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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뱃속 시한폭탄 `대동맥류`…일찍 찾는 게 가장 중요
[기획/특집]뱃속 시한폭탄 `대동맥류`…일찍 찾는 게 가장 중요
  • 연합뉴스
  • 승인 2019.08.04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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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지기 직전까지 별다른 증상 없고 터진 후에는 80%가량 사망 이르러
미리 발견하면 치료 성공률 높아 증상 없다고 치료 거부하면 안돼
상행대동맥에 발생한 대동맥류(좌), 대동맥궁에 발생한 대동맥류(중), 복부대동맥류(우).
상행대동맥에 발생한 대동맥류(좌), 대동맥궁에 발생한 대동맥류(중), 복부대동맥류(우).

몇 개월 전 70대 남성 A 씨가 극심한 복부 통증을 호소하며 쓰러졌다. 가까운 병원으로 옮겨진 A 씨는 복부대동맥류 파열로 응급 수술이 필요하다는 진단에 따라 분당서울대병원으로 가는 구급차를 타야 했다. 하지만 이 환자는 병원으로 가던 도중 의식을 잃었고, 곧이어 심정지가 발생했다. 구급차에서 심폐소생술이 이어졌지만, A 씨는 수술조차 못 한 채 숨을 거두고 말았다.

 안타까운 상황이지만, A 씨처럼 이미 복부대동맥류가 파열된 환자의 절반은 병원에 도착하기도 전에 숨을 거둔다. 이 병이 더 고약한 것은 파열 직전까지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삶을 정리할 기회마저 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동맥은 심장의 좌심실로부터 우리 몸 전체로 혈액을 보내주는 가장 큰 혈관이다. 이 혈관이 약해지거나 노화가 진행되면 일부분이 늘어나는데, 보통 정상 혈관의 지름보다 50% 이상 늘어났을 때 대동맥류로 진단한다. 대동맥류는 대동맥 전체에 발생할 수 있는데, 흉부대동맥보다 복부대동맥에 상대적으로 더 자주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복부대동맥은 배, 골반, 다리로 피를 보내는 혈관을 말한다. 파열되면 사망률이 80% 이상이기 때문에 흔히 `뱃속의 시한폭탄`으로 비유된다. 따라서 이 질환을 담당하는 의료진도 늘 초를 다투는 응급상황과 마주한다.

흉부대동맥류에 대한 중재적 시술(스텐트그라프트 삽입술).
흉부대동맥류에 대한 중재적 시술(스텐트그라프트 삽입술).

 대동맥류의 가장 흔한 원인은 동맥경화다. 고혈압, 당뇨, 고지혈증, 흡연 등으로 동맥경화가 진행되면서 혈관 벽이 점차 약해지면 결국 압력을 이기지 못해 늘어나게 되고, 한 번 늘어난 혈관 벽은 점점 더 가속하는 경향이 있다. 동맥경화로 인한 대동맥류 외에도 대동맥박리(대동맥 내막 파열로 혈관 벽의 일부가 찢어지는 질환) 과거력이 있거나 뼈, 근육, 심장과 심혈관계의 이상 발육을 유발하는 선천성 유전질환인 `말판증후군`을 가진 경우에도 대동맥류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대동맥류가 무서운 이유는 혈관이 터지기 전까지 아무런 증상을 유발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대동맥궁(상행 대동맥과 하행대동맥 사이에 있는 활 모양의 부분)에 발생하는 대동맥류의 경우에는 성대 신경을 압박해 쉰 목소리, 사레 걸림 등 증상이 발생할 수 있다. 드물게는 삼킴 곤란이나 호흡곤란이 생기기도 한다. 또, 상행 대동맥류의 경우 상반신으로 혈액을 모으는 상대정맥을 압박해 얼굴 및 팔에 부종이 나타날 수 있다. 복부 대동맥류의 경우는 누워있는 상태에서 배에 손을 갖다 댔을 때 두근거리는 덩어리(박동성 종괴)가 만져지면 질환을 의심할 수 있다. 하지만, 누차 언급했듯이 대동맥류는 파열되기 직전까지 대부분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건강검진을 통해서 또는 우연히 시행한 CT나 초음파 검사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대다수다.

