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3 15:38 (화)
"시 쓰기는 나의 업… 아직 표현할 시가 많이 남아 있죠"
"시 쓰기는 나의 업… 아직 표현할 시가 많이 남아 있죠"
  • 김정련 기자
  • 승인 2019.07.29 21: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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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를 자신의 업으로 삼고 지금도 낮과 밤으로 글쓰기에 매진하고 있는 박희익 시인.

 

주목! 이 사람

박 희 익 시인

64년 문학 춘추 미담 서정주 선생 추천

15번째 시집 `별이 나를 보네요` 출간

아내 생각하며 적은 시 등 100여편 담아

"시와 수필 쓰는 게 삶을 사는 이유"

움막 지어 자연인 삶 즐기며 글쓰기

국가관ㆍ애국심 우리말 지키기 앞장서

후학양성 힘써 참다운 시인 배출 노력

 글을 쓴 지 50여 년, 밀양시 초동면 신호리에 움막을 짓고 살며 여전히 시와 수필을 쓰는 박희익 시인이 15번째 시집 `별이 나를 보네요`를 출간했다. 지난 24일 경남매일 본사에서 마주한 박 시인은 고희를 훌쩍 넘긴 나이지만 여전히 글쓰기에 엄청난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또한 박 시인의 몸에 밴 정중함과 점잖음은 그의 등단 햇수를 무색케 했다.

 박 시인은 1964년 10월 미당 서정주 선생의 추천을 받아 시 `그리운 어머니`로 문학 춘추에서 등단했다. 밀양에서 태어난 박 시인는 12살 때부터 객지 생활을 해 어머니와 함께한 따뜻한 기억이 별로 없다. 서울서 자취생활을 하며 대학을 다녔기 때문에 그에게 매 끼니를 챙기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어머니와 함께한 많은 추억을 떠올릴 순 없지만 그의 기억 속에 어머니는 아들이 끼니를 거르지 않도록 쌀과 보리를 챙겨 줬고 더러워진 아들의 옷을 빨아 개 줬다.

 "작은 촌 동네에서 서울로 대학 간 아들을 자랑스러워하신 어머니 얼굴이 아른거리네요. 20살 때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하루하루가 불안하고 힘든 시간이었어요. 더 이상 서울서 학업을 이어가는 것에 자신이 없던 터라 그때 스승님이신 서정주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씀 드렸죠. 돌아온 것은 호된 꾸중이었어요. `앞으로 더 큰일을 치러야 할 것인데 고작 이런 일로 포기를 할 셈이냐`며, 선생님께서는 제게 시를 가지고 오라고 하셨어요. 그렇게 탄생했던 작품이 `그리운 어머니`예요."

 인터뷰를 하던 다음날은 실제로 박 시인 어머니의 기일로 그는 인터뷰 중 잠깐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박 시인는 1965년 동국대학교를 졸업 후 해병대에 입대했다. 얼마 후, 월남에 참전했고 조국 수호에 피땀을 흘리면서도 습작을 멈추지 않았다.

 15번째 시집 `별이 나를 보네요`

 우주쇼는 매년 2월 경 지구와 목성 사이의 거리가 가장 가까워지고 태양, 지구, 목성이 일직선상에 놓일 때 하늘에서 벌어지는 진기한 풍경이다. "올 초 밤하늘의 우주쇼를 기다리다 까만 밤하늘에서 반짝이는 수많은 별을 보고 생각했어요. `아 저 별도 나를 보고 있구나` 그렇게 탄생한 게 15번째 시집의 제목이에요." 박 시인의 15번 째 시집 `별이 나를 보네요`에는 1부인 핑크색 뮬리에 21편, 2부인 움막의 빛에 22편, 3부인 달빛이 창문을 여는 밤에 22편, 4부인 이보시게에 22편, 5부인 잠 못 이루는 밤의 몸부림에 32편으로 총 119편의 시가 실려 있다. 119편의 시 중에서 가장 애정이 가는 시 몇 편을 부탁하자 제일 먼저 꼽은 시는 아내를 생각하며 적은 `가슴에 박힌 옹이`다.

