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는 행복
살아가는 행복
  • 김성곤
  • 승인 2019.06.25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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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곤 교육심리학 박사ㆍ독서치료전문가
김성곤 교육심리학 박사ㆍ독서치료전문가

흔들리는 부모들 ⑦-지역사회와 함께 자라는 아이들

 지난 6월 14일 ~16일 교육봉사단체인 아이코리아 회원20명과 함께 대만을 다녀왔다. 대만은 10년 전 방문했고 이번은 두 번째 방문이었다. 타이베이 시내는 화려하지도 않고 소소한 일상을 즐기기에 좋았고 특별히 공해를 일으킬 만한 건물이나 시설을 만나지 못했으며 화려한 외관보다 실리를 더 중요히 여기는 모습 같았다. 우리는 타이베이 시내에 있는 대만대학교 부설 유치원을 방문했는데 회원들 대부분 어린이집 원장으로 구성된 아이코리아 단체 특성상 유치원 방문은 그곳 기관의 우수 프로그램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됐다.


 대만대학 부설 유치원에서는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까지 우리에게 친절히 영상을 통하여 보여줬고 사진 찍기도 허락해 줘 좋은 프로그램을 쉽게 접할 수 있어 좋았다.

 그 곳의 아이들은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 신입생에게 상급생 멘토를 정해서 아이들이 유치원적응을 할 때 아이들끼리 돕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고 텃밭을 가꾸어 스스로 먹거리를 마련하고 교실청소도 아이들 스스로 했고, 유치원 놀이터 등 실외 청소까지 아이들이 직접 했다. 유치원 울타리도 교사와 함께 아이들이 블록을 쌓는 모습이며, 아이들이 급식 도우미로 급식봉사 했고 간식을 교사와 함께 만들어 먹고 노인 시설을 방문해 인형극을 공연하기도 했다. 특히 감명 깊었던 부분은 대만은 7~9월경이면 태풍이 잦는데 태풍피해를 복구하는 현장에 유치원아이들이 참여해 거리 정비를 도우며 지역사회 일원으로서 참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아직 응석을 부릴 유아기에 지역사회에 참여해 자신의 역할을 감당한다는 것이 배울 만한 좋은 점으로 인식되었다. 또한 부모와 조부모를 초청하여 아이들에게 강좌를 열고 지역 어르신들과 함께 요리활동을 해 함께 나눠 먹는 모습에서 지역사회와 함께 성장하는 좋은 교육모델을 보았다. 이렇듯 일상생활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실천적 교육현장을 경험하며 미래 경쟁력 있는 대만교육을 엿볼 수 있었다.

 어릴 때 내가 자란 마을은 100호 남짓한 시골마을이다. 천성산 아래 자리 잡은 우리 마을아이들은 시냇물을 그냥 먹고 자랐고 봄이면 창꽃을 잎술이 파랗토록 따먹었고 여름이면 냇가에서 하루 종일 멱을 감고 몸이 추워지면 바위에 귀를 대고 몸을 말렸다. 그렇게 봄여름이 가고 가을이 되면 고향산천에는 먹을 것이 가득했고 겨울이면 가을에 거두어들인 무, 고구마, 감 등을 먹으며 겨울을 보내곤 했다. 농번기 시절이면 젊은이들은 들로 논으로 일하러 가고 동네 어르신들이 아이들을 함께 돌봤다. 내 손주가 아니어도 밥도 먹이고 위험한 장난을 하면 야단을 치며 말리기도 했다. 그런 고향마을은 이미 바랍직한 공동체 삶을 실현하는 곳이었다. 가족이 혈연관계만을 의미한다면 우리네 인생은 너무나 제한적인 삶이다. 다양한 세계에서 가족의 개념을 혈연에만 묶어 둘 수는 없는 일이다. 우리 동네 어르신들이 내손주 남손주 따지지 않고 돌봤듯 우리는 넓은 가족을 생각해야 한다.

 내가 아는 분들은 독거노인을 위해 새벽마다 직접 도시락을 산으로 나른다. 나 자신도 어르신들을 위해 경로잔치와 여행 등 작은 실천을 하고 있지만 그야 말로 그분들에 비하면 새 발의 피 같은 나눔이었다. 나는 새벽잠을 남을 위해 바치며 직접 짐을 나르며 봉사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그 분들에게 독거노인들이 나와 상관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부모만 섬기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그런 희생의 몸짓은 결코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나의 부모님은 모두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아주 이른 나이 60에 돌아가셨고 아버지는 몇 해 전에 돌아가셨다. 욕심만 내려놓으면 별 부러울 것 없는 지금이지만 부모가 채워 줄 수 있는 마음의 공간에는 아직도 찬바람이 불 때가 있다. 가끔은 그리움과 보고픈 마음이 앞설 때면 세상에 계신 어르신들에게 내 부모에게 못 다한 효도와 사랑을 전하고 싶다. 큰 것이 아니라도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나누면 좋으리라. 그리고 아직 유일하게 살아계신 시어머니께 더 잘해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그리고 내 주위에 부모를 먼저 보낸 외로운 아이들도 있다. 돌아가신 그의 부모가 나에게 부탁은 하지 않았지만 동병상련이라 했던가! 나이가 든 나에게도 여전히 부모가 필요한데, 부모 없이 세상에 남겨진 아이들에게 작으나마 따뜻한 마음을 전하며 살고 싶다. 외로운 세상 속에서 우리는 그렇게 서로를 의지하며 살아가노라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될 것이다.

 동화 `까마귀 소년`을 읽었는가? 땅 꼬마라 불리는 까마귀소년은 공부할 때도 친구들에게 따돌림 받고 놀 때도 따돌림 받았다. 늘 뒤처지고 꼴찌라서,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외톨이여서 윗반이나 아랫반 아이들까지 그 아이를 바보 멍청이라고 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지만 그 아이는 하루도 쉬지 않고 학교로 왔고, 그렇게 6학년이 되었다. 그 아이의 삶에 변화가 일어난 것은 이소베 선생님이 새로 오신 이후부터다. 이소베 선생님은 땅꼬마라 불리는 아이의 그림을 좋아해 줬고, 빼뚤빼뚤한 그의 글씨도 좋아해 줬고, 그 아이와 자주 이야기도 나누었다. 그리고 학예회날 무대에 세워주셨다.

 학예회에서 시골뜨기 땅 꼬마는 새끼 까마귀 우는 소리, 엄마 까마귀 소리, 아빠 까마귀 소리, 이른 아침 까마귀 소리, 좋지 않은 일이 생겼을 때 우는 까마귀 소리, 까마귀들이 즐겁고 행복할 때 내는 소리를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다. 새벽 동틀 무렵 그 먼 산골에서 학교까지 타박타박 걸어서 학교로 외롭게 오던 아이, 해질 무렵 집으로 타박타박 외롭게 걸어가던 아이, 왕따를 당해도 매일매일 타박타박 6년을 쉬지 않고 학교로 왔던 아이는 졸업생 가운데 유일하게 개근상을 받았다. 길고 긴 6년 동안 땅꼬마를 그렇게 못살게 굴었던 아이들은 모두 울었다.

 이소베 선생님은 땅꼬마에게 사랑을 심었고 아이는 그 사랑에 힘입어 사랑을 피웠다.

 지금 우리가 애매하게 누군가를 오해하고 있다면 오해가 이해로 바뀌기를…애매하게 억울한 일을 당하고 있다면 힘을 내시길 바란다!

내 아이가 정말 세계적인 리드가 되기를 원한다면 지역사회와 함께 봉사하는 아이로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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