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10:30 (금)
다시 불붙은 `역사 프레임 싸움`
다시 불붙은 `역사 프레임 싸움`
  • 류한열 기자
  • 승인 2019.08.01 2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편집국장 류한열
편집국장 류한열

프레임 싸움은 역사의

물줄기를 단번에 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이다.

지금은 반일 프레임이

대세다. 반일 감정이 모든

분야에서 솟아오른다. 자고

일어나면 반일 감정이

한 뼘씩 더 자란

기분이 든다.

 역사를 만드는 작은 사건은 필연과 우연으로 엮어진다. 역사의 물줄기를 바꾼 거대한 사건에도 사건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당위성에 예측하지 못한 우연성이 뒤섞여 있다. 인위적 힘이 가해진 역사를 두고 훗날 역사가는 의미를 더 붙여 필연 쪽에 무게들 두지만, 기술된 역사는 역사 자체가 허술한 구석이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역사는 돌고 돈다. 국가의 역사에도 부침이 있기 마련이라 한정된 시간을 두고 평가하기에는 어리숙한 구석이 많다.

 한국의 현재는 거대한 프레임 싸움에 몰입해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들다. 보수와 진보의 프레임 싸움은 한쪽이 상대를 덮어씌워 앞을 못 보도록 하려는 작태처럼 비쳐진다. 양 측이 앉아서 토론을 하면 공감하는 영역이 하나도 없어 동시대를 사는 괴물들이 서로 마주 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보수와 진보를 정치적 영역에서 제단하고 있지만, 정치가 대부분 영역을 포괄할 수 있기 때문에 정치적 진보ㆍ보수의 대립은 사회의 대립 구도로 봐도 무방하다. 우리나라 현재 정치 프레임 싸움에서 진보가 훨씬 힘을 쓰고 있다.

 진보가 득세한 우리나라 정치에서 촛불의 힘은 여전히 유효하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에서 권력이 탄생했다고 스스로 이야기하는 만큼 촛불은 태풍에도 맞설 힘을 가지고 있다. 촛불에 정의를 부여하는 게 문제가 있어도, 문제를 제기하면 제대로 힘을 못 쓰고 자세를 낮춰야 한다. 현재의 역사는 현재 힘을 가진 자가 만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소리가 끼어들 여유가 없다. 촛불에 따라 촉발된 박근혜 대통령 탄핵은 현대 한국사에 큰 사건이다. 한 나라의 대통령을 탄핵시킨 촛불은 무소불위의 힘을 휘둘렀다고 해도 토를 달 사람이 없다. 촛불의 힘이 우리 사회에서 지금 만들어내는 폐해도 만만찮다. 촛불이라고 기득권의 그림자가 없을 수 없다. 촛불이 순수하다고 믿는 사람은 되레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받는다.

 프레임 싸움은 역사의 물줄기를 단번에 돌릴 수 있는 가장 좋은 전략이다. 지금은 반일 프레임이 대세다. 반일 감정이 모든 분야에서 솟아오른다. 자고 일어나면 반일 감정이 한 뼘씩 더 자란 기분이 든다. 반일은 아무리 파도 정당성이 풍풍 솟아난다. 어릴 때 반일감정은 자연스럽게 체득됐다. 한일전 축구에서 선수들은 목숨 걸고 싸워야 하고 관중들은 독립운동하는 것처럼 목에 핏대를 올리며 응원을 했다. 승패에 따라 환호와 좌절은 극명하게 갈라졌다. 예전 반공 프레임도 대단한 힘을 발휘했다. 심지어 북한 사람은 머리에 뿔이 달린 악마처럼 생각하는 순진한 아이들이 예전엔 많았다. 반공이 국시였을 때 정부가 뿌린 프레임에 어린아이들이 갇히지 않는 게 되레 이상할 수밖에 없다.

 현정부는 반공과 반일 프레임 가운데 반일을 택한 것 같다. 약효는 두 개가 비슷한데 전략에 따라 선택과 집중에 몰입한 모양새다. 더불어민주당의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서 한일 갈등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에 유리할 것이란 보고서를 내 논란이다. 연구원은 논란에 즉각 사과했지만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야당이 열 받은 건 당연하고 민주당 내에서도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나왔다. 국가적 위기 상황을 총선 유불리와 연관 지어 물의를 일으켰지만 프레임의 거시적 시각에서 보면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다.

 다시 불붙은 프레임 싸움에서 초반 기세가 계속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초반에 대응할 논리를 잘 만들고 역사의 우연성을 필연성으로 포장하면 우열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벌써 우리 정치 판에 반일 프레임에 곤곤하게 자리를 잡는 듯하다. 프레임은 모든 생각을 획일화시키는 사탄적 요소를 품고 있다. 역사의 한 변곡점에서 역사의 모순성이 역사의 주류를 이루는 요소일지도 모른다는 자괴심이 더 커지고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