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9 10:01 (금)
유튜브 방송이 이끄는 정치세계
유튜브 방송이 이끄는 정치세계
  • 류한열
  • 승인 2019.07.18 1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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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진보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 방송하는 유튜버들의

논리를 정신 놓고 들으면

흠뻑 빨려들게 돼 있다.

이런 유튜버 방송에 댓글을

다는 구독자는 흡사 사단장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병사 같다. 유튜버가 5만 명을

동원하면 연대장급이고

10만 명 이상 동원하면

사단장급이라 말해도

틀리지 않다.

 우리 사회는 상대를 포용하는 데 너무 박하다. 웬만하면 상대를 인정하기를 거절하고 심지어 상대가 맞는 소리를 해도 애써 턱도 없는 소리라고 몰아붙인다. 지금 정치판에서는 흑백의 구분이 너무 뚜렷하다. 보수ㆍ진보가 형성한 전선에는 살기가 느껴질 정도로 험악하다. 지금 인기를 끄는 유튜버 방송에 들어가 보면 가관이다. 보수 유투버는 진보를 싹 쓸어버릴 듯이 목소리를 높이고 진보 유튜버는 은근하게 보수를 까는데 뛰어나다. 상대를 전혀 인정하지 않고 논리적으로 상대를 죽이는 목소리를 들으면 웬만한 사람은 빠져들 수밖에 없다. 비판적 힘을 가지지 않으면 쉽게 한쪽으로 넘어가 `구독자`가 되고 특정 색깔을 내는 유튜브 방송에 빠진다. 인기를 끄는 `성제준 TV`나 `김어준 다스뵈이다`는 구독자가 수십만 명에 이른다. 이들의 입에서 뿜어내는 막강한 힘은 옳든 그르든 여론 형성에 제 몫을 한다.

 신문방송학에서 들먹이는 침묵의 나선 이론은 어떤 의견과 행동 양식이 획일화의 압력으로 우세한 쪽으로 기우는 경향을 설명한다. 독일의 엘리자베스 노엘레-노이만(Elizabeth Noelle-Neumann)이 1974년에 제시해 한때는 꽤 영향을 끼쳤다. 남의 눈치를 보느라 입을 닫은 사람들이 나선처럼 빙글빙글 돌다 거대한 침묵의 마당에 내팽개쳐지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특히 승자에 들고 싶어 대세에 순응하는 사람들은 의외로 많다. 유튜브 시대에 눈앞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뿜어내는 유튜버들은 많은 사람들 침묵으로 인도하는 신흥 종교 교주 같다고 하면 너무 과한 말일까?

 보수ㆍ진보 색깔을 분명히 드러내 방송하는 유튜버들의 논리를 정신 놓고 들으면 흠뻑 빨려들게 돼 있다. 이런 유튜버 방송에 댓글을 다는 구독자는 흡사 사단장의 명령을 따라 움직이는 병사 같다. 유튜버가 5만 명을 동원하면 연대장급이고 10만 명 이상 동원하면 사단장급이라 말해도 틀리지 않다. 대체로 유튜버는 입이 걸다. 정제되지 않은 말투가 되레 설득력이 있는 장점이 있다. 직설적인 화법이 더 진실을 담은 것처럼 비치는 묘한 매력도 있다. 휴대폰을 눈앞에 두고 그들의 `광기 같은` 화법에 춤추다 보면 생각 양식의 획일화될 개연성이 높다. 결코 가볍게 볼 사안은 아니다. 한국 영화가 관객 1천만 명을 동원하는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작품이 어느 정도 받쳐주면 관객은 몰려온다. 이 장면에서 우리 사회가 `1천만 침묵 신드롬`에 빠져 있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1천만 명 가운데 침묵하는 다수가 포함돼 있을 수 있다. 신드롬이 병처럼 퍼지면 실제와 허상은 구분이 모호해진다.

 요즘 유튜브 방송의 의제는 다양하다. 의제의 서열은 유튜브의 인기에 따라 자연스럽게 매겨진다. 의제를 정하는 건 유튜버의 몫이지만 의제 설정이 너무 작위적이면 여론이 편향될 수 있다. 의제설정 이론(agenda-setting theory)은 대중매체가 대중들의 의제 설정에 기여한다는 이론이다. 방방 뜨는 유튜버는 의제를 정할 때 대중 인기와 연결해 결정하는 것을 뼛속 깊이 새기고 있다. 이 공식을 모르면 유튜브 방송이 살아날 수 없다. 먹방 등이 말 그대로 살아가는 방식은 독자의 마음을 제대로 훔쳤기 때문에 가능하다. 정치 관련 유튜브 방송은 더더욱 한쪽으로 깊게 골을 파야 생명이 길다. 보수ㆍ진보가 제대로 붙는 현장이 매일 유튜브 방송에서 펼쳐진다. 이 뜨거운 현장에서 특정 정치인을 죽이는데 의제 설정을 맞추기 때문에 문제다. 의제 설정의 폐해가 매일 양산되고 있다.

 한국 정치는 세련되지 못해 여야 정치인이 앉아서 토론을 하면 무조건 반대 입장에 선다. 쟁점이 되는 의제를 설정하기 때문에 상대의 말을 아예 듣지 않는지도 모른다. 정치인들의 화법은 침묵하는 다수를 우매하다고 설정해 놓고 강변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뛰어난 정치 논객은 1천만 침묵 신드롬을 신봉하는 사람들이다.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고 자기 당의 당론을 주절주절 읊는 정치인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유튜버들이 보수와 진보로 나눠 펼치는 극한 논쟁은 한쪽 편들기를 목표로 삼는다. 침묵하는 대중 초점 맞추기와 교묘한 의제 설정으로 유튜브 방송은 한 색깔로 몰아가는 데 열중한다. 손바닥 위에 놓인 휴대폰에서 한쪽 편들기로 정치를 몰아가고 있다. 포노 사피엔스는 정치엔 수동형 인간으로 전락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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