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4 07:41 (수)
그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예스를 멈춰라
그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예스를 멈춰라
  • 하성재
  • 승인 2019.07.15 1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선한청지기공동체 대표 굿서번트 리더십센터 소장 하성재

항상 선택의 기로에 놓인 우리들

거절 선택 못하는 리더 있어

거부의사의 어색함 극복해야

부담되는 요청 대처 가능해

상대 실망감 다루는 성의 보여야

확실한 이유 있을 때 거절하길

 리더들은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항상 많은 결정을 해야 하는 자리에 있다. 결정은 리더들만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상이다. 이러한 각각의 결정은 각각의 선택을 의미한다. 그러한 선택은 다른 많은 선택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우리들은 늘 그동안 했던 결정과 선택을 돌이켜보면서 후회하기도 하고, 항상 바른 선택이었는지 성찰하게 된다. 각각의 선택의 순간에서,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 선택, "베스트 예스"를 선택할 수 있을까를 고민한다. 그런데 리더들이 종종 간과하거나 의식하더라도 쉽게 선택하지 못하는 한 부분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거절을 선택`하는 것이다.

 더 나은 선택을 위해, 우리들은 종종 "작은 거절"을 마주해야 할 때가 있다. "작은 거절"의 순간을 맞이할 때, 우리의 마음은 불편하다. 우리는 `그저 착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고, 거절은 착한 것이 아니라는 편향된 생각을 하고 있다. 왜냐하면 거절은 상대에게 어색함과 실망을 주고, 이러한 일은 착하지 않아 보이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저항감을 극복해야 한다. 이를 극복하지 못할 때, 상대의 어색함과 실망을 마주하고 싶지 않아 우리는 종종 무리한 부탁이나 장기적으로 상대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행동에 대해서도 `잘못된 예스`를 하기 쉽다.

 먼저 "작은 거절"은 시기의 문제이다. 일이 점점 커지고 진척되도록 내버려 두면 거절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작은 거절이라 할지라도 쉽지는 않겠지만, 걷잡을 수 없이 벌어지는 사태를 생각하면 지금의 거절이 오히려 "작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초반에 거절하지 못한 나머지 거절이 점점 더 어려워지기 전에, 또는 너무 많은 일이 이미 진행돼 이제는 거절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고 느껴지기 전에 거절해야 한다.

 때론 우리는 대답을 미룬다. 그러나 이것 역시 잘못이다. 대답을 미룬다고 해서 거절할 일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대답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부당한 일을 하는 것이다.

 ㆍ우리가 수락할 것이라는 상대의 희망이 커진다.

 ㆍ그들이 다른 계획을 세우지 못하게 한다.

 ㆍ최종적으로 거절했을 때 그것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그래서 `작은 거절`은 상대를 오히려 배려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거절하는 것과 상처를 주는 것이 똑같다고 혼동해서는 안 된다. 다만 우리는 각각의 작은 거절에 대해 최선의 노력을 다해 그들이 자신의 실망감과 기대감을 다룰 수 있도록 공을 들여야 한다. 쉽게 말해 `성의 있는 거절`을 해야 한다. 오히려 이것이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으며, 상대를 배려하는 행동임을 인지할 수 있도록 성의를 다한 "거절 편지"와 같은 방법을 쓰는 것도 좋다.

 상대의 제안을 면밀히 검토했으며, 제안해 주셨음에 감사하고, 관심이 있는 부분이 무엇이며, 어떤 미래가 예상되는지, 혹은 어떤 조언을 줄 수 있는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락할 수 없는 우리의 한계나 상황이 어떤 것인지, 하지만 앞으로 어떤 기회가 열릴 수 있는지 등을 성의 있게 표현하는 것이다.

 이처럼 `작은 거절`을 하기 시작하면, 때론 그 마법 같은 효능에 더 쉽게 거절하게 되기 쉽다. 그러나 유의사항을 명확히 기억해야 한다. 거절을 무기처럼 사용하면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상대의 요구가 있는 것처럼, 언제나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 작은 거절로 내 한계를 넘어서는 제안을 뿌리친다고 해서, 내가 해야 하는 책임이 줄어드는 것이 아닌 경우가 있다. 따라서 내 책임의 영역이 확실히 지켜지며, 내가 거절하는 이유가 다른 일들을 위한 것임이 확실할 때에만 거절해야 한다.

 작은 거절은 미래의 예스가 될 수 있다. 어쩌면 지금은 완전히 뛰어들 때가 아닐지도 모른다. 한 번 뛰어든 일은 내가 밖에서 보는 것보다 더 긴박하고 빠르게 진행돼, 더 이상 돌이키기 힘든 급류일지도 모른다. 항상 겸손한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제안에 귀를 열되, `그저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한 예스는 이제 멈추는 것이 어떨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