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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시민ㆍ외국인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김해시 꿈꾸죠”
“모든 시민ㆍ외국인 안심하고 살 수 있는 김해시 꿈꾸죠”
  • 김정련 기자
  • 승인 2019.06.12 22: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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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내 이주 외국인의 삶 네팔인 슈베디 여거라즈 목사
네팔에서 온 슈베디 여거라즈 목사는 김해 이주민 선교 교회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을 위한 인권 운동에 앞장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네팔에서 온 슈베디 여거라즈 목사는 김해 이주민 선교 교회에서 이주민 노동자들을 위한 인권 운동에 앞장서 어려운 상황에 처한 노동자들을 위한 쉼터를 제공하고 있다.

23년 전 ‘코리안 드림’ 품고 한국 와 이주노동자 시절 노동착취 당해

외국인 위한 사회운동가 되자 결심 김해 이주민 선교 교회 목사로 활동

2009년 네팔인 최초 한국국적 취득 현재 교회 내 6개 국가 커뮤니티 형성

외국인 노동자 위한 특별기술교육 이주민 위한 쉼터 15년 째 운영

사업주와 이주 노동자간 문제 상담 문화도시사업 일환 각국 문화축제

 1996년 ‘코리안드림’을 품고 한국으로 온 네팔사람, 슈베디 여거라즈는 지금은 외국인고용허가제로 알려진, 그때 당시 산업연수생의 신분으로 충남 금산군의 한 공장에서 2년간 노동착취를 당했다. 슈베디와 같은 이주노동자들이 한 달 꼬박 일해서 받은 대가는 고작 20여만 원의 임금이 다였다. 설상가상으로 슈베디가 한국에 온지 1년 만에 터진 금융외환위기는 그나마도 남아있는 이주노동자들의 삶의 희망의 불씨를 꺼뜨렸고 그들에게서 ‘코리안 드림’을 처참히 빼앗아갔다. 일한만큼 대우는커녕 최소한의 인권 보장도 받지 못했던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한국의 일부 인권 단체들은 이주노동자들의 인권 보장 및 노동 착취에 맞서 사회운동을 펼쳤다. 그때 사회운동을 펼쳤던 운동가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고 슈베디는 자연스럽게 기독교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이 후 슈베디는 충남의 한 신학대학원 장학생으로 선발돼 신학 공부에 몰두했고 그를 도왔던 사회운동가들처럼 이주 노동자들을 위한 사회운동가가 되기로 결심했다. 지금은 김해 동상동에 위치한 김해 이주민 선교 교회에서 목사로 활동하고 있는 슈베디를 만나 23년간의 한국에서의 삶에 귀를 기울였다.

 △ 김해이주민의 집 운영 계기와 어떤 경로로 개척했나?

 “나 또한 이주노동자로 생활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나타나는 어려운 점을 잘 알고 있어요.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움이 되고 싶었어요. 충남에서 김해로 오자마자 30평 남짓 되는 크기의 건물을 임대해 이주노동자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어요. 종교적인 명목으로 만든 공간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외국인들이 쉬어갈 수 있는 쉼터로서 쓰이길 바랐죠. 몇 년 간 비공식적으로 이주민들을 위한 공간으로 운영하다가 2009년에는 한국어 시험을 치고 심사를 거쳐 그 당시 네팔사람 최초로 한국 국적을 취득했어요. 한국 국적 취득 후, 2013년에는 김해 이주민의 집을 비영리단체로 사업자를 등록 해 본격적으로 운영하기 시작했죠.”

 △ 대전에서 김해로 오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그때 당시 대전에 거주하면서 수도권과 영남권을 비교 하던 중에 외국인 노동자 거주율이 높은 김해에 관심을 가지게 됐어요. 김해에 거주하는 외국인 수에 비해서 이주노동자들의 생활 및 인권 개선을 도울 지원 단체 기관들이 전혀 없는 열악한 상황이더라고요. 심지어 김해에서 어려움을 겪는 노동자들이 부산이나 창원까지 가서 도움을 요청해야 되는 환경이었어요. 그래서 김해로 오게 됐어요.”

 △ 김해 이주민의 집에서는 어떠한 사회활동 하나?

 “김해 시와 함께 전국 최초로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특별기술교육 사업을 추진 중이에요. 주말 동안 이주노동자들은 농업기술, 자동차정비, 제과제빵과 같은 기술 교육을 받을 수 있어요. 이주 노동자들이 자국으로 돌아갔을 때 한국에서 배운 기술이 자국에 정착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말이죠. 3년째 추진 중인 특별기술교육 사업에 매년 60~70여 명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참여했어요. 올해는 80여 명이 참가해 해마다 늘고 있는 추세랍니다.”

 △ 한국 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인가?

