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08:15 (금)
저녁 산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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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은 종
  • 승인 2019.08.01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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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종 독서치료 프로그램 개발 독서지도, 심리 상담사
은 종 독서치료 프로그램 개발 독서지도, 심리 상담사

재난으로 명명될 만큼 폭염이 쉬 누그러지지 않는다. 산천초목을 달구었던 태양의 열기는 밤중까지 이어져 집안에서만 있는 것도 고역인지 해가 떨어지기를 기다려 공원으로 산보하러 나오는 사람들로 붐빈다. 학교 운동장 트랙을 몇 바퀴 도는 것도 좋지만 산 가까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다. 호숫가를 돌다 보면 밤의 정경들을 만끽할 수 있다. 간간이 소쩍새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 발걸음 속도를 늦추게 된다. 무슨 말 전하려고 저리도 애달픈 소리를 낼까? 귀 기울이다가도 난데없는 비행기의 굉음에 놀라 멈추고 만다. 상공을 조금만 더 높이 날아가 주기를 바라지만 그들도 그들의 길을 따라가고 있는데 간섭할 수 없는 일이다. 아쉬움을 토로하듯 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도 달빛 둘레로 산보를 하고 있다. 어린 별들은 조금 더 큰 별의 손을 잡고 총총히 걸어가는 모습을 보자니 우리는 모두 걷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인가 생각이 든다.

이미 물속으로 발 뻗고 있는 가로등 불빛의 반짝임은 호수 안 개구리들이 부르는 합창 소리의 볼륨을 조절하는 계기판 같다. 그 속에는 은은하게 제 몸을 밀어 올려 물결 위, 원앙새들의 걸음에 등불을 비추고 있는 몇 송이의 연꽃들, 선행을 베풀려고 피어난 아름다운 자원봉사자들이다. 온종일 더위에, 일과 업무에 쫓기다 자연과 호흡을 맞추며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다양하다. 친구와 산보하듯 천천히 걷는 사람, 짧은 옷차림으로 땅과 다투듯 열심히 뛰는 사람, 애완견을 앞세우고 이어폰 음악에 매달린 사람, 휴대폰으로 대화하며 걷는 사람, 저마다 하루의 시간을 마무리하는 모습들이 살아있음으로 취할 수 있는 동작들이다.

한편 저기 한 모퉁이, 휠체어에 몸을 싣고 하염없이 호수를 바라보는 노인도 눈에 띈다. 튼튼한 두 다리에 의지해 왔던 지난날을 회상하는지 물속을 바라보는 노인의 시선이 어둑해지는 시간만큼 깊고 서글프다. 그도 한때는 지구 한 바퀴를 돌만큼 건강한 육체였을 것이다. 이제 날개를 잠시 접고 이슥한 밤의 정점으로 기울고 있는 노구가 세월 앞에 숙연해지는 듯 보인다.

‘걸어서 지구 세 바퀴 반’의 저자 한비야의 자전적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눈을 뜨면 걸어야 하는 우리의 삶을, 살기 위해서 걷고 걷기 위해 살아가는 존재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하루 걷기 권장량을 보통 1만 보라고 한다. 이는 체내에 쌓이는 여분의 에너지 300kcal를 모두 소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바야흐로 100세 시대, 새끼손가락 걸듯 건강이 우리의 앞날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살아있을 동안에 자연이 주는 선물을 마음껏 받아 누리고 싶다. 오늘도 걸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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