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5:46 (수)
학생인권을 폐기한 죄
학생인권을 폐기한 죄
  • 편집부국장 김명일
  • 승인 2019.07.22 1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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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부국장 김명일

 

 7월 19일 경남 학생인권조례안이 폐기되던 날 학생인권운동가 박태경 씨(21)는 울었다. 박 씨는 고3 때 친구가 담임에게 맞자 친구 대신 사과를 요구했다가 전학 당했다. 이 사건 이후 그는 학생 인권운동을 하게 된다. 박 씨는 이날 경남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위한 촛불시민연대와 함께 도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세 번째 현장 발언자로 나선 그는 울먹이며 발언을 시작했다.

 그는 "처음 청소년 운동을 시작할 때 같이 할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2년 반이 지나 이제 내 옆에 6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싸우고 있다. 우리에게 줄곧 아무것도 없었다. 집회를 해도 기자 한 명 오지 않았고, 기자회견을 해도 기자 한 명 오지 않았다. 아무도 우리 목소리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런 상태로 2년 넘게 싸워 왔다. 내가 너무 하고 싶었던 것은 같이 싸우는 사람들에게 작은 승리 경험 하나라도 남기고 싶었다. 경남에서 학생과 청소년이 주도해 학생인권조례 제정이라는 역사를 남기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늘 부결도 아니고, 실패도 아니고, 자동 폐기라는 공허한 결과만 남았다. 이 폐기가 무엇을 폐기하는 것인지, 우리는 반드시 되짚어야 한다. 경남도의원 당신들이 폐기한 것은 학생인권조례안이 아니라 고통 받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다. 고통을 덜어내고자 싸우는 사람들의 외침을 당신들은 폐기한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거리에서 학생들이 `이런 거(학생인권조례 제정) 된다고 하면서 되는 것 한 번도 못 봤다`고 할 때 이번에는 꼭 될 거라고 말했다"라며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 그러나 우리 책임보다 도의회에서 금배지 달고, 폐기 처분한 당신들에게 책임을 물어야겠다. 고작 금배지 하나로, 인간으로 대우받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자동 폐기라는 끔찍한 처분을 내린 당신들에게 책임을 물어야겠다. 사과하라!"라며 울분을 토했다.

 조례 만드는 청소년 대표 지혜(활동명) 씨는 "참담한 마음"이라며 도의원들의 `죄상`을 하나하나 열거했다. 그는 "도의원들은 자신들이 누구의 손을 들어준 것인지에 대해 엄정히 책임을 져야 한다. 헌법에 이미 보장된 학생의 권리는 안중에도 없고, 오직 자신들의 다음 선거만 생각한 죄, 약자들을 차별하고 혐오하며 결집하며 보수 기독교 세력에게 승리감을 안겨준 죄, 경남 학생들이 인간과 시민으로 대접받지 못하는 상태를 기약 없이 연장한 죄, 차별과 폭력에 시달리는 사람이 아니라 차별과 폭력을 퍼뜨리는 사람들의 손을 들어준 죄, 이것들이 당신의 죄다."라고 말했다.

 11대 경남도의회는 어느 때 보다 활발한 의정활동을 펼치고 있다. 민의를 수용하는 열린 의정을 실현하기 위해 도의회 개원 이후 최초로 한국지방정부학회와 지방의회 역할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해 의원의 역량을 키우는 한편, 지역 현안을 청취하기 위해 찾아가는 토론회를 열기도 한다. 또 상임위별로 현지 의정활동도 펼치고 있다. 이 같은 의정활동에도 아쉬운 것은 학생인권조례에 대한 현지 의정활동과 토론회는 없었다는 것이다. 상임위 부결 후 촛불시민연대가 도의회 차원의 토론회 개최를 요구했지만, 수용하지 않았다.

 누가 이 학생들을 거리에 나서게 했나. 박태경, 지혜, 이수경 이 세 청년은 고교 때부터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어 학생 인권운동을 했다. 학교와 교사가 이들을 학생 인권운동을 하게 만들었다. 이 학생들은 고교 때 교사에게 부당한 처벌을 받고 학생 인권운동에 나서게 됐다. 여전히 학생인권을 짓밟는 일부 교사가 문제다. 학교와 교사는 사람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인권 친화적 학교 문화를 조성해 학생을 바람직하게 성장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 이수경 활동가는 "학생인권조례가 학생 인권보장에 최종적인 목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누군가 우리에게 경남 학생인권조례 제정에 실패했다고, 우리가 졌다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라며 청소년 인권 보호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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