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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의제 강간 논의 필요하다
미성년자 의제 강간 논의 필요하다
  • 어태희 기자
  • 승인 2019.08.08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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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자치부 기자 어태희
지방자치부 기자 어태희

미성년자에게 뻗쳐오는 검은 손

정신적 미성숙 사회가 지켜줘야

고등학교 1학년 때 가깝게 지내던 급우 A가 있었다. 하얀 피부에 단정한 이목구비가 예쁜 여학생이었다. 그러다 돌연 2학기가 되자 학교에 나오지 않더니 결국 자퇴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A와 연락이 닿은 것은 그로부터 1년 뒤 2학년이 되고 나서였다. A는 연락하는 친구가 없어 외롭다며 먼저 문자를 해왔고 나는 주말을 잡아 그녀를 만났다. 예쁜 얼굴은 그대로였지만 눈 밑이 퀭하고 언제나 맑았던 표정이 어두워져 있었다. 그녀는 최근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계속 집착을 받아 힘들다고 얘기했다. 집 앞에 찾아와 예전에 줬던 콘돔의 개수를 센다고. 남자친구는 30살이었다.

 최근 미혼 여교사가 자신이 근무하는 중학교에서 제자인 남학생과 성관계를 맺어 파문이 일고 있다. 그러나 교사와 학생은 `서로 좋아하는 관계였다`는 입장을 밝혔다. 학교 측은 관련 수사 의뢰를 했으나 경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강압적인 성관계가 아닌 합의된 관계였을 뿐만 아니라 학생은 만 13세 이상이기 때문에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 또한 적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형법 제305조에 의하면 만 13세 미만 청소년을 간음ㆍ추행할 경우 동의 여부와 관계없이 강간과 강제추행 등의 혐의로 처벌이 가능하다. 합의로 성관계를 했더라도 만 13세 미만 미성년자의 성적 자기 결정권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를 범죄 행위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13세가 넘은 미성년자가 대상인 경우 성폭력 정황이 없는 합의된 성관계는 처벌하지 않고 있다.

 이런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의 연령을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2012년 국회에서 적용 나이를 만 16세 미만으로 올리자는 형법 개정안이 발의됐지만, 과잉 처벌과 국가의 통제 우려 등의 이유로 통과되지 않았다.

 다시 과거로 돌아가자면, A는 30살의 남자친구가 `차도 있고, 돈도 많고, 생각이 깊고 어른스러워서` 좋아했다고 얘기했다. 어른이 미성년자보다 어른스럽고 사고가 넓은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데 A는 그것이 또래 남성을 넘어선 큰 매력과 장점으로 여겼다. `어른의 연애를 하는 걸까`라고 생각했지만, 왠지 모를 찝찝함이 있었다. 나는 좀 더 나이가 들어서야 그 찝찝함의 이유를 알게 됐다.

 친구들과 모임을 가지자면 서로의 과거 연애 얘기를 안주 삼는다. 개중 20대 초반에 나이가 많은 남성을 만났던 친구들은 "내가 왜 만났을까"라고 웃으며 회고한다. 그 남성을 만났던 이유는 A와 비슷하다. 서로 좋아서 만났겠지만, 이에 관한 판단의 개인의 몫이다. 그러나 "나는 성숙하지 못했다"는 말에 친구들은 너도나도 고개를 끄덕인다. 갓 `미자`를 땐 성인도 성숙하지 못했다 판단하는데 미성년자는 어떨까.

 어른은 미성년자를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미성년자를 사랑하게 되는 것도 통념상 이해할 수 없으나 감정의 불가항력이라 치자, 성인으로서 아직 성숙하지 못한 미성년자를 유혹해 관계를 맺는 것은 그루밍(길들이기) 성범죄에 지나지 않는다.

 OECD 국가 중 의제 강간 최저 연령 기준을 만 13세로 하는 나라는 한국과 일본 두 나라뿐이며, 두 나라보다 낮은 나라는 스페인(만 12세)이 유일하다. 영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포르투갈, 핀란드 등 다수의 국가가 만 16세를 기준으로 하고 있다.

 `개방된 선진국`이라는 인식이 강한 미국 또한 미성년자에 한해선 `성적 선택권`을 주지 않는다. 미성년자는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주마다 의제 강간 관련 규정도 제각각이지만 대체로 만 16세를 기준으로 한다. 또한 연령 차이가 4살 이상이어야 처벌한다고 규정하는 경우도 있고, 그런 것이 없는 경우도 있다. `배우자`인 경우를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기도 하는데 똑같은 미성년자와의 관계라도 `혼인상`은 가능하지만 `혼외`는 가혹하게 처벌한다.

 `미성년자 의제 강간죄`의 연령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개인의 양심과 도덕에만 맡기기에는 어른으로서의 의무를 행하지 않는 파렴치한들이 사회에 너무도 많다. 그들이 적어도 진정한 성의 소중함과 책임이라는 것을 알기 전까지 `성적 선택권`은 사회가 잠시 맡아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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