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9:46 (금)
광장에서 부는 바람
광장에서 부는 바람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08.07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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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사람들 손에 들린 광장의 촛불은 모든 곳을 비춰야

하는데 의도된 한쪽을 향해 빛은 내는 경우가 있다.

광장의 힘이 자주 왜곡 된다.

너른 광장의 힘을 업고 특정 정치권이 이득을 보려고 한다.

 최인훈 소설 `광장`을 읽으면 광복 이후 남북 분단에 따른 이념의 분열상을 알 수 있다. 주인공 이명준은 생각에만 있던 남북 문제가 현실로 다가오자 북한을 택한다. 하지만 북한은 그에게 한정된 의미만을 던진다. 그는 결국 남도 북도 아닌 중립국을 택한다. 이명준에게 진정한 삶의 광장은 남도 북도 아니었다. 포로송환위원회 앞에 서서 제3 세계를 택한 그는 비극적 종말을 몸으로 부여잡는다. 새로운 삶을 꿈꾸면서 인도로 가는 배에서 결국 떨어져 죽는다. 그는 남과 북이 그의 삶에 광장이 돼 주지 못한 배신감을 안고 깊은 물 속으로 추락했으리다.

 많은 사람은 `광장`에서 자신의 생각을 행동으로 분출한다. 우리는 거대한 광장에서 촛불이 일사불란하게 춤을 추면서 대통령이 물러나는 거대한 장면을 봤다.

 광장에는 하나의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엄청난 사람들이 모인다. 우리는 국회의원 300명의 정치 소리보다 광장의 거친 소리가 훨씬 더 힘이 있다는 사실을 자주 목격했다. 광장의 소리를 잘 조정하면 정치적 목적을 이룰 수 있다는 정치적 전략은 교과서에 나와도 이상할 게 없다. 한국 현대사는 상식을 초월하는 일이 자주 일어나 옳고 그름을 제대로 알 수가 없다. 우리나라 정치 시계가 거꾸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또다시 광장에 거대한 목소리가 메아리치고 있다. `반일 목소리`가 자발적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찮은 구석이 많다. 의도됐거나 기획된 냄새가 난다.

 지금 광장의 소리를 의식한 정치권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광장의 소리가 향하는 쪽으로 정치권의 판세가 춤출지도 모른다. 정치권은 제 목소리를 내다가도 광장 소리에 따라 한 줄로 서듯이 움직인다. 웬만한 정치적 소신은 광장의 소리에 묻힐 수밖에 없고, 광장의 소리에 역행하다 역풍을 맞기 일쑤다. 광장에서 촛불이 작게 불탈 땐 정치력을 보이는 듯하다, 촛불이 활활 타오를 땐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정치권은 일단 살고 보자는 심사를 드러난다. 문재인 대통령은 한국 역사에 죄를 지은 일본을 두고 정치적 해결보다는 빚을 갚아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은 빚을 다 갚았다고 하는데도 계속 내놓으라고 한다. 광장에서 부는 반일의 바람이 제때 불어줘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조치 관련 해법으로 `남북 평화경제`를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 수출 규제를 겪으면서 "남ㆍ북 간의 경제협력으로 평화경제가 실현된다면, 우리는 단숨에 일본경제의 우위를 따라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자고 일어나면 발사체를 바다에 쏘면서 남한에 대고 으름장을 놓고 있는데 문 대통령은 평화경제로 애정을 구하고 있는 모양새다.

 사람들 손에 들린 광장의 촛불은 모든 곳을 비춰야 하는데 의도된 한쪽을 향해 빛은 내는 경우가 있다. 광장의 힘이 자주 왜곡된다. 너른 광장의 힘을 업고 특정 정치권이 이득을 보려고 한다. 광장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정치인은 드물다. 광장에서 자신 쪽으로 힘을 몰아주면 그뿐이다. 한국 정치가 거대한 프레임 싸움에 다시 들어갔다.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싸움에서 이기려면 한쪽이 상대를 덮어씌워 앞을 못 보게 하면 된다. 광장의 소리를 잘 타는 쪽이 이긴다. 보수와 진보가 앉아서 토론을 하면 공감하는 영역은 하나도 없어 서로 괴물을 마주 보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우리나라 현재 정치 프레임 싸움에서 진보가 훨씬 힘을 쓰고 있다. 광장의 소리를 활용하는 데 능숙하기 때문이다

 진보가 득세한 우리나라 정치에서 광장의 소리는 여전히 유효하다. 문재인 정부는 광장의 촛불에서 권력이 탄생했다고 스스로 이야기한다. 현재의 역사는 현재 힘을 가진 자가 만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소리가 끼어들 틈이 없다. 광장에서 촉발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현대 한국사의 큰 사건이다. 대통령을 탄핵시킨 촛불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다고 해도 토를 달 사람이 없다. 광장의 소리가 우리 사회에서 만들어내는 폐해도 만만찮다. 광장의 소리가 만든 기득권의 나쁜 그림자가 너울거린다.

 광장의 주인공 이명준은 아버지가 빨갱이라는 이유로 경찰서에 들락날락하다 밀실만 충만하고 광장은 죽어버린 남한에 구토를 느낀다. 월북한 북한에도 진정한 광장은 없었다. 현재 우리 사회에도 진정한 광장은 없다. 이게 오랜 세월 이어온 우리나라의 비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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