 오동나무는 우리 민족의 삶 속에서 희로애락을 같이 해온 나무다. 옛날에는 `딸을 낳으면 마당에 오동나무 한 그루를 심어 딸이 시집갈 때 그 나무를 베어 가구를 짜서 보낸다`고 해 우리 마당 어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다.

 가슴에 박힌 옹이

 뒤 안 오동나무에/ 마누라 가슴/ 수없는 못을 박았다/ 세월  흘러/ 나는 못을 뽑다가/ 뽑기가 힘들어/ 나무를 베었다 / 아무 쓸모없는 나무/ 옹이 자국만 생기고/ 마누라 가슴 / 치유할 수 없는/ 암 덩어리 생겨/ 늦게야 후회를 한들/  기은 상처/ 되돌릴 수 있을까

 "애착이 가는 시라기 보다는 죄를 지은 것 같아요. 이런 이야기가 있어요. 옛날에는 딸아이를 낳으면 오동나무를 뒷마당에 심었어요. 성인이 된 여성이 시집을 갔고 시간이 흐른 뒤, 뒷마당의 나무에는 못이 잔뜩 박혀 있었죠. 한 날은 남편이 아내에게 `왜 못을 박았냐` 물었더니, 아내는 이렇게 대답했죠. `당신과 아들, 딸 낳고 살아가는 동안 내 가슴이 미어지는 날이 많았다. 당신이 나를 약 올릴 때 마다 오동나무에 못을 하나 씩 박았다`고. 그 뒤 남편은 좋은 일을 하나씩 할 때마다 못 하나 씩을 다시 뽑아요. 못을 뽑은 자리에는 옹이가 생겨요"라며 옛날이야기를 들려줬다. 이어 박 시인은 이 일은 진짜 있었던 일이라며 "그동안 아내에게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줬나 봐요. 우리 집사람 가슴에 암이 퍼져 두 차례나 수술을 받았죠. 암 수술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자궁과 갑상선에도 암이 생겨 또 수술을 했어요. 그 모든 것이 나로 인한 옹이가 아닐까 생각이 들었어요. 속죄하는 마음에서 지은 시라고 할 수 있겠네요. 지금은 아들과 손자 손녀와 함께 같이 지내고 있어요. 이 시를 처음 읽는 사람은 절대 이해하지 못 할 거예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지."

 고희를 훌쩍 넘긴 박 시인의 친구들은 저 하늘의 별이 된지 오래다. 하지만 박 시인은 매일 새벽 5시면 그의 반려견 `롯`과 함께 동네 주변 산책을 거르지 않을 정도로 아직 정정하다. "시와 수필은 내가 해야 할 업이지요. 해야 할 일은 삶을 나아가야 할 이유가 돼요. 아직도 3일에 1권씩 책을 읽고 있어요. 전국에 있는 출판사에서 매번 좋은 책을 보내 줘 꾸준히 읽고 있어요. 책은 내 마음의 양식이자 큰 자산이 돼요." 박 시인은 스트레스가 쌓일 땐 시로 욕을 하며 짜증을 푼다. 전라도 사투리로 욕을 하며 시 한 줄을 읊어 보이는 그의 시는 참 맛깔나다. 박 시인의 욕이 들어간 시는 앞으로 준비 중인 시선집에서 추후에 만나볼 수 있다.

 산골짜기에 안 사는 자연인

 마을의 반대편에 움막을 짓고 살아 온지 15년째인 박 시인은 움막 앞에는 작은 텃밭을 일궜고 조금 더 떨어진 곳에는 석류꽃을 심었다. "원래 산에 들어가서 시와 수필을 쓰고 싶었어요. 산 속에서 행여나 혼자 아플까 걱정하는 아내의 말을 듣지 않을 수가 없었죠. 글 쓰다 머리 아플 땐 석류꽃을 감상하고 배고프면 텃밭에서 상추, 파 뽑아 밥 지어 먹지요. 산골짜기 안 사는 자연인이지요. 하하"