 “한국 사람들이 외국인을 보는 시각이요. 사회활동을 하는 외국인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사회활동을 하는 목적을 순수하게 보기보다는 돈과 경제적인 이윤을 내기 위해서라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거든요. 모든 외국인이 경제적인 목적으로 한국에 들어왔다는 생각 때문이죠. 또한 기부와 후원으로 운영되는 김해 이주민의 집은 사업운영의 목적의 경우 시와 도에서 예산을 지원받지만 아직까지 내부 운영비로는 쓸 수 없는 구조라 경제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라요. 정부지원 없이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쉼터를 15년 째 운영 중이예요. 근무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서 일자리를 잃었을 때, 근로 중에 재해를 입었는데도 불구하고 산재질병 승인을 받지 못했을 때, 외국인 노동자는 가장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되죠. 그럴 때 잠깐 거주하며 회복할 곳이 이주노동자들에게 필요하거든요. 그동안 20명에게 무료로 숙식제공을 했지만 운영비가 너무 부담스러워 지금은 14명으로 줄였어요. 쉼터를 운영하는 것은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기도 해요.”

 △ 어떠한 어려움을 가진 외국인 노동자들이 찾아오는가?

 “사업주와 노동자간의 문제 상담이 제일 많아요. 그중에서도 임금체불과 업체변경문제가 가장 심각해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일이에요. 외국인 노동자 A씨가 B업체와 계약을 체결했는데 A씨는 B업체가 아닌 C업체에서 일하게 됐고 B업체의 이름으로 급여를 지급받았어요. 어느 날 법무부에서 A씨에게 구속영장이 발부되었고 그때까지도 영문을 몰랐던 A씨는 뭐가 잘못됐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었죠. A씨가 구속 영장을 받은 사유는 업무지 이탈이었어요. 여기서 B업체는 C업체에 인력을 공급해주고 B업체는 C업체에게 A씨의 급여를 제공하지만 B업체는 C업체에게서 받은 인건비를 중간에서 가로채 원래 임금보다 적은 돈을 A씨에게 다시 지급해줬다는 의심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B업체의 사업주는 어떠한 처벌도 받지 않았어요. A씨는 더 이상 B업체와 일을 하고 싶지 않았지만 현재 이주노동자에 대한 국내법 상, A씨가 다른 회사로 이직을 하고 싶어도 B업체의 승인 없이는 근무지 변경을 할 수 없게 돼 있어요. 또한 이주노동자들이 근무지에 5일 동안 나타나지 않을 경우 근무지 이탈을 사유로 노동자를 고발할 수 있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악덕 업주들이 노동착취를 일삼고 있는 경우도 번번이 적발되고 있어요. 우리단체가 외국인 노동자들의 어려움을 도와주는 입장에 있다 보니 사업주들이 우리를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만은 않아요. 우리의 역할을 브로커로 취급하는 경우도 많이 있거든요. 우리가 한국인이었다면 ‘인권운동하고 있구나. 좋은 일 하고 있구나’ 생각했을 텐데 말이죠.”

 △ 시민들과 이주민들 교류할 수 있는 문화의 장이 있나요?

 “김해 이주민의 집에는 네팔, 스리랑카, 미얀마, 방글라데시, 필리핀, 몽골 6개 국가의 커뮤니티가 형성돼 있어요. 김해문화재단이 주최하는 문화도시김해 사업의 일환으로 각 국의 대표 문화 축제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어요. 각 국의 이주민들이 스스로 기획하고 계획해 우리에게 협조를 요청하면 우리 단체는 시에서 문화축제 지원금을 보조받을 수 있도록 중간에서 매니지먼트 역할을 하고 있어요. 지난 4월 20일에는 스리랑카 신년축제가, 5월 5일에는 미얀마 물 축제가 열렸으며 약 2천여 명이 참여했어요. 아쉬운 점은 시민 참여가 부족하다는 것이에요. 애초에 문화교류의 장은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궁극적인 취지잖아요. 이주민들은 문화교류를 통해 한국인들과 소통하고 어울리며, 한국인들은 다양한 문화를 체험하며 이주민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서로 만들어 가야한다고 생각해요. 오는 9월 1일에는 몽골 문화 축제가, 9월 15일에는 방글라데시 축제, 10월 6일에는 네팔 축제가 김해시 일원에서 열릴 예정이에요.”

 해마다 이주노동자와 다문화 가정은 늘어나는 추세지만 한국인과 이주노동자들이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은 전혀 마련되지 않고 있다. 올해 1월 기준 통계상, 김해에는 1만 8천718명의 외국인이 등록돼 있다. 등록되지 않은 외국인의 수까지 고려하면 약 2만여 명으로 이는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우리는 이주노동자를 우리 사회의 부적응자로 취급하기 보다는 잘 정착하며 적응할 수 있도록 인권을 보장하고 차별 없는 환경을 제공해야한다.

 그렇지 않는다면 가까운 미래에 우리 사회는 이주노동자들의 부적응이 빚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하고 말 것이다. 김해 시가 모든 시민과 외국인이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안전하고 행복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슈베디 목사는 오늘도 인권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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