 대동맥류가 진행해 혈관이 계속 늘어나게 되면 결국 터지게 되는데, 이를 대동맥류 파열이라고 한다. 파열된 대동맥류는 사망률이 매우 높기 때문에 파열되기 전에 치료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동맥류의 대표적인 치료 방법은 인조혈관 치환술과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술이다. 발생 위치와 해부학적 구조, 나이 등 전신상태에 따라 치료법이 달리 적용된다. 인조혈관 치환술은 늘어난 대동맥을 제거한 후 인조혈관으로 바꿔주는 치료법으로, 근본적인 치료가 가능하지만, 절개 부위가 넓어 고령 환자들에게는 적용하기 어려울 수 있다. 수술 후 약 1주일간의 입원 기간이 필요하고, 일상생활 복귀가 상대적으로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최근 들어 자주 시행되고 있는 중재적 시술은 `스텐트 그라프트`라고 하는 인조혈관을 대동맥류 내부에 끼워 넣어 정상적인 혈류의 흐름을 유지하고 대동맥류에 전해지는 압력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다. 이 시술은 서혜부(아랫배와 접한 대퇴부의 주변)를 아주 작게 절개해 시행하는데, 수술 시간과 입원 시간을 줄이고 수술 후 통증을 감소시킬 수 있는 게 장점이다. 하지만, CT나 초음파 등으로 평생 추적관찰 해야 하는 단점도 있다. 또 해부학적 구조가 시술에 적합해야 하므로 모든 환자에게 적용하기도 어렵다.

 요즘은 이런 수술과 시술의 장점을 더한 이른바 `하이브리드` 수술도 이뤄지고 있다. 하이브리드 수술은 흉부대동맥류의 경우, 스텐트 그라프트 삽입만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한 해부학적 구조를 가질 때 시행한다. 목 부분을 작게 절개한 다음 경동맥과 쇄골하동맥 우회수술과 중재적 시술을 동시에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재항 교수.
이재항 교수.

 복부대동맥류 환자에게는 장골동맥이나 대퇴동맥의 우회술을 시행하면서 중재적 시술을 동시에 진행하기도 한다. 이런 하이브리드 수술은 최소한의 상처와 통증으로 대동맥류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하이브리드 수술실은 일반 수술실처럼 무균상태를 유지하며, 고해상도의 투시 장비와 중재 시술에 필요한 기구들이 완벽히 갖춰져 있어 더욱 정교하고 빈틈없는 시술을 가능하게 한다. 대동맥류를 완벽하게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다만, 대동맥류는 동맥경화와 관련된 대표적인 혈관 질환인 만큼 평소 혈압, 콜레스테롤, 당뇨병을 적극적으로 조절하려 노력해야 한다. 금연과 꾸준한 운동도 꼭 필요하다. 만약 가족 중 돌연사로 목숨을 잃은 사람이 있다면 건강검진을 통해 대동맥류 존재 여부를 검사하는 것도 중요하다. 안타까운 건 대동맥류 자체가 증상을 유발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기 때문에, 진단 후에도 그 중증도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거나 수술에 대한 두려움으로 치료받기를 거부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수술치료 성적도 매우 향상됐을 뿐 아니라, 고령의 환자에게도 스텐트 그라프트를 이용한 중재적 시술 및 하이브리드 수술이 가능하기 때문에 대동맥류 진단을 받았다면 즉시 심장혈관 전문의와 상담하고, 바람직한 치료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재항 교수는 2004년 고려대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흉부외과학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분당서울대병원 흉부외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성인심혈관외과, 대동맥ㆍ말초혈관 수술 및 중재시술, 하이브리드 수술을 주 진료분야로 맡고 있다. 대한중재혈관외과학회 학술이사를 역임했으며, 대한흉부심장혈관외과학회 고시위원 및 교육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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