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6 06:28 (금)
“경남 최고 민간인 통역사 돼 인권보호 앞장서고 싶어요”
“경남 최고 민간인 통역사 돼 인권보호 앞장서고 싶어요”
  • 김정련 기자
  • 승인 2019.07.17 19: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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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경찰청과 검찰청 소속 민간인 통역사로 활약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에서 온 고려인 3세 주현주 씨.

 

도내 이주 외국인의 삶

<우즈벡서 온 고려인 3세 주현주>

17살 때 한국 처음 와 한국어 독학

우즈베크ㆍ러시아ㆍ한국어 3개 언어 능통

경찰 검찰청서 민간 통역요원으로 활동

“부정부패 만연한 곳 이주민은

반부패 한국문화에 적응하기 힘들어 ”

‘뒷돈 줄테니 거짓조서 써달라’ 제안받기도

‘인권 보호’ 애쓰는 정의로운 경찰 존경해

 우즈베키스탄에서 나고 자란 고려인 3세 주현주 씨를 지난 15일 경남매일 본사에서 마주했다.

 엄마의 재혼으로 17살이 되던 해에 한국으로 온 현주 씨는 그때 당시를 떠올리며 다시 세 살배기 아이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고 했다.

 1937년 스탈린의 소수민족정책에 따라 연해주에 살던 조선인들이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면서 우즈베키스탄 고려인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려인 엄마, 아빠 사이에서 태어난 현주 씨는 생김새는 한국인이지만 우즈베키스탄에서 나고 자라 한국말을 전혀 하지 못했다.

 “17년간의 내 모든 인생을 뒤로 하고 처음 한국 땅을 밟았을 땐 막막했어요. 생김새는 한국인인데 언어는 전혀 통하지 않아 사람들이 많이 답답해했어요. 집안 사정 때문에 학업을 이어갈 수가 없어서 17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하며 개인적으로 한국어 공부를 했어요.”

 14년이 지난 지금, 현주 씨는 한국어로 소통하는데 전혀 문제가 없다. 우즈베크어와 러시아어, 한국어 3개 국어에 능통한 현주 씨는 10년 전부터 경찰청과 검찰청 소속 민간 통역요원으로 일하고 있다.

 “경남 전역을 돌아다녀요. 10년 전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몇 개월에 한 번씩 일이 생기곤 했는데 지금은 매일 일이 있어요. 오늘은 진해, 내일은 창원, 양산 등 스케줄이 꽉 차 있어요.”

 실크로드의 중심에 놓여있던 전통문화의 요람이자 중앙아시아의 자원부국인 우즈베키스탄은 한 대통령이 26년 동안 철권통치를 해왔다. 지난 1990년, 이슬람 카리모프는 소련 내 우즈베크 공화국 대통령에 올랐고 소련 붕괴 후인 1991년 12월 직선제로 치른 대선에서 독립 우즈베키스탄의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뒤 25년 이상 권좌를 지켰다. 일각에서는 야권인사와 언론인을 탄압하거나 투옥하고 야당의 정치활동을 사실상 차단하는 등 독재를 일삼아 왔다는 평가도 있다.

 우즈베키스탄은 전형적 비민주국가이자 악명 높은 경찰국가로 부패문제가 전 세계 최하위권이라고 알려졌다. 이는 북한 및 소말리아와 어깨를 견줄 정도다. 아직도 부정부패가 휘몰아치는 국가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은 한국의 우수한 반부패 정책과 친하지 않을 수밖에 없다.

 “10년간 통역을 하면서 ‘뒷돈을 줄 테니 조서를 거짓으로 꾸며라’,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진술을 하라. 그럼 보답을 하겠다’는 제안을 많이 받았어요. 우즈벡은 여전히 부정부패가 만연한 곳이라 한국도 같은 상황이라고 생각하고 이런 제안을 하는 거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현주 씨는 우즈벡과 한국의 문화차이부터 사회적 통념 등에 대해 일일이 설명한다. 한국생활을 막 시작한 우즈베크인들이 분실된 물건을 함부로 사용하다 적발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이 CCTV 천국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우즈베크인들은 목격자가 없다고 생각하며 범죄행위를 저지르기도 한다. 사실 한국은 증거물이나 목격자, 과학수사보다 훨씬 더 유용한 도구인 CCTV가 존재하는데 말이다. 지난 2017년 통계로 공공기관의 CCTV는 95만 대가 넘고 사업장에만 800만 대로 대한민국 내 총 CCTV는 1천300만 대 이상으로 추정된다. 국민 한 사람이 하루 평균 CCTV에 찍히는 숫자는 족히 수십 번은 된다는 뜻이다. 현주 씨는 한국의 이런 상황을 전혀 알지 못하는 우즈베크인들에게 중요한 역할이 되고 있다.

 “한국에는 곳곳에 CCTV가 있으며 분실된 카드나 휴대전화를 소지하게 됐을 때는 사용하지 않고 가까운 경찰서에 갖다 줘야 된다고 설명해줘요. 우즈베키스탄에서는 물건을 분실 시 찾을 확률이 거의 없거든요. 우즈베키스탄의 행정 체계는 악명이 놓을 정도로 열악한 편이에요. 한국의 70년대의 행정체계를 생각하면 될 것 같아요. 또한 부패지수가 최악의 수준이라고 할 수 있어요. 언론의 자유 역시 기대할 수 없고 경찰이나 공무원의 권위가 상당하며 문서위조와 같은 일이 비일비재해요. 그래서 가끔씩 경찰서에서 조서에 서명을 하라고 하면 우즈베크인들이 거부를 한다고 해 다시 경찰서에 가 설득하는 경우가 많아요. 우즈베크인들은 서명과 날인은 절대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분명히 위조를 하거나 불이익을 당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에요. 그래서 제가 한국에서는 그런 경우가 없다고 설명을 하며 설득하죠. 한참을 설명하면 그때서야 서명을 하더라고요.”

 현주 씨의 꿈은 경찰이다. 외향적이며 밝은 성격의 현주 씨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다고 한다.

 “통역을 하며 대한민국 경찰관들의 친절함에 반했어요. ‘인권’의 가치를 항상 가슴에 새기며 열심히 일하는 정의로운 경찰관들을 존경해요. 제가 통역을 하며 피의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어요. ‘대한민국 경찰만큼 친절하고 고마운 분을 만나 본 적이 없다’고. 우즈베키스탄에서는 피의자 신분으로 경찰서에 들어선다면 입구에서 뒤통수를 먼저 한 대 맞고 시작할 텐데 말이죠. 우리가 지향해야 할 궁극적 가치이자 모든 경찰활동의 근본이 되는 ‘인권보호’를 위해 애써주시는 경찰관들이 너무 자랑스러워요. 이러한 인권보호를 악용하는 외국인들이 생기고 있는데 그럴 때마다 참 안타깝더라고요.”

 현주 씨는 통역가로서 한국에서의 삶을 만족하고 있다. 오래 전 귀화한 현주 씨는 이제 우즈베키스탄보다 한국 문화가 더 익숙하다고 한다.

 “앞으로도 경남에서 최고의 민간 통역인이 되고 싶어요. 통역을 할 때마다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가 된 것 같아 행복해요. 제가 맡은 분야에서 만큼은 최고가 되겠다는 책임의 자세와 열정으로 노력할 거에요. 또 한국어 공부에 더 매진해서 통역인으로서 전문성을 갖출 수 있게끔 할 거에요.”

 현주 씨는 오늘도 경남도 구석구석을 돌아다니며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들과 경찰들의 중간 역할을 위해 민간인 통역가로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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