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23:04 (금)
양파 껍질을 까야겠다
양파 껍질을 까야겠다
  • 하성자
  • 승인 2019.07.22 1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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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시의원 하성자

양파 과잉생산 가격급락

김해시, 양파 수급조절 잘해

소비활성화 대책 첫 성과

재배농가 딸 감동의 눈물

 올해 양파 값이 폭락해 농가마다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다. 김해시가 양파 농가를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 준 뉴스를 보며 양파 농가 딸이었던 나는 양파 농사 짓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해마다 10월이면 양파 씨앗을 파종한다. 흙을 곱게 일궈 널빤지로 폭이 1미터가량 되는 편편한 이랑을 만들고 까만 양파 종자를 촘촘히 뿌린 뒤 그 위에 흙을 고르게 덮고 다시 시루떡 고물같이 왕겨를 얇게 얹는다. 아침이면 동네 아이들이 조롱조롱 도랑에 모여든다. 모종 밭마다 물 조리로 물을 주는 아이들은 서로 경쟁하듯 열심히 일했다. 우리 집은 형제들이 다 함께 했는데 가까운 도랑에서 양동이로 물을 날라 와야 해서 손이 여럿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물을 너무 세게 주면 보드라운 밭 살이 패여 씨앗이 분산되기 때문에 표면에 있는 왕겨가 움직이지 않을 정도로 곱게 물을 줘야 했다. 물 조리 주둥이로부터 하얀 물살이 보슬비처럼 왕겨 위로 내려앉을 때 밭 가장자리 둔덕에는 한 무더기 샛노란 들국화가 꽃향기를 보내 줘서 새뜻한 아침을 맞을 수 있었다. 양파의 빛나는 연둣빛과 달콤했던 들국화 향기와 그 내음을 실어 오는 산들바람의 간지럼과 작은 보폭이 찍힌 고랑의 발자국이 조물조물 손안에 드는 것이 마치 `그때 그 시절`의 한 장면인 듯 파노라마로 스쳐 간다.

일주일 정도 지나면 까만 씨앗을 머리에 인 양파 눈이 왕겨를 비집고 올라온다. 연둣빛 몸체를 뾰쪼고미 내민 뒤부터 불과 며칠 사이에 촘촘하니 쑥쑥 올라와 아침저녁 물주기를 해야 한다. 손이 곱아 호호 입김을 불어야 하는 산골 특유의 아침 추위가 곧 시작된다. 더러 게으름 피우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약속처럼 우리는 도랑에 모였고 모종 밭에 물을 주곤 했다. 서리가 싸락눈마냥 온 마을에 하얀 덧옷을 입히는 날이 잦아지면 본격적인 초겨울이다. 황금빛 왕겨와 초록빛 양파 잎, 그들 위에 얹힌 이슬이 아침 햇살을 받는 정경은 섬세한 아이의 눈에 각인됐다. 이슬 매달린 대궁 쪽보다 하얀 서리 위로 빳빳한 양파 잎은 감동 그 자체였다. 언 듯 선명히 살아 있어서 나는 왠지 모를 힘이 나는 것이었다. 서리 때문에 얼면 어쩌나 걱정을 하면서도 물을 주면 서리가 금방 녹아버려 그 멋진 모습을 놓치는 게 아쉬웠었다. 매섭도록 추운 날에도 우리는 잘 해냈고 양파도 잘 견뎌주었다. 우리는 추위 속에서 같이 자라고 있었다. 열기 넘치는 아이들로 인해 초겨울의 스산함은 아침부터 기가 죽어서 우리 동네는 겨울이 더 활기찼었다. 햇살의 두드림보다 먼저 창호지를 흔드는 아침 바람이 우리를 깨워주던 그때, 농사일 거드는 게 일과의 시작이었던 나는 어깨를 옴츠릴 정도의 겨울바람 따위 오히려 즐기는 편이었다.

 11월 중순과 하순 사이에 양파를 옮겨 심어야 한다. 모종을 뽑아 단을 묶어서 밭으로 나른다. 서리가 내려도 아직 얼지는 않은 땅, 살얼음같이 적절한 땅의 보풀림이 찹찹한 촉감을 주어 일하기에 적당했다. 아버지가 고랑을 타면 나는 알맞은 간격으로 양파 모종을 놓고 동생 둘은 물을 준다. 아버지가 다시 괭이로 흙을 조롯조롯 덮으면 어머니와 오빠는 모종을 곧게 세워 두 손으로 살짝 눌러 한 포기 한 포기를 일으켜 세웠다. 양파를 옮겨 심고 나면 일단 농사로부터 한숨 돌릴 수 있다. 스무날 정도 지나 겨울 방학이 시작될 때쯤이면 양파는 이 위로 잎을 향하고 저 스스로 밭에 적응한 티를 뽐낸다. 눈과 북풍의 겨울을 나는 양파는 그런 중에도 제법 대궁이 굵어진다. 설날이 지나 야채가 귀한 때 어머니는 몇 포기 뽑아 온 풋양파로 된장을 끓이거나 볶음 요리를 해 주기도 하셨다. 사시사철 지겹도록 양파를 먹어왔지만 나는 아직도 양파 요리를 좋아한다. 최근 양파는 양파엑기스와 양파 고추장, 양파 된장, 양파 막걸리, 양파 피클, 양파 빵, 양파 젤라틴 등 제품화돼 사람들의 건강생활에 도움이 돼 주고 있다. 양파란 것을 안 지 수십 년 동안 양파는 그 존재가치가 여전하고 지금은 오히려 뛰어난 성분으로 위상을 자랑하며 사랑받는데 나는 그동안 어떤 사람이 되어 왔는지를 생각해 봤다. 양파 껍질을 까야겠다. 눈물 줄줄 날 정도로 호된 꾸중을 듣고 또 스스로를 위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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