기 모호하기 때문에 목소리가 크면 정의로운 사도로 비친다. 그래서 사생결단식 싸움이 벌어진다. 프레임 싸움에서는 힘 있는 여당이 절대적으로 유리하다. 지금 형성된 반일 프레임은 당연히 여당에 힘이 된다. 사람 사이에서 나오는 얘기이지만 여당은 이 프레임을 내년 총선까지 가져갈 게 뻔하다. 정치적인 감각이 있는 사람은 내년 총선의 승패는 거의 정해졌다는 말까지 한다.

 정치판에서 복수자의 기억법은 단순하면서 상대를 오직 죽이는데 매몰되기 십상이다. 복수자는 칼을 정의의 이름으로 들지만, 칼끝에 한이 맺혀 있기 때문에 막무가내식이 될 수 있다. 연쇄살인범의 기억이 딸을 살리기 위해 태주를 죽이는 데 집중하듯이 복수자의 칼은 상대를 정확히 겨룬다. 거기에 자비나 망설임이 없다. 복수자는 거대한 프레임 싸움에서 자신을 정의의 기사로만 여긴다. 병수가 딸이 이미 죽고 없었는데도 요양보호사를 딸로 여겼듯이 나중에 희한한 반전이 기다릴 수도 있다. 죽이려던 태주가 형사라는 결말에서 한 번 더 반전이 뇌리를 때린다.

 적폐 청산과 정치 보복 프레임이 아직 힘을 쓰는 시점에서 여야는 자신들의 정치 기억법을 떠올려봐야 한다. `기억을 지키려 하면 할수록 기억은 더 달아난다`는 살인자의 기억법에서 상대에게 복수의 칼을 들고 싶어도 알츠하이머를 앓는 병수의 기억은 옅어졌다. 정치인의 기억법이 이러해야 한다. 자신의 힘으로 안 되면 `병`이 주는 힘으로 기억을 털어내야 한다. 청산과 보복의 프레임에 끼워 넣는 또 다른 프레임은 살인자의 기억법을 따라야 한다. 프레임으로 일어서면 언젠가 프레임 때문에 무너진다.

 `살인자의 기억법`에는 놀라운 반전이 있다. 병수는 망상 속에서 착각을 했을 뿐 모든 사건을 자신이 저질렀다. 살인자의 기억이 모두 거짓이었다는 충격적인 반전에 많은 관객이 짜릿한 전율을 막판에 느꼈다. 정치인들도 자신의 기억법이 거대한 프레임 속에서 자신을 속일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치인의 기억법이 `교과서`대로 돌아오는 날이 올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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