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0 16:12 (토)
역사 왜곡에 저항하는 분노의 시대
역사 왜곡에 저항하는 분노의 시대
  • 이광수
  • 승인 2019.07.01 23: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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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광수
소설가 이광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그의 명저 `역사의 연구`에서 26개 인류 문명의 등장과 쇠퇴를 연구한 결과 `역사는 도전과 응전의 수레바퀴와 같다`고 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기존의 응전은 기득권의 고수 위험에 따른 불안 때문이다. 이는 보수와 진보의 투쟁이라는 진영논리의 근거로 창과 방패의 대결로 표현할 수 있다. 그렇다고 도전이 지난 역사에 무조건적 부정과 파괴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비록 기성의 파괴가 있을지라도 창조적 파괴로 연결되면 혁신으로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할 수가 있다. 한 국가나 민족의 흥망성쇠는 항상 도전과 응전의 연장선상에서 보다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자발적 반동에 의해서 발전해 왔다.

 교육부는 지난해 초등학교 국가검정 사회 교과서 수정 과정에서 생긴 불법행위로 검찰의 수사를 받았다. 검찰은 교육부 담당과장, 연구사 등 공무원 2명과 출판사 관계자 등 3명을 직권남용, 사문서 위조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교과서 편찬 집필 책임자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를 고칠 수 없다고 거절하자 그를 배제하고, 별도의 비공식기구를 구성해 213곳을 수정했다고 한다. 더욱이 집필책임자의 도장까지 몰래 찍어 조작해 출판했다니 유구무언이다. 지난해 초중고교 역사 교과서도 기존의 역사기록을 진보성향교사와 사회단체의 역사관을 일방적으로 반영 수정해 논란이 컸다. 이번 사건도 최고 책임자인 장관 등 윗선은 다 빠지고 실무책임자 세 사람만 입건한 것은 수정내용의 역사왜곡여부를 떠나 모럴헤저드의 극치를 보는 느낌이 든다.

 한일관계사에 대한 일본의 역사왜곡 부정 억지는 작금의 한일 관계 최악 상태가 말해주고 있다. 오래전 일본은 광개토대왕 비문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임나 본부설을 주장했으나 한일 역사학자들의 양심적인 공동연구 분석과 토론으로 이 설은 부정되었다. 그러나 중국의 한중관계 역사왜곡은 동북공정으로 현재 진행 중이다.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중국의 변방사로 확대해석해 중국사에 편입시키는 역사왜곡을 강행하고 있다. 역사왜곡에 대한 정점은 조선시대 사색당쟁 때 절정을 이뤘다. 이조실록은 임금의 일거수일투족을 사관들이 목숨을 걸고 기록한 위대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다(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 무오사화의 발단이 된 조의제문(弔義帝文) 사건은 사림파 종주 점필제 김종직이 수양대군(세조)의 왕위찬탈을 중국사에 빗대어 비난한 글로 그의 문하생인 사관 김일손이 사초(史草)에 적어 넣어 문제가 됐다. 성종 사후 연산군이 즉위하자 성종실록 편찬 과정에서 편찬 책임자인 훈구파 이극돈이 이 사실을 연산군에게 고자질함으로써 죽은 김종직은 부관참시 되고, 김일손 등 신진사류들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처럼 이조실록은 임금조차 자기 사후기록을 사전에 열람할 수 없을 만큼 사관들이 목숨을 걸고 지켰다. 역사적 사실을 왜곡 없이 사실대로 정확하게 기록했기에 조선왕조실록은 위대한 세계문화유산이 된 것이다.

 우리는 아직도 일제 잔재 청산문제가 정리되지 않은 채 끝없는 논쟁을 계속하고 있다. 일본의 조선 침략이 본격화되면서 한국이 역사를 스스로 주체적인 힘으로 지키지 못하고 외세의 간섭과 힘에 의해 식민사관이 형성되었다. 친일행적에 대한 단죄는 `친일 인명사전`까지 만들어 놓고 일제에 동조한 인사에 대한 비하와 폄훼는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이에 대응해 일본은 혐한 감정을 부추기며 군국주의 부활에 정권의 사활을 걸고 있다. 독도 문제,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자 보상 문제 등 한일관계 현안들이 하나도 진척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사문제로 마냥 일본과 대결국면을 지속한다는 것은 양국의 미래에 결코 바람직한 일은 아니다. 현재 남과 북을 단일체로 인식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집권공약으로 내세운 현 정부와, 기존의 대북관을 고수하려는 보수진영간의 갈등은 극과 극을 치닫고 있다. 얼마 전 소설가 현길언은 새 소설 `묻어버린 전쟁`을 발표하면서, 친일파보다 더 큰 해악을 끼친 `공산주의자 인명사전`을 제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북의 남침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고 국토가 초토화되는 참상을 입었기에 못 할 말은 아닌 것도 같다.

 역사왜곡은 현재도 전 세계적으로 자행되고 있다. `분노의 시대-현재의 역사` 저자인 판카지. 미슈라는 지금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반민주적 전체주의의 발흥을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현시대를 `내적자아와 공적자아`가 충돌하는 `분노의 시대`라고 했다. 아나키스트와 니힐리스트가 잡다하게 뒤섞인 집단들이 불공평한 역사와 거짓된 문명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며, 그 역사를 초월하는 새로운 역사의 시작을 기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가운데 역사왜곡을 시도하려는 전체주의 압제에 저항하는 외로운 늑대(테러리스트)들의 분노가 니체가 언급한 `원한의 인간`처럼 폭발해 고갈되지 않고 채워지지 않는 은밀한 복수심으로 가득한 세상이 됐다고 했다. 전체주의적 압제에 저항하는 분노의 시대를 마감하는 최선의 길은 정권의 입맛대로 되풀이 되는 역사왜곡을 끝내려는 국민 각자의 깬 역사의식과 무장노력 여하에 달려있다. `역사는 죽지 않고 살아 있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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