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20:49 (목)
오만과 편견
오만과 편견
  • 이광수
  • 승인 2019.08.04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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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영국의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출세작 `오만과 편견`은 소설로서 명작의 반열에 올랐지만, 영화로도 제작돼 공전의 히트를 쳤다. 이 소설의 두 주인공 엘리자베스(여)와 다아시(남)는 영국 귀족 가문 출신이지만 그녀는 몰락한 귀족의 딸이고 그는 재력 있는 귀족 가문의 아들이다. 다아시의 차가운 외모와 행동에서 거부감을 느낀 엘리자베스는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오는 열등감으로 그에 대한 편견을 갖게 된다. 이로 인해 둘 사이의 로맨스는 성사 불가능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양 가문을 상호방문하며 교우하는 과정에서 배려심 많고 진솔한 다아시의 행동을 통해 그동안 그에 대해 가졌던 편견이 해소돼 두 사람의 로맨스는 해피엔딩으로 결실을 맺는다. 2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오만과 편견`이 전 세계 수많은 독자의 사랑을 받아온 것은 로맨스가 돈으로 옥죄는 현실을 벗어날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일은 원제인 프라이드(pride)를 오만으로 번역한 오류이다. 프라이드는 긍정적 의미의 자신감, 자긍심, 자부심이고, 오만은 호티니스(haughtiness)로 교만, 건방짐, 거만함 같은 부정적 의미가 강하다. 소설 내용으로 봐도 다아시는 오만하지는 않다.

 로맨스에 얽힌 `오만과 편견`과 함께 이 세상에는 고정관념과 관습, 전통, 도덕률에 의해 굳어진 작위적 편견으로 차별받고 고통받는 일이 무수히 많다. 톰 행크스가 에이즈환자로 열연한 영화 `필라델피아`는 20여 년 전 극에 달했던 에이즈 공포의 실상을 리얼하게 고발하고 있다. 잘 나가는 전도유망한 동성애자 변호사 엔드류(톰 행크스 분)는 에이즈에 감염되고 만다. 유명 로펌에 발탁돼 능력을 발휘했지만,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숨겼다는 이유로 해고된다. 이에 분개한 그는 해고의 부당성을 가리기 위해 변론을 맡은 조(댄젤 워싱턴 분)와 함께 피 말리는 법정투쟁을 벌린 끝에 승소하지만, 자신은 끝내 에이즈로 죽고 만다. 영화 `필라델피아`는 사람으로부터 외면받고 무시당하는 성 소수자와 에이즈 환자에 대한 편견을 깨드리는 큰 계기가 됐다. 지금 에이즈는 암 환자 같은 정도의 질병으로 인식되고 있다. 성 접촉과 수혈로만 감염되는 질병을 마치 옛날 양성나환자처럼 악수만 해도 전염되는 몹쓸 병으로 여겼으니 에이즈에 대한 편견이 얼마나 심했는지 알 수 있다. 나병 역시 내가 어린 시절엔 문둥병이라며 환자 곁에만 가도 옮는 천형으로 여겼다. 그러나 음성나환자는 성 접촉이나 신체접촉으로는 감염되지 않는 만성질환이다. 결핵은 어떤가. 영양 상태가 부실했던 보릿고개 시절엔 흔하게 발생했던 호흡기계통 전염병이다. 이 병 역시 소모, 소비(consumption)라는 병명처럼 아이나, 파스, 스트렙토마이신 같은 항생제를 꾸준히 투여하면 1년 이내에 완치되는 전염병이다.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환자가 계속 발생하고 있지만, 치료 중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이처럼 편견은 우리의 일상적인 삶 속에서 무수히 존재하며 인간관계와 사회갈등의 주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편견의 상담학적 정의(bias)는 `사회적으로 학습돼 객관적이거나 충분한 근거 또는 증거 없이 어떤 사람이나 사물에 대해 미리 가지고 있는 견해`이다. 심리학적 정의(prejudice)는 `특정 집단에 대해서 한쪽으로 치우친 의견이나 견해를 가지는 태도`이다. 둘 다 비슷한 개념이다. `오만과 편견`은 인간관계에 불협화음을 유발하는 근원으로 작용한다. 사람을 겉모습만 보고 무시하거나 하대하는 태도, 일시적 잘못이나 실수로 범죄자가 된 사람에 낙인 하는 주홍 글씨. 신체적 약자(선천적 후천적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멸시, 각종 혐오 시설이나 약자 보호시설 설치를 반대하는 님비현상, 약자인 을에 대한 강자의 갑질 횡포, 여성에 대한 전통적 고정관념에 의한 성적 차별대우,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적대감 표출, 정치이념이 다른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거부감과 반대를 위한 반대, 사회 엘리트계층의 오만한 특권 의식, 내가 믿는 종교와 다른 신앙인을 무조건 매도하는 사이비 종교관, 우리보다 못사는 나라 출신의 다문화 가정에 대한 멸시와 차별대우 등. 이 세상은 온갖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가득 차 있다. 요즘 흔히 말하는 `내로남불` 역시 오만과 편견의 전형이다. 왜 내가 하면 로맨스고 남이 하면 불륜인가. 이 모든 것은 `오만과 편견`이 낳은 자기합리화의 아이러니다.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하고, 죄짓고, 내 탓이 아닌 남의 탓으로도 장애인이 되는 세상이다. 술 못 마시는 사람은 꽉 막힌, 대화하기 힘든 사람일 거라는 선입견, 노인은 모두 꼰대고, 젊은이들은 예의범절 없는 무뢰한 이라는 세대 간의 인식 차이,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는 하지만 이조 5백 년 동안 굳어져 내면화된 사농공상의 차별적 직업관은 엄존하고 있다.

 오만이 낳은 편견과 고정관념에 대한 부작용은 눈에 보이지 않는 차별의식으로 사회 곳곳에 독버섯처럼 도사리고 있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는 배려와 관용의 사회 기풍 진작은 역지사지하는 자기성찰 없이는 치유 불가능한 고질병이다. 점증하는 사회갈등 해소를 위해 `오만과 편견`에 대한 인식 전환과 시민 공감대 형성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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