 고요는 죽음보다 두렵다

 숨 막혀 가슴 터질 것 같은/ 적막감이 가득 찬 움막/ 귀 신이 있는가 모르지만/ 어둠 속 무거운 발걸음/ 귀신 굴 속같이 어두운 움막/ 소름끼친 무서움/ 내 방에 들어오 지 않으리/ 시계의 초침 밤만 되면 슬피 울어/ 심장을 찢 는다/ 감방의 독방 죄라도 지었는지/ 나는 보이지 않는 데/ 시계는 나를 보고 있다/ 멀리 데리고 가려고/ 수 없 는 밤이 무서웠다면/ 어찌 詩를 쓸 수 있으랴/ 나의 친구  詩야/ 고독이 스며오는 삼경/ 나는 다시 어둠 속으로/ 길 을 걸어가고 있다

 찔레꽃의 꽃말은 고독

 "12시가 지난 새벽에 움막 안은 시계 초침 소리가 가득 차요. 째깍 째깍" 장사익과 이미자의 찔레꽃의 노랫말처럼 찔레꽃은 우리의 삶에서 뗄 수 없는 사연이 있는 꽃이 아닐까. 찔레꽃의 꽃말은 고독이다.

 "밝은 밤, 움막 근처 핀 찔레꽃을 보면 마치 소복을 입은 귀신처럼 보일 때가 있어요." 시 속에서 찔레꽃을 찾을 순 없지만 그와 얘기를 나누고 난 후 시를 읽으면 시 속, `고독`이 주는 의미를 알 수 있다. 박 시인과 얘기 하는 내내 그의 삶 속으로 빠져 들게 된다.

 

 나라꽃 國花

 3월이 오니 벚꽃 몽우리 맺힌다/ 무궁화를 아시나요/ 무 궁화꽃 본 일 있어요?/ 어떻게 생겼어/ 전국 방방곡곡/  벚꽃은 모르는 사람 없는데/ 애국가 중에 나오는/ 무궁 화 삼천리/ 국화 모르는 국민 너무 많다/ 무궁화 보기가  쉽지 않다/ 천대받는 우리나라 꽃 모르니/ 지나다 보면  어쩌다 한두 포기/ 울타리에 보이네 우리나라 꽃

 "애국가 1절, 노래는 할 줄 알아도 무궁화 모르는 사람, 참 많은 거 같아요. 우리나라 꽃을 푸대접하는 게 마음이 아파서 이 시를 지었어요. 그간 수많은 문학 행사에 참여하면서 애국가를 부를 일이 많았는데 1절만 부르는 곳이 많더라고요. 어떤 곳은 애국가를 생략하기도 하죠." 베트남 참전 때 국가 유공자가 된 박 시인은 조국에 대한 사랑이 깊다. 또한 투철한 국가관과 애국심으로 우리말 지킴이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요즘 시인들은 시에 한문과 영어를 많이 섞어 써요. 식당에 `SELF`가 적히지 않은 곳을 찾기 가 힘들 지경이에요. `모자라면 더 가져다 드세요`라는 우리말을 나두고 왜 굳이 외국어를 쓰는지 모르겠네요."

 박 시인의 목표는 앞으로 말을 하지 못할 때까지 시와 수필을 계속 쓰는 것이며 또 참다운 시인을 배출하는 것이다. "김해에 제자가 많아요. 사실 참다운 시인을 배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에요. 우리나라 시인이 전 세계의 시인보다 많다고 해요. 옛말에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는 말이 있거늘, 시인은 위 아래를 알고 예의범절을 갖춰야하며 겸손할 줄 알아야 해요. 앞으로도 후학 양성에 계속 힘쓸 거예요."

 박 시인의 시에는 그의 아내, 그리운 동생, 조국, 그의 삶이 고스란히 녹아있다. 짧은 시 한편에도 이야기보따리가 펼쳐진다. 그의 시를 읽으면 짧은 작품 속에 담긴 긴 여운을 느낄 수 있다.

※박희익 시인 저서

1. 정감 2. 그리움 3. 꽃망우래기 4. 그대와 이별이 오는 날 내혼 어디서 멈출까 5. 원남동 까치 6. 가슴에 핀 담쟁이 7. 게는 앞으로 가지 않는다 8. 물에 빠진 개구리 9. 별을 닮은 황금 꽃 10ㆍ11권 전자책 12. 지팡이 13. 엉터리시인 14. 꽃 따라 가는 길, 전자책 15. 별이 나를